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알아주는 꽃순이! 부산에서도 자주 가던 단골 꽃가게가 구역마다 하나씩 있었다.(구역이라 함은 일하는 직장, 친정, 아이들 학교와 유치원 , 우리 아파트라고 볼 수 있다.) 기분이 우울할 때도 행복할 때도 꽃을 사는 사람이다. 그리고 기념일에는 늘 꽃을(선물을 함께) 받는다. 센스는 진작에 고이 접어 하늘로 날려버린 남편도 ‘꽃 + 선물/ 기념일 = 성공적’이라는 공식 정도는 알고 있다. 이걸 각인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했던가.
하노이는 꽃이요, 꽃은 하노이다.
하노이에서 좋은 꽃집을 알아내는 것은 행복한 하노이 생활을 위해 꼭 해야 할 숙제 같은 것이었다. 꽃은 내게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가장 먼저 집에서 가장 가까운 꽃집으로 향했다. Hoa Tươi(생화;호아 뜨어이)라고 적힌 나무간판이 아슬아슬하게 걸린 꽃집이었다. 허름해 보였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꽤 많은 양의 꽃들이 있었다. 가격은 10만 동에 장미 한 다발( 10 송이)이었다.
10만 동이라니, 이거 실화? 10만 동이면 한화로 약 5천 원이니 얼마나 좋은 가격인가. 장미꽃은 싱싱했고 색깔별로 있어 자주 가게 되었다. 하지만 발길을 끊게 한 사건이 있었다.
여느 때처럼 꽃을 고르고 있는데, 자꾸 주인아주머니가 졸업식에나 들고 갈 만한 커다란 꽃다발을 권하는 게 아닌가. 평소 선물용이 아니라면, 절대 포장이 화려하게 되어 있는 꽃은 사지 않는다. 최소한의 포장지를 사용하는 걸 가장 선호한다. 이유는 2가지다. 하나는 꽃은 꽃만으로도 충분히 예쁘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포장지를 버릴 때마다 환경오염에 숟가락을 얹는다는 죄책감 때문이다.
여하튼 안 되는 영어와 바디랭귀지로 필사적으로 권하는 아줌마의 모습에서 ‘오늘 꽃이 잘 안 팔리는 갑네.’ 하고 생각했다. 오지랖 넓은 나의 손은 이미 돈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꽃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억수로 무거웠다.
집으로 오자마자 꽃가위를 들고 포장지를 풀기 시작했다. “이게 머꼬?”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칭칭 감긴 테이프 뒤로 정체모를 시퍼런 꽃꽂이용 플로랄폼이 똿! 꽃의 줄기는 단두대에서 온 것 마냥 볼품없이 댕강 다 잘려나간 채로 말이다. 이건 꽃봉오리만 죄다 모아서 거대한 플로랄폼에 꽂아 놓은 형국이었다. 꽃바구니에 들어갈 플로랄폼을 한 손에 쥐고 왔으니 당연히 무거울 수밖에……
분노에 찬 나머지, 플로랄폼을 들고 꽃가게까지 씩씩거리며 달려갔다. 걸어서 10분은 걸릴 거리를 5분 만에 간 것 같다. 그리고 부산 아줌마의 박력 있는 컴플레인!
당시 하노이에 온 지 얼마 안 된 나의 베트남어는 왕초보수준이었다. 그래서 “Không cần!!”(필요 없어요!)과 “Không có ở Hàn Quốc!!”(한국에는 없어요!) 등 가능한 말만 반복하며 영어까지 얹어 강하게 항의를 했다. 가게 주인아줌마는 어리둥절해하며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게에서 나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욕을 머릿속에 떠올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베트남에서는 이렇게 판매되는 꽃다발이 꽤 있다고 한다. 꽃다발을 살 때는 무게를 꼭 확인을 하도록 하자.
그 뒤로 한동안 구글 맵으로 ‘플라**’, ‘러브 ***.’ ‘유 앤 **’등의 (왜 그럴싸한 꽃집들은 영어 이름이었을까.) 꽃가게를 찾아봤지만, 굉장한 비주얼을 자랑하는 만큼 가격이 한국과 별 차이가 없었다. 그들 또한 수입된 꽃을 많이 쓰기에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고 꽃바구니들 또한 한국만큼 비싸다.
하지만 수차례의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알게 되었다. 장미꽃, 백합, 해바라기, 국화, 수국, 연꽃 등의 베트남 내에 재배되는 꽃들은 굉장히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예를 들어 장미는 10송이에 (한 다발) 60만 동에서 80만 동, 한화로는 약 3천 원에서 4천 원으로 살 수 있다.
사실 베트남은 꽃의 나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만큼 건물 앞이나 거리에서 자전거를 타고 꽃을 파는 상인들이 많다. 그들은 베트남어를 하든 영어를 하든 우리는 천상 외국인임을 다 알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바가지를 말도 안 되게 2배 이상 씌는 일은 없으니 안심하라. 눈을 세모로 뜨고 굳이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 늘 눈을 세모로 뜨고 미심쩍게 보던 1인이다.)
