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유통기한, 내가 사랑한 것은 무엇인가.
감독 : 자끄 드미
출연 : 까뜨린느 드뇌브, 니노 카스텔누오보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시리즈를 잠시 쉬고, <오! 멜로>라는 제목으로 브런치 북을 발행하고 싶어, 지금까지 저(우르슬라)의 기억 속에 남는 멜로 영화들을 다시 보고 감상을 글로 쓰려고 합니다. 몇 개의 작품을 연도별로 연재합니다.
멜로보다는 로맨틱 코미디를 선호하지만 그런 나에게도 찡하게 오는 멜로 영화 몇 편은 있다. 가장 먼저 소개하는 멜로 영화는 프랑스 자끄 드미 감독의 1964년 작품 <쉘부르의 우산>이다. 이름만 익숙하고 내용은 몰랐던 영화, 음악은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데 과연 어떤 내용일까? 그것이 처음 볼 때의 내 생각이었다. 보고 나서는 64년 작품인데도 미장센이 너무 아름다워서 깜짝 놀랐고, 영화의 전 대사를 음악으로 표현해서 한번 더 놀랐고, 그저 그런 해피엔딩 스토리가 아니라서 놀랐었다. 이번에 리뷰를 쓰려고 다시 보았는데, 처음 봤을 때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기(니노 카스텔누오보)와 주느비에브(까뜨린느 드뇌브)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을 때, 과연 그들이 사랑한 것은 서로였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고, 1부의 주제가 '이별'이다. '이별'은 많은 멜로 영화에서 두 주인공의 사랑을 증명하는 계기로 사용되는데, 이 영화는 어떨까. 1957년 11월, 17살의 아리따운 아가씨 주느비에브와 20살의 팔팔한 청년 기는 '당신 없이는 못 살아요.'를 남발하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하고 있었다. 얼마나 사랑하는지 항상 그대만 생각나고, 몇 번 만난 게 전부인데도 결혼이 하고 싶다. 그러나 알제리 사태 때문에 군 영장을 받은 기는 이제 어쩔 수 없이 2년 동안은 사랑하는 주느비에브의 곁을 떠나 있어야 한다. 기가 떠나고 해가 바뀌어 1958년 1월, 영화는 제2부 '부재'로 이어진다. 기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 같다고 엄마를 붙들고 울며, 떠나는 그에게 '제발 떠나지 말라'라고 매달렸던 어린 여자는 이제 사랑하는 그의 아이를 임신하고, 그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자주 편지를 보내 소식을 전해주고, 주느비에브가 듣고 싶은 말(곧 돌아갈 거야. 아이를 낳을 때는 함께 있을게)을 해주면 견뎌보겠는데, 제 때 연락이 되지도 않고, 아이가 태어날 때에도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는 말을 하는 남자로 인해 여자는 불행하다.
"기는 돌아올 거예요. 곁에 없는 게 이상해요. 벌써 떠난 지 몇 년이나 된 기분. 이 사진만 바라보다가 기 얼굴을 잊어버릴 듯 해. 기를 떠올리면 이 사진밖에 떠오르지 않아. 내게 남은 건 이 사진뿐.... 곁에 없다는 게 왜 이리 힘든 거죠?"
그리고 이렇게 젊고 아름다운 여자는 다른 남자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기와 달리 직업도 안정적이고,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있는 남자에게서 말이다. 그녀의 엄마는 딸이 이 남자 카사르와 결혼하길 원하지만, 혹시라도 거절당할까 딸의 임신 사실을 말하지 못한다. 주느비에브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이런 자기를 받아들여준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기가 반드시 돌아올 거라고 말한 그 자리에서 이미 그녀는 다른 남자와의 결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밝힌다. 1958년 3월, 그가 떠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아, 그의 아이를 아직 낳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이 기다림이 너무나 힘이 들어 완전한 이별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카사르는 주느비에브의 아이를 우리의 자식으로 키우자고 말하고 결국 주느비에브는 카사르와 결혼을 한다. 그 사이 오랫동안 기를 짝사랑하고 있던 다른 여자 마들렌은 주느비에브가 카사르와 결혼하는 것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영화는 이제 3부 '귀환'으로 이어진다. 영원히 돌아올 것 같지 않던 남자가 1959년 3월 쉘부르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가 떠나고 돌아오기까지 채 2년이 걸리지 않아 그는 그들이 사랑했던 곳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사랑하는 주느비에브와 아이를 만날 기대를 하고 돌아온 기를 기다리는 소식은 이미 주느비에브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뭔가 낌새가 있었지만 돌아와 확실하게 얘기를 들은 기는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고, 그 새 자기를 키워주신 대모는 돌아가신다. 대모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기에게 실망한 마들렌은 그의 곁에서 떠나기로 결심하고, 기는 세상에 나 홀로 던져진 것 같은 공포에 마들렌을 붙잡는다. 1959년 6월 얼굴이 많이 환해진 기는 대모가 남겨준 유산을 전부 투자해 간이 주유소를 매입한다. 그리고 마들렌에게 청혼하지만 마들렌은 그가 주느비에브를 잃고 상심한 마음을 달래려고 자신에게 온 것이 아니냐며 묻는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이렇다.
