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오, 멜로! 02화

러브 스토리 (1970)

- '사랑이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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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아더 힐러

출연 : 알리 맥그로우, 라이언 오닐


두 번째로 소개하는 나의 멜로 영화는 아더 힐러 감독의 1970년도 작품 <러브 스토리>이다. 포털 사이트든, sns든 '러브스토리'란 단어로 검색을 하면 이 영화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러브 스토리'에 관한 것은 이제 넘쳐나고 넘쳐난다. 하지만 내가 이번에 다시 보면서 이 영화는 정말로 '러브 스토리'이구나. 정말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구나. 제목 값을 하는구나. 하고 느꼈다. 그리고 참 재미있었다. 아직 안 보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올리버 바렛 4세(라이언 오닐)은 하버드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있고 아이스하키팀 주전 선수이다. 그리고 집안 배경은 학교에 강당을 세워줄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나 부잣집 도련님들이 대학생일 때에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 사이가 좋기는 어려운 법. 뭐든지 혼자 힘으로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가득 차 있을 나이, 혈기 왕성한 청춘은 자기에게 큰 기대를 갖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해냈을 때 무덤덤하게 반응하며 자신을 가문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다. 제니퍼 카발레리(알리 맥그로우)는 레드클리프(하버드가 아직 남학교인 시절 그와 협력하기 위한 여자 학교 - 후에 하버드와 통합함)에서 음악을 공부하는 오만하고 도도한 여학생이다. 엄마는 영화에 등장하지 않고, 시골에서 빵집을 하는 아빠만 나오는데 둘의 사이는 친구처럼 편안하고 좋다.

올리버는 워낙 유명한 집안 자제분인 데다가 인물도 훤칠해서 교내 유명인사다. 책을 빌리러 레드클리프 도서관에 갔다가(하버드에 없어서. 하버드 학생은 레드클리프에서 책을 빌릴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제니퍼를 만난다. 찾는 책을 바로 찾아주면 더 이상 진전될 이야기가 없을 텐데 제니퍼는 올리버의 신경을 거슬리는 말만 하면서 동시에 관심을 드러낸다. 그녀의 궤변에 고개를 흔들면서도 묘하게 끌린 올리버는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 시작한다. 자신의 경기에 와 달라고 하고, 제니퍼는 늘 그렇듯 확답을 주지 않고 얄밉게 말하면서도 그의 경기를 보러 간다.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한데도 늘 놀리며 아닌 척하며 얄미운 말을 하는 그녀에게 올리버는 정공법으로 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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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이젠 네 장난에 지쳤어. 넌 레드클리프 최고의 깍쟁이야. 최고라고. 남자는 무조건 기 죽이고.

하지만 말장난하는 건 진지한 관계가 아니야. 그게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가서 왈츠 수업이나 듣지 그래? 넌 겁내는 거야. 상처받기 싫어서. 커다란 유리 벽을 친 거지. 하지만 그것 때문에 느낌도 못 느끼게 됐어. 다 위험 부담이 있는 거야. 안 그래? 난 적어도 내 감정을 인정할 용기는 있어. 너도 언젠가 좋은 건 좋다고 인정할 용기가 생기겠지."

"좋아해."


제니퍼는 올리버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않고 진지하게 듣는다. 그리고 그의 말이 다 맞기에 부인하거나 변명하지 않는다. 바로 그 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 널 좋아한다고. 둘은 그렇게 진짜 연애를 시작하고, 서로를 향한 마음은 깊어진다. 그러나 졸업 후 파리 유학을 이미 결정했다는 제니퍼. 올리버와 사는 배경이 너무 달랐기에 그와 평생을 함께 할 꿈은 꾸지도 않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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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하면 각자 길을 가겠지. 넌 법과대학원에 가고."

"무슨 말이야?"

"넌 백만장자고 난 무일푼이야."

"그게 각자 길이랑 무슨 상관이야? 우린 함께 있고 행복해."

"하버드는 선물로 가득 찬 산타의 가방이야. 하지만 축제가 끝나면.."

"단순한 축제 이상이었어, 제니."

"자기 자리로 돌아가야 해."

"집에 돌아가 과자나 만들겠다고?"

"빵이야. 우리 아빠를 놀리지 마."

"그럼 날 떠나지 마 제니. 제발."

"내 장학금은 어쩌고?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파리는?"

"우리 결혼은?"

"결혼하자고 누가 그랬어?"

"내가 지금 하잖아."

"나랑 결혼하고 싶어?"

"그래."

"왜?"

"왜냐하면."

"그거 좋은 이유다."


