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Richard Clayderman의 'Promenade dans les bois 프홈나드 덩 레 브와'(숲 속의 산책)다.
발을 페달에 갖다 대고 손을 건반에 툭 하고 놓는다.
뚱 땅 뚱 땅 뚜르르 팅~!
젠장… ‘숲 속의 산책’이 아니라 ‘숲 속의 산적’이 될 판이다.
하노이의 혹한기가 곧 시작된다. 여름 비키니를 위해 다이어트를 결심하듯 하노이의 겨울을 위해 비장한 마음으로 월동준비를 한다.
하노이 겨울은 몸이 어는 혹한기가 아니다. 마음이 얼어붙는 혹한기다. 하노이 사람들은 패딩을 껴입곤 하지만 사실 한국 그것도 가장 따뜻하다는 부산에서 온 내게도 춥지 않다. 그들이 패딩을 입는 이유는 춥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오토바이를 몰면 불어닥치는 강풍 때문이기도 하다.
하노이의 겨울은 살인적인 수위의 미세먼지와 습기로 악명이 높다. 미세먼지가 자욱하게 있다 보니 햇빛이 들어올 틈이 없다. 공기를 양손으로 잡고 짤 수 있다면 물이 뚝 뚝 떨어질 것이다. 초록색 가득한 여름의 하노이가 같은 도시라고 상상이 안될 만큼 회색 아니 잿빛으로 변한다.
2년 전 처음 하노이로 왔을 때가 10월 말, 겨울의 초입이었다. 습하고 흐리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사람을 다운시킬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하노이로 온 지 두 달이 조금 지난 시점에 코로나가 찾아왔다. 그리고 하노이 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한 대대적인 록다운이 함께 시작되었다.
내게 허락된 야외 활동이라고는 열 발자국 남짓의 테라스 그리고 레지던스 1층의 정원 정도였다. 그마저도 최악의 공기질일 때는 포기해야 했다.(하노이의 공기 오염도는 300을 초과한다. 200만 넘어도 난리 나는 부산과는 달리 여기는 200이면 가뿐하다고 말할 정도다.) 당시 나는 인사하고 지낼 이웃도 친구도 없었다. 쩡이와 쭌이 그리고 나는 섬에 뚝 떨어진 것 같았다.
매일매일이 불량이라는 이름으로 점철된 주재원 생활에 남편 또한 정신이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잠든 날이 점점 늘어만 갔다.
텅 빈 마음을 채우고 싶었던 걸까. 폭식의 욕망이 서서히 얼굴을 들기 시작했다.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이 오늘인지 모를 날들의 연속. 집에서 찾을 수 있는 자극 중 가장 쉽게 채울 수 있는 만족감이 포만감이었다. 먹을 때는 모든 뇌의 회로가 탁 끊긴 듯했다. 시간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마치 술잔을 계속 비우 듯 그리고 과음하면 필름이 끊기 듯 밤이 후딱 지나갔다. 그렇게 나도 폭식에 물들어 갔다. 매일 땅 밑으로 혹은 침대 밑으로 10 센티씩 더 깊게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리셉션에서 전화가 한통 왔다. 국제 소포가 왔으니 내려와서 찾아가라는 것이다. 록다운으로 택배가 통제된 가운데, 국제 우편만은 긴급 소포로 분류되어 가능했나 보다. 나는 미심쩍은 말투로 "Are you sure?" 하고 거듭 물었다. 그러자 나의 친언니의 이름을 말하는 게 아닌가. 나의 영혼의 단짝 '찌'(6살 위의 친언니를 우리 식구들은 ‘찌’라고 부른다.)의 이름을 듣자마자 우사인 볼트가 되어 뛰어 내려갔다. 찌가 예고도 없이 소포를 보낸 것이다.