"주느비에브는 떠올리기도 싫어. 완전히 잊었어. 맹세할게. 당신과 함께 행복해지고 싶어. 난 큰 욕심 없어. 딱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 여자를 만나 모든 것을 함께하고 행복해지는 것."
시간은 흘러 1963년 12월, 기의 주유소에 자동차 한 대가 선다. 마들렌은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나가고, 그 사이 오랜만에 쉘부르에 온 주느비에브가 기의 주유소인 줄 모르고 주유하러 온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차 안에는 두 사람의 아이가 있다. 서로 모른 척하지 않고 가볍게 안부를 묻지만 딸아이를 보겠냐는 주느비에브의 제안을 기는 거절한다. 그녀의 차는 떠나고, 마들렌과 아이가 돌아오는 것을 기가 반기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열일곱과 스물의 청춘.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이라는 감정만으로도 온갖 희망에 부풀며, 온 세상이 핑크 빛으로 보이는 나이. 둘은 사랑을 했다. 영화가 둘의 '결핍'까지 진지하게 다루고 있지는 않지만 주느비에브는 일찍 아버지를 여였고, 기는 부모가 아닌 대모의 양육 아래 자랐다. 그래서 주느비에브가 기의 부재를 고통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안정적으로 받아주겠다는 남자에게 쉽사리 흔들린 것과 가족을 이룰 줄만 알았던 여인이 자신을 떠났을 때 방황하며 곧 마들렌에게 기댄 것이 이런 결핍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나이는 차치하더라도)
그러나 그 둘이 서로 함께 있을 때에 나눴던 사랑의 밀어들을 보면 그들이 한 사랑이 좀 우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당신 없이는 하루도 못살겠다'는 말이 '오직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말과 등식을 이루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것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는다) 주느비에브가 정말 사랑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사랑은 '선택'으로 증명된다고 믿는데, 그녀가 카사르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녀가 카사르를 선택한 이유는 그가 그녀의 곁에서 함께 하며 자신을 지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주느비에브가 가장 사랑한 것은 '기'라는 한 남자가 아니라 그와 함께 하는 시간, 그와 나누는 교감, 그가 곁에 있으므로 느껴지는 안정감이었던 것이다. 혼자가 아니라 아이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니 그녀는 더더욱 그녀와 자신의 아이를 보호해줄 누군가가 간절했을 것이다. 결국엔 혼자서는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기도 다르지 않다. 그가 마들렌에게 청혼하면서 한 말에 그가 가장 사랑한 것이 무엇인지, 결코 놓을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한 여자를 만나 모든 것을 함께 하고 행복해지는 것.' 그러니 주느비에브는 떠올리기도 싫다는 말이 거짓이 아닌 것이다. 모든 것을 함께하면서 행복해지리라 믿었던 그 소망을 그녀가 무참히 깨트려버렸기 때문이다. 피를 나눈 가족이 없이 살았던 그는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모든 것을 '혼자'가 아닌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행복해질 것이라 믿었다. 나밖에 없다며, 기다리겠다고 해놓고 다른 남자와 결혼한 그녀에게 배신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역시 어떤 사람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기보다, 자신과 함께할 가능성이 있는 누군가를 선택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그가 사랑한 것도 주느비에브 단 한 사람이 아니라, 결혼해서 앞으로 자신의 곁에 늘 함께 있어 줄 누군가가 있다는 믿음과, 그 믿음에서 오는 감정을 사랑한 것이다.
함께 했을 때 느꼈던 강렬한 감정과 나누었던 뜨거운 말들이 곧 우리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온도와 유통기한은 비례하지 않는다. 내가 너로 인해 얻을 수 있는 부수적인 것들(감정 포함)이 아니라, '너'라는 사람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사랑의 유통기한'을 늘려갈 수 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느낄 때 과연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고 솔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소중한 우리의 사랑을 더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다.
우리의 '너를 사랑한다'는 말이 온전히 진실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