함께 있을 때 행복하다는 것을 올리버도 제니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의 꿈을 좇기 위해 헤어지는 것, 서로의 배경이 너무 달라서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 것보다 둘이 함께 할 때 더 행복하다는 것을 두 사람은 확신하고 있기에 기꺼이 그렇게 하기로 한다.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 수 있는 것이다. 내 마음도 그렇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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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못한 사이라고는 해도 부모님께 결혼 소식은 알려야 했기에 찾아뵙지만, 예상대로 아버지는 둘의 결혼을 반대한다. 노골적으로 하지 말라고 하진 않았지만 대학원 졸업까지 미루라고. 그렇지 않으면 너에게는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겠다고. 남자는 화가 나 여자를 데리고 집을 나온다. 그렇지만 여자는 그를 달래고 싶다.


"아빠 못살게 구는 게 재미있어?"

"감정은 통하는 거야. 몰랐어?"

"아빠를 계속 화나게 할 셈이었지"

"올리버 배럿 3세를 화나게 하는 건 불가능해."

"제니퍼 카빌레리랑 결혼을 한다면 달라지겠지?"

"그렇게 생각해?"

"그래. 일부는 그렇지."

"내가 사랑한다는 걸 믿지 않아?"

"믿어. 하지만 넌 내 부정적인 사회적 지위도 좋아하는 거야."

"아니야."

"나도 판단 못하겠어.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는 거야."

"난 너뿐 아니라 네 이름과 그 뒤에 붙은 숫자도 사랑해. 어쨌든 그것도 너의 일부잖아."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뭐가."

"나를 알고도 어떻게 계속 사랑할 수가 있지?"

"그게 사랑이니까. 애송아."


제니는 올리버가 '제니퍼 카빌레리'라는 한 사람을 사랑할 때 자신의 좋은 점뿐 아니라 무일푼이라는 것과 아무런 사회적 지위가 없다는 것까지 사랑해준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것이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사랑이라면 마땅히 그러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에. 그래서 제니는 자신도 올리버의 엄청난 배경과, 그가 누구인지, 어느 가문 자제인지 나타내는 올리버라는 이름 뒤에 '4세'도 사랑하기로 했다. 이미 자기 자신도 그런 사랑을 하고 있으면서 올리버는 의아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도, 나와 관련된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답은 간단하고 명쾌했다. "그게 사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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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둘의 영혼이 힘차게 일어나서 말없이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와 길게 펼친 날개에 불이 붙을 때까지 세상이 우리에게 어떤 험난한 고통을 주더라도 만족하며 살아갈 시간은 얼마 되지 않으니 생각하라! 더 높은 곳에서 천사들이 우리를 재촉하며 완벽한 노래의 황금 구슬을 우리의 깊고 소중한 침묵 속으로 떨어뜨리기를 열망 하노라. 이 땅에서 머물면서 사랑받기를. 이곳은 고집스러운 인간들의 마음이 사라져 버리는 곳. 순수한 영혼만이 남아있는 곳. 하루 동안 머물면서 사랑을 하는 곳. 어둠과 죽음의 시간이 둘러싼 곳."

"나는 그대와 결혼합니다. 돈보다 소중한 내 사랑을 주고 설교나 법률 이전에 나 자신을 주겠습니다. 그대 자신을 내게 주겠소? 나와 함께 여행을 하겠소? 우리 살아있는 한 함께 영원히 있겠소?"


제니는 호메로스나 쓸 법한 서사시로 혼인서약을 맹세하지만 올리버는 심플하고 직설적으로 고백한다. 이렇게 다르지만 그 둘은 서로의 맹세에 감동한다.

힘들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가난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힘들다. 배럿 가문이 자제라는 이유로 장학금을 받지 못한 올리버의 학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제니는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한다. 올리버는 미친 듯이 공부하면서 시간이 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두 사람은 집에 있는 식빵과 잼을 챙겨 점심을 먹는다. 그래도 올리버가 졸업하기만 하면 형편이 나아질 것이기에 힘들다고 투정 부리거나, 서로를 안쓰럽게 보면서 지금 해야 하고 있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올리버는 자신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로펌에 취직하는 것이 앞으로 제니를 가장 편하게 해 줄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뒷바라지를 받는다. 두 사람은 몸이 피곤할 뿐, 마음도 그런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올리버의 아버지 그러니까 올리버 3세의 회갑을 두고 연락을 받고, 제니는 지금까지 올리버가 하자는 대로 했지만 이걸 계기로 남편이 가족과 화해하길 바란다. 올리버는 제니가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알기에 그녀를 이제까지 모른 척한 아버지와 절대 화해할 생각이 없다. 그 문제로 크게 다투고 제니는 집을 나간다. 올리버는 그녀가 있을 만한 곳을 찾다가 못 찾고 집으로 오는데 집 앞에 사랑하는 그녀가 앉아서 울고 있다.

"열쇠를 두고 나갔어."

"미안해."