소포를 받아 들고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왔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하고 칭칭 감긴 테이프를 조심해서 자르기 시작했다. 행여나 박스가 터질까 봐 테이프 칠갑을 한 걸 보니 찌가 보낸 게 틀림없었다. 박스를 뜯자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소포를 잡고 어깨를 들썩이며 본격적으로 눈물이 터지려고 하는 순간, 쩡이와 쭌이가 걱정하며 내게 왔다. “엄마, 괜찮나?” 내 손을 잡는 통통하고 작은 손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눈물이 더 쏟아지기 전에 아이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순간 무슨 말을 할지 여러 가지 변명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눈에 뭐가 들어갔어.’ 따위의 변명들 말이다. 하지만 조잡한 거짓말은 그만두기로 했다. 이럴 때는 진심을 털어놓는 게 최고다. 그 상대가 만 열 살도 안된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이모가 엄마한테 소포를 보냈거든. 근데 그게 억수로 기분 좋고 감동스럽다.”
“응, 엄마도 힘들제?”
“그러네, 힘드네.”
하고 말하자 쩡이와 쭌이의 긴장된 표정도 누그러졌다. 그리고 쭌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생각해 보니, 세상에 영원한 건 없드라. 그러니깐 코로나도 언젠가는 끝이 난다. 엄마, 영원한 건 없다. 다 끝나게 되어 있다.”
뒷짐을 진 채 먼 곳을 응시하며 말하는 쭌이의 뒷모습에 나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이 멍해졌다. 맨날 코만 파는 쭌인 줄 알았는데, 이런 위로도 할 줄 안다. 내 속에 똬리 틀고 있는 우울에만 시선이 박혀 그동안 쭌이가 크는 것도 알지 못했다. 부끄러웠다. 엄마를 위로해 주는 아들이 옆에 있는 것도 잠시 잊었나 보다. 그리고 언제든 달려와 엄마의 손을 잡아주는 딸도 말이다. 왜 온 신경을 내 안의 블랙홀에만 두고 있었을까.
까똑! 까똑!
"우찌?"(부산 사투리, 그냥 “How are you?”란 말이다.)
남편이었다. 거짓말 같이 모두 동시에 말을 걸어왔다.
내 시야가 줌인에서 줌아웃으로 바뀌었다. 쩡이와 쭌이, 그리고 찌의 소포, 남편의 안부 카톡이 한꺼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안된다. 정말 뭐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가만히 안고 있었다. 2분쯤 지나자 쩡이는 자기한테 온 건 없냐고 소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그래, 그래야 내 딸이지. 쭌이는 눈치를 보며 “쩡! 드가자!”하고 쩡이에게 헤드락을 걸었다. 쩡이는 허공에 허우적 대며 방으로 질질 끌려 들어갔다. 아이들은 곧바로 온라인 수업을 시작했다. 하노이에서 부산까지 나의 우울을 알리는 주파수가 전해진 걸까. 평소 쩡이와 쭌이의 잠옷이나 옷가지를 보내던 그것과는 매우 달랐다. 오로지 나를 위한 컬렉션이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찌의 길쭉길쭉하고 비스듬한 글자.(찌의 글자는 내가 궁서체처럼 ‘찌’체를 만들자고 할 만큼 특이하다.) 손때 묻은 포장지 사이로 빼꼼히 얼굴을 내미는 각종 메모지, 스티커, 연필 등의 문구류가 있었다.(우리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부산의 문구 덕후 시스터즈다.) 그리고 자주 읽던 잡지 ‘컨셉진’ 세 권이 나를 반겼다. 6살 많은 언니야가 우울에 찌들어있을 막내 여동생을 위해 하나하나 고르고 골라 박스에 넣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부산에서 정기구독하던 컨셉진.
그 뒤로도 찌는 컨셉진을 종종 보내왔다. 포장 그대로 있는 아이들은 이따 하나씩 뜯어 보려고 아끼는 중!
컨셉진 한 권을 집어 들었다. 72호 '당신은 좋은 습관이 있나요?'편이었다. 1993년에 나온 영화 ‘사랑의 블랙홀(Groundhog Day)’에 대한 글이 유독 눈에 띄었다. 28년 전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을 이제 와서 왜?
