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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책이요?

영업시간 방랑 끝!

by Starry Garden
영업시간 방랑 끝!


비장한 각오로 책방을 운영한 지 5개월 차에 다다랐다. 영업시간을 여러 번 바꿨다.


오전 8시 ~ 오후 8시

오전 9시 ~ 오후 9시

오전 9시 ~ 오후 9시 30분

오전 11시 ~ 오후 10시


그리고 정착한 시간이 오전 11시 ~ 오후 10시이다. 영업시간만큼이나 중요한 건 휴무일이다. 매주 월요일에만 쉬다가 추가로 두 번째, 네 번째 화요일도 휴무로 정했다.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지속가능'하기 위해서 이다. 첫 번째 오전 8시 ~ 오후 8시는 12시간 근무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7시 30분까지 나가 있는 게 고역이었다. 정리하는 시간까지 하면 13시간은 책방이 있으니 비장했던 내 각오는 어느새 무뎌졌다.


바꾸려고 했으나, 8시 40분 ~ 50분에 오시는 단골(?) - 일주일에 2번은 꼭 오시고, 많을 때는 4번까지 오시는 분 - 때문에 망설여졌다. 그렇게 2개월 동안 사투를 벌이다, 타협한 시간이 두 번째 시간인 오전 9시 ~ 오후 9시였다. 단골 손님이 조금만 늦게 오시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꾼 시간이였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을까? 서점이 문을 거의 닫을 때가 다 돼서야 오는 손님이 계셨다. 그 손님 덕분에(?) 의도치 않게 영업시간이 30분은 늘어났다. 묘한 대치 상황이 자주 일어났다. 손님은 안절부절못하며 급하게 보는 느낌이었고, 나는 얼른 퇴근하고 싶은 느낌이 책방 안을 가득 채웠다. 손님도, 나도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 30분 연장 영업을 결정했다...


시작은 고작 30분이라고 만만히 생각한 건 큰 잘못이었다. 30분을 영업일 기준으로 보니 720분, 한 달에 12시간의 추가 근무를 해야 했다. 추가 근무는 피로를 차곡차곡 쌓이게 했다. 그리고 나와의 협상이 시작되었다. 시간을 또 바꿀까? 4개월 만에 너무 자주 바꾸는 건 아닐까? 단골손님이 오고 싶다면 시간을 맞춰서라도 오지 않을까?라는 내가 편해지기 위한 방법을 찾고, 거기에 걸맞은 이유들을 가져다 붙였다. 마음에 있던 '영업시간 결정 게시판'에는 영업시간을 바꿀 이유가 적힌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었다. 붙이다 보니 영업시간에 대한 문제 뿐만 아니라 책방 운영 전반에 대한 생각과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라는 고민이 가득 붙어버렸다.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가득 붙어 있던 포스트잇을 하나하나 분류하며 떼내었다. 책방 운영에 대한 고민, 내에 대한 이야기, 영업시간에 대한 고민. 책방을 오래 하기 위해선 편안한 내가 우선적이라는 하나의 사실로 돌아갔다. 내가 견뎌내고만 있다면 그건 새로운 일에 도전할 여력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라는 사실. 회사를 그만둘 때도 발전 없는 끌려가는 인생을 탈출하고자 시작한 일이 책방인데, 여기서 다시 끌려다니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기로 했다.


그래서 정한 영업시간이 '오전 11시 ~ 오후 10시'이었다. 지금은 여기에 정착하기라고 결심하곤 인스타그램에, 그리고 가게 문 옆 유리창에 공지를 했다.


안내드립니다.

주인장은 휴무를 제외한 평일 동안 매장에서
12시간 이상의 근무를 합니다.
처음엔 많은 분들이 제가 꾸린 공간을 이용하시도록 긴 시간 영업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수면 부족으로 인해 더 깊어진 다크서클과 떨어지는 체력
그리고 어디든 머리만 대면 잠들 수 있는 피곤함이 절 짓누르고 있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평일 영업시간을 오전 11시 ~ 오후 10시로 변경하고자 합니다.
다양한 의견이 있으시겠지만,,
'별빛이 총총한 정원 속 책방: Starry garden' 이용 시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매번 방문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Starry garden 드림.


걱정스러운 공지 후에도 흔들리던 내 마음을 추스르고 있던 중 인스타그램 알림이 하나 왔다.

"오전 11시부터 10시까지도 충분할걸요. 쉬셔야 더 좋은 환경을 만드실 수 있죠. 자주 방문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여의치 않네요. 조만간 꼭 들를게요~!"


그 댓글 하나가 걱정하며 모아두었던 포스트잇을 한 번에 날려버렸다.


여행에 관한 책이요?