"그만. 사랑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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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에서 3등으로 졸업하면서 좋은 로펌에 취직하게 된 올리버. 집도 좋은 곳으로 이사하고, 제니는 다른 것보다 '아이를 갖고 싶다' 고 한다. 모든 것을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려 하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자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게 되고, 올리버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는다. 사랑하는 아내 제니가 '죽어가고 있다고'

병원에서도 적극적으로 치료를 권하지 않는다. 항암을 거부하는 제니를 올리버는 존중한다. 그녀가 살아있을 때에 아프지 않게 편하게 지내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올리버는 아버지를 찾아간다. 아무것도 묻지 말고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못할 것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수표를 받아 들고 병원에 오자마자 의사는 제니의 때가 되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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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만 아파하고."

"내가?"

" 자기 얼굴이 죄지은 표정이야. 아파하는 거잖아. 자책하지 마. 바보 같은 애송이. 이건 누구 잘못도 아니야. 자기 잘못이 아니야. 그것만 기억해. 자기는 그 생각만 안 하면 괜찮을 거야. 파리는 잊어버려."

"뭐?"

"파리나 음악, 자기가 내게서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건 잊으라고. 난 상관없어. 내 말 못 믿어? 그럼 여기서 나가. 나 죽을 때 옆에 있지 마!"

"난 자기를 믿어. 정말이야."

"이제 좀 낫군."


자기 옆에서 자신을 안아달라고 말하고 그가 앉아주자 제니는 눈을 감는다. 올리버의 아빠가 급하게 병원을 찾아와 아들에게 사과하지만, 올리버는 제니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돌려준다.


"사랑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예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사랑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야.'라는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왜 사랑하면 미안하다고 하면 안 되는 거지? 이번에 다시 보면서 그 말의 뜻을 헤아려보았다. 왜 제니는 그렇게 말한 걸까.

제니는 올리버가 아버지와 끝까지 화해하지 않으며 자신에게 화를 냈을 때, 그가 왜 이렇게 할까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아버지와 골이 깊구나. 내가 고생한다고 생각해서 더 미운가 보다. 그러면 화해하기 쉽지 않겠지. 하고. 그가 이해가 되니, 그에게 화가 났던 마음도 수그러진다. 섭섭함이 사라진다. 그러니까 그가 자신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할 필요가 없다. 나는 널 이해해. 그래서 화나지 않았어.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하지 마. 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거 싫어. 내가 널 온전히 사랑하지 못한 것 같잖아.


나도 예전에 '네가 왜 그랬는지 이해는 돼. 하지만 섭섭해.'라는 말을 종종 했었다. 왜 그랬는지 머리로는 알겠지만 그렇다고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섭섭함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한참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흘러서야 깨달았다. 그때 내가 이해했다고 말한 것은, 온전한 이해가 아니었다는 것을.

사랑한다면 상대방의 말과 행동과 그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해가 되었고, 그가 일부러 나쁜 의도를 가지고 한 행동이 아니라면 섭섭해할 필요 없다.

아마 제니의 마음은 이렇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아버지와 의절하면서 나와 결혼한 것을 알고 있었고,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마음 아파할 것이라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아버지를 향한 원망의 마음이 커질 수도 있다는 것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그런 마음 때문에 화해를 하지 않으려 한 것이고, 내가 멋대로 그의 감정을 전했으니 화가 날만하다. 그러니 이것은 그의 잘못이 아니다.


그녀는 임종 전에도 올리버에게 같은 맥락의 말을 한다. '이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니 자책하지 말라고. 내게서 빼앗아 간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서로 사랑했고, 함께 하기로 결심하고 힘들 것을 각오하고 시작한 결혼생활이기에, 당신이 공부할 때 열심히 일한 것은 우리의 합의하에 결정한 일이고 나 역시 그 일로 단 한 번도 당신을 원망한 적이 없기에. 당신이 나에게 미안해한다면, 이렇게 갑자기 곁을 떠나야 하는 나도 당신에게 미안해해야 할 것이기에. 내가 아픈 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듯, 내가 떠나는 것도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그래서 나도 당신에게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고 떠나겠다고.


사랑은 말장난으로 얻을 수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나의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해야만 시작할 수 있다.

또 사랑은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사람인지 알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함께 할 때 가장 행복하다는 것에 대한 확신이다. 그리고 그 확신을 삶으로 증명하겠다는 의지이다.

사랑은 너와, 너와 연결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무 낮은 것도, 너무 높은 것도 네가 그것과 연결되어 있다면, 너의 일부라면 그것까지 껴안고 품는 것이다.

사랑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나에게 일부러 잘못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너를 나는 온전히 이해하기 때문이다. 너를 이해하기에 너에게 화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너를 일부러 화나게 한 적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기에 이런 날 네가 이해해주길 원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것 같다. 이 영화가 좋고, 이 말을 한 '제니'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싶어서 그녀의 마음을 헤아려보았다. 그 의미가 무엇일지 궁리했다. 그랬더니 지난번에는 알 수 없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사랑은 미안하단 말을 하지 않는 거야.'가 그저 겉멋 든 청춘 남녀의 뜻 없는 말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과 이어진다. 그 노력으로 알게 된 너의 마음을 모른 척하지 않고 소중히 여기게 된다. 그래서 사랑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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