주인공은 빌 머레이와 앤디 맥도웰인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다. (이 영화를 아는 당신, 외면해도 소용없다. 나와 같은 국민학교 세대다.) 지나간 가요와 아재 개그는 철저히 거부하는 내가 20년이 더 된 이 영화를 기억 속에서 더듬기 시작했다. 어떤 내용이었더라..
시니컬한 성격의 필은 날씨 예보관이다. 취재를 갔다가 오는 길에 폭설을 만나고 한마을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필에게 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마법에 걸린다. 온갖 일탈을 일삼고 나쁜 짓을 해봐도 눈을 뜨면 같은 날이 시작된다. 급기야 자살 기도를 하지만 침대에서 눈 뜨면 제자리다. 결국 그는 같은 하루를 스스로 다르게 살기로 선택한다. 그리고 클라이맥스, 리타와의 사랑 쟁취! 새로운 하루의 시작! 해피 앤딩! The End! 전형적인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다. 그런데 컨셉진에서 주목한 대목은 조금 달랐다. 그건 바로 필의 달라진 자세다. 그는 다른 삶을 살고자 피아노를 배우고 프랑스 문학을 배운다는 것이다. 피아노 선생님은 그를 매번 못 알아보지만 그의 피아노만큼은 점점 나아진다는 내용인데, 아차.. 나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내게는 그의 일탈과 로맨틱한 스토리만 남아있었다.
나와 필은 상황이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문득 20년은 더 된 영화의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꼈다. 그도 나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하루하루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분명 다른 점이 존재했다. 그는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 입고 무엇을 먹어도 아무도 모르지만, 나에게는 나의 사람들이 함께 있었다. 끊임없이 관심을 기울이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후 찌와 남편 그리고 단 한 명의 친구에게 나의 우울과 폭식의 패턴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오빠야, 엄마 순서로 알게 되었고 지하 10층까지 치닫던 나도 1센티씩 점점 지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매일 오후 3시 반이면 피아노 악보를 폈다. 가장 나른해서 몸이 더 쳐지는 오후 3시 반, 하루의 끝을 폭식이라는 일렁이는 파도에 싣기 딱 좋은 오후 3시 반에 말이다. 초등학교 때 체르니 100번을 끝으로 단념한 피아노다. 전자 피아노는 쩡이와 쭌이를 위해 부산에서 들고 온 것일 뿐, 내게는 장식품과도 같았다. 피아노 악보를 보는 법부터 다시 익혀야 했다. 콩나물은 음표요, 하얀 건 종이라.. 쩡이와 쭌이가 연습하던 바이엘부터 쳤다. 훗, 웬걸… 끝내는 데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나 알고 보면 음악 신동인가, 뒤늦게 재능을 찾은 건가 하고 오만해할 때쯤, 피아노의 사은품으로 받는 ‘클래식 100선’을 폈다. 악보를 펴는 순간, 현기증이 났다. 세네 개의 샴과 플랫은 기본이었다. 결국 부산에 있는 찌에게 피아노 편곡집을 부탁해서 배송받았다.
제아무리 쉽게 편곡된 악보라도 오랫동안 피아노와 담을 쌓고 살아온 내게 쉬울 리가 없었다. 하루에 한 소절을 완벽히 쳐내기도 어려웠다. 첫 곡은 샵과 플랫이 아예 없는 곡으로 고르고 골라, 오른손부터 시작했다. 그렇게 2년을 혼자 뚱땅 뚱땅대며 쳤다.
어떤 날에는 제법 쳐지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로봇 팔을 붙인 양, 손가락이 맘대로 돌아가질 않았다. 화가 나서 피아노의 뚜껑을 쾅하고 닫은 적도 여러 번 있었지. 치는 건 피아노인데, 느는 건 욕이라니. 피아노 앞에서 점점 욕쟁이 할매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이 반복되더라도, 멈추지 않고 쳤다. 10분 아니 5분이라도 매일 쳤다.
이제는 삐거덕대고 버벅대던 DJ.Okawari의 Flower Dance도 곧잘 친다. 편곡집이라는 편법을 쓰고 있지만 스스로 이뤄낸 쾌거에