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엔 콩글리시, 베트남엔 베글리시

쇼핑 요정의 용어사전 일러스트 by 하노이민언냐

by 하노이 민언냐

한국에 콩글리시가 있다면, 베트남에는 베글리시 있다.


“Em rất thích 머러베.”(전 머러베 진짜 좋아해요.)

“머러베 là gì?…”(머러베가 뭐야?)


베트남은 알파벳을 문자로 쓰기 때문에 자칫 표기는 같지만 발음이 다른 외래어가 있다. 그래서 건물 이름이나 상표 등 겉은 영어지만 속은 베트남어인 경우가 꾀나 많다. 아직도 베트남식 영어 발음에 익숙해지지 않을 때가 나도 있다.


일본도 그렇지만 영어권 나라가 아니고서야 모국어와 뒤엉킨 영어 발음이 고착화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예를 들어 일본에서 ‘マクドナルド 마끄도나르도’ 한국은 맥도날드, 프랑스에서는 ‘마끄 도 MAC Do’ 그리고 미국에서 ‘McDonald 맥 도너얼ㄷ’ 라고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한국의 캐주얼 브랜드인 MLB는 베트남에 진출한 성공적인 브랜드들 중 하나다. 특히 20대 친구들이 열광하는 브랜드이다. 사실 엠엘비가 엠엘비로 발음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나도 최근에 알았다. 자주 가는 집 근처의 네일숍에서 만난 26살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알게 되었다.


“Em ơi! 엠어이!(베트남에서는 나이 어린 이를 모두 엠어이로 부른다.) 옷은 주로 어디서 사? 좋아하는 브랜드 있어?”

“한국 꺼 좋아해요.”

“그래? 나는 베트남 브랜드 좋아하는데.. ‘BOO 부’랑 ‘LIBÉ 리베’ 엄청 좋아한다.”


“저도 리베 좋아해요. 그리고 한국 브랜드, 머러베 좋아해요.”


“.. 머? 뭐?”

“이거 봐요. 한국 브랜드!(핸드폰 속 사진을 보여준다. 엠엘비 모자와 운동화를 신고 찍은 셀카였다.)”

“어? 이거 엠엘비 모자네.”

“네? 뭐요? 머러베?”


그랬다. 찰떡같이 믿고 있던 엠엘비가 여기서는 ‘머러베’로 불리고 있다. 우리는 서로 신기해하며 웃었다.

세일 때 산 '머러베' 운동화에 신난 쭌이, 쩡이

이뿐만이 아니다. 하루는 집 근처의 ‘LION MALL’로 가려고 택시를 불렀다. 사실 걸어서 10분 거리였지만 아이들에게는 무리였다. 그때가 7월 말이었으니, 걷다가는 둘 다 땀을 1.5 리터씩 흘리다 길에서 실신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거리는 가깝지만 기본요금인 한화 1300 원을 내고 택시를 타기로 했다.


“Anh ơi(아잉 어이는 나이가 더 많은 어른들을 부르는 호칭이다.), hãy đi 라이온몰.”


라이온 몰로 가자고 하고 에어컨 바람에 땀을 식히고 있었다. 그런데 기사가 갑자기 기사가 액셀을 신나게 발기 시작했다. 스피드를 좀 즐기는 타입인가 보다 했다. 크고 하얀 라이온 몰이 보였다. 요금을 지불하려 돈을 꺼내려는 찰나에 택시는 아랑곳하지 않고 건물 앞을 지나고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영어로 “Stop here! Here!” 하고 외쳤다. 아이들도 “어.. 어.. 엄마, 지났다.”라고 말하며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Anh qua Lion Mall rồi.”(라이온몰 지났잖아요.)

“Lùi xe một tì cho em.”(후진 좀 해주세요.)


급한 마음에 차 창문을 열었다. 그리고 창문 넘어 보이는 건물을 손으로 가리키기 시작했다. 기사도 이해를 했는지 차를 돌리기 위해 앞뒤를 살피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교통 법규는 융통성이 아주 넘친다. 신호나 도로 판보다 그때그때 교통량에 따라 길이 결정된다. 기사가 가는 게 길인 셈이다. 하마터면 집에서 차로 4분 거리면 도착할 목적지를 25분 걸리는 초대형 쇼핑몰에 갈 뻔했다.