영업시간 끄트머리에 자주 오시던 손님이 근래에 자주 책방에 온다. 책방을 운영하며 생긴 버릇이 관찰, 공상 그리고 소설 쓰기다. 책방에 출몰(?)하는 사람을 유심히 곁눈으로 관찰한다. 이른바 사람 간의 소통이 가게에 있다 보면 할 일이 없으니, 사람이라도 등장하면 주의 깊게 보게 된다. 마치, 셜록 홈스, 에르퀼 푸아로가 된 것 마냥 조그마한 단서로 그들이 무엇을 하는 이들인지 예측해본다. 물론 정답을 맞혀 본일은 없다. 그렇게 관찰한 자료를 소중히 모아 혼자 적어내는 글에 주인공으로 때론 조연으로 출현시켜 그들의 이야기를 적곤 한다.


오늘도 그 손님은 9시가 되어 책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읽던 책에 집중하느라 인사 타이밍이 어긋났다. 조용히 내가 한 인사를 듣긴 한 걸까?라는 의문과 함께 그의 행동을 따라 눈이 움직였다. 그는 마치 운동선수의 습관처럼 매번 같은 곳을 둘러본다. 두 개의 책장을 유심히 살피고 평대 한쪽을 자세히 본다. 한 달 남짓 서너 번 와서는 한 권의 책을 샀고, 늘 그 책을 가져와 읽고 가곤 했다.


그를 관찰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나이는 30살 초반쯤 되어 보이고 이 시간 때 오는 걸 보니 회사원이며 독신일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키는 나와 비슷한 170 cm 초반, 몸은 호리호리 해 보이진 않지만, 그렇다고 몸을 쓰는 일을 할 정도로 건장해 보이진 않았다. 결정적으로 뽀얀 피부가 그가 사무직이라는 유력한 단서가 되었다. 거기다, 신발은 항상 깨끗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내 추측이 더욱 강화되었다. 주말에는 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평일에는 자취를 하고 주말엔 부모님 집으로 가거나, 여자 친구를 만날 거라는 추정까지 도달했다.


공상을 잠시 접어두고 내가 읽던 책으로 다시 눈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저기... 여행에 관한 책을 하나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읽던 책에서 눈을 떼어 그를 올려다보며 머릿속으로는 여행에 관한 책장을 스르륵 넘기며 추천 책을 찾았다. 또 그가 전에 사간 책이 어떤 책인가를 기억하기 위해 머리 이곳저곳을 찾아다녔다. 가끔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듣곤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난감하다. 힘껏 추천을 해줬지만, 다른 책을 사 갈 때는 약간의 상실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마다 책이 주는 감동이 다르니, 내가 괜찮다는 생각이 타인에게도 전달되는 건 무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어려워 완곡히 회피하곤 한다.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달라 선뜻 추천하긴 어렵습니다."


"음... 그래도 추천해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 전에 책을 사셨던 것 같은데, 어떤 책을 사 가셨나요?"


그는 자신의 크로스백에서 <어쩌다, 제주>를 꺼내보였다.


"그럼 잠시만요."라는 말과 함께 나는 그자 자주 찾던 책장 앞으로 갔다. 아래에서 두 번째 책장에 있는 책 한 권과 바로 뒤에 있는 평대 아래 서있는 책 하나를 꺼내 그에게로 돌아왔다.


"하나는 <서른두 살, 안식년을 가져보았다.>, 다른 하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7: 돌하르방 어디 감수광>입니다." 이 두 개의 책을 선정한 건 앞선 추리에 기반한 선택이었다.


아마 서른 살 초반, 직장인, 그리고 여행에 관한 책 그리고 <어쩌다, 제주>까지. 그는 답답한 직장생활을 탈출해 제주를 가고 싶겠다는 추리의 결과에 맞혀 두 권의 책을 선택했다..


"<서른두 살, 안식년을 가져보았다.>는 저자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잠시 벗어나 제주살이를 한 기록이에요. 그리곤 그 경쟁에서 잠시 벗어났다고 해서 큰일이 아니라고 말하죠."


그는 책을 휘리릭 넘기며, 귀로 내 말을 듣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제주도의 문화유산이 담고 있는 이야기를 적어 놨답니다. 휴양지 제주가 아닌 이야기를 담은 제주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줄 책이에요. 특히 '와흘 본향당 소지'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표지와 뒷면을 살피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계산 부탁드릴게요."라며 나와 함께 계산대로 갔다. 흔쾌히 두 개의 책을 사다니, 내 마음이 약간 요동쳤다. '혹시나 별로라고 하면 어쩌나?'


계산대에서 카드를 받아 계산하고 영수증을 넘겨주며, 쿠폰은 건네받아 두 개를 찍고 다시 돌려주는 일련의 행동 중에도 내 마음은 약간 두려웠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말을 남기며 그는 문을 열고 가게를 나갔다. 긴 숨을 내쉰 나는 이제 가게를 정리하고 나갈 준비를 신속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고, 아니면 말고'라는 말을 되네었다. 다음에 혹시 오면 책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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