특히 건물 앞에서 삼삼오오 꽃을 파는 상인들은 같은 시간 , 같은 장소에 있기 때문에 속이지 않는다. 그들도 잘 알고 있다. 베트남어를 하지 못해도, 여행자가 아닌 거주자라는 것을 말이다. 바가지를 씌우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어느 자전거에서 사도 가격은 거의 같다. 생각을 해보면 3박 4일 여행하면서 꽃을 산적은 40 평생 없다. 그래서 주로 단골 꽃 상인들을 정해놓고 사는 편이다.
또한 바가지를 쓴다 해도 만동-2만 동으로 한화로는 고작 500원-1000원이다. 하지만 돈을 계산하는 게 쉽지 않다. 나 또한 하노이 생활 초반에는 베트남 동의 많은 ‘0’으로 인해 만동을 만원처럼 생각이 될 때가 많아 지폐 한 장, 한 장 한참을 서서 다 세곤 했다. (사실 숫자 바보인지라 아직도 헷갈린다.)
그냥 있어도 1리터의 땀이 흐르는 땡볕에도, 앞이 안 보이는 살인적인 미세먼지에도 한결같이 꽃시장에서 자전거로 운반한 수고 정도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일이다. ( 고상한 척 말하지만... 두 다발을 사고 500원을 깎아달라고 질척댄 적이 있게? 없게? 있게!)
특히 하노이에서 유명한 꽝바 (Quang Bá) 꽃시장은 내가 사는 호떠이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다. 15분 남짓한 거리에 꽃시장을 두고도 그렇게 꽃을 두고 돌고 돈 것이다. 자전거 상인들의 꽃을 사는 것도 좋았지만, 사실 자전거의 크기만큼 꽃의 종류도 한정되어 있었다.
특히 베트남어 실력이 향상될수록 꽃시장으로 가는 날이 더 많아졌다. 꽝바 꽃시장은 베트남어를 연습하기에 최적의 장소이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다른 로컬 시장들과 마찬가지로 영어가 가능한 사람이 극소수(많이 쳐도 10명 중 한 명이 있을까 말까 한다.) 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베트남어를 못해도 갈 수 있으니 겁 먹지 말자. 우리에게는 신이 내린 바디랭귀지와 번역기 어플이 있지 않은가.
꽝바 시장은 아침이면 하노이의 각 지역의 꽃가게 종사자들로 분 빈다. 하지만 아임 마더! 사람이 드문 10시쯤에 가도 충분히 많은 꽃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장의 규모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크기는 아니지만 계절마다 바뀌는 예쁜 꽃들이 나란히 쌓여 있는 것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전환이 된다. 장미꽃은 사계절 내내 있으며 , 꽃의 색깔과 봉우리의 크기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자전거를 탄 상인들보다 조금 더 저렴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반 가격은 아니니 그런 환상일랑 버리시라.
그래도 나는 단 돈 1000동(한화 약 50원)도 바가지를 쓰고 싶지 않아!라고 한다면 방법이 있다. 다른 베트남인 손님이 오토바이를 멈추고 내려서, 마음에 드는 꽃을 고르고, 흥정하는 것을 지켜보다가, 지갑을 열고 돈을 지불할 때까지, 옆에서 기다렸다가, 주인이 거스름돈을 내어 주면, 쏜살같이 달려가 주인에게 같은 꽃을 달라고 하라. 그런 인내와 시간, 적당한 서성임을 가장한 연기력과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두툼한 낯짝이 있다면 현지인이 사는 가격대로 살 수 있다. 혹은 타이밍과 운이 좋아도 그렇게 살 수 있다. 나도 우연히 옆에서 사는 것을 보고 따라 샀던 경험이 있다.
그리고 한 가게에 2-3번을 더 가서 주인에게 얼굴 도장을 찍고 나면, 의외로 무뚝뚝하던 상인들도 나이, 가족 등의 개인정보도 술술 얘기하는 친구사이가 되기도 한다. 착한 가격을 포기할 수 없다면 이 방법이 더 빠를 것 같다.
자자, 이제 하노이에서 ‘퍼 말고 꽃’을 살 준비가 되었는가.
P.S. 베트남은 페이스북의 영향력과 정보력이 압도적이다. 특히 페이스북에 과일이나 꽃을 판다고 올리는 이들이 굉장히 많다. Hoa(호아; 꽃 ‘화’ 자와 발음이 비슷하지 않은가) 꽃을 검색해보자. 달랏과 같은 중부 지역이나 남부 지역에서 꽃을 농장에서 직접 재배하고 바로 하노이로 배송 판매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하지만 배송에 1-2일이 걸리고 예상 배송시간보다 더 늦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더 빨리 오는 경우는…… 나는 아직 없었다.)
거기서 얻은 장미꽃 신선도 유지 팁이 있다.
꽃을 받으면 큰 양동이에 물을 받자. 그리고 30분을 꽃의 바로 아래까지 잠기도록 푹 담가 놓는 것이다. 확실히 꽃이 더 생생해지고 조금 더 오래 유지된다.
그리고 모든 꽃은 꽃병에 오래 두면 물관이 막힌다. 따라서 매일 물을 갈아주는 것은 물론 줄기의 끝부분도 조금씩 잘라주자. 꽃병에 넣기 전에 꽃잎을 최대한 정리하는 것도 신선도를 오래 유지하는 방법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