여기는 초대형 쇼핑몰, 이온몰 아니 '에'온몰이다.

알고 보니 기사가 라이온몰을 잘못 알아듣고 ‘에온몰(일본의 이온몰을 여기서는 에온몰로 부른다.)로 착각한 것이었다. 당연히 20분 넘게 걸리는 거리니 기사가 맘껏 질주하려했다. 우리는 서로 너털웃음을 지으며 라이온몰로 유턴을 해야 했다. 그리고 기사가 하는 말!


“Đây là 리온몰.”


여기가 리온몰이라는 거다. 라이온몰이라고 믿고 있던 나는 금붕어처럼 눈을 껌뻑댔다. 아차 싶었다. 베트남식 영어 발음으로 읽자면 라이온이 절대 될 수 없는 스펠링인 것이다.

장난감 가게가 있는 아이들의 꿈동산, 리온몰!

영어권이 아닌 한국인이 베트남의 영어 발음을 지적하기엔 어불성설이다. 각 나라마다 발음의 특징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베트남의 발음을 처음 들으면 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베트남어 발음의 가장 큰 특징이 또 있다. 바로 마지막 음절의 발음을 거의 내지 않고 삼키는 것이다.

오늘 자라 매장에서 내가 무릎을 꿇은 채 쩡이의 신발을 보고 있었다. (난 세일 앞에서 기꺼이 무릎 꿇는 사람이다.) 사이즈를 보려고 한 켤레 한 켤레 일일이 들어서 확인하고 있었다. 한 직원이 말을 걸어왔다.


“What size are you looking for?” “와 싸이 아 유 룻 뽀?”

"Em đã nói gì ạ?" “엠 다아 노이 지 아?(뭐라고 말했어요?)”


외국인인 나를 배려해서 영어를 썼을 텐데 미안한 맘이 들었다. 하지만 콩글리시에 외국인들이 혼란스러워하듯, 베글리시 들으면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가끔 있다.

그리고 사이즈를 말할 때, 알아두면 좋을 표현이 있다. 바로 Size S, M, L의 발음이다. 사이즈 에스, 엠, 엘이 통할 대도 있지만 아닐 때도 있다. 베트남에서는 발음을 다르게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싸이 에, 머, 러’로 발음을 하면 된다.

한 번은 내가 ‘M’ 가 없는지 물어본 적이 있었다. 베트남 여성들은 체격이 작다. 그래서 옷을 살 때, 한 치수 크게 입어야 할 때가 많다. 한국에서는 55였던 나는 66이 되어버리기 일수다. 하지만 직원이 들고 온건 다름 아닌 ‘S’ 이였다. 순간 내가 요즘 마음고생을 했더니 살이 좀 빠졌나 싶었다. 매장 내의 전신 거울에 내 모습을 다시 비추어 보았다. 그런 기쁨도 잠시! 이건 체중의 문제가 아니라 발음의 문제란 걸 알게 되었다. 젠장, 살이 빠진 줄 알고 좋아했는데 말이다. 하긴 삼겹살을 그렇게 푸지게 먹고 살이 빠지다니, 그럴 리 없지. 착각의 늪에서 허우적댔던 나, 부끄러움은 나의 몫이다. 그저 내가 말한 ‘M 엠’이 직원에겐 ‘S에’로 들렸을 뿐이었다.


이렇게 괜히 오해하고 김칫국물 마시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도 베트남어 공부를 한다. 신속하고 원활한 쇼핑을 하기 위해 베트남어를 공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나다. 쇼핑 요정에게 사이즈 말고 또 필요한 단어가 뭐가 있겠나. 하노이에서 날씨 표현만큼 많이 하는 말이 내겐 쇼핑 용어다.


무릎 꿇고 건진 쩡이의 신발이다.


P.S. 여기서 잠깐!! 모든 한국인들이 콩글리시를 하는 게 아니듯,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레스토랑, 호텔, 공항뿐만 아니라 영어의 달인이 굉장히 많다. 성급한 일반화는 피하도록 하자! 그리고 역으로 우리 같은 외국인들이 죽었다 깨나도 잘 못하는 발음이 베트남어 특히 남부 발음에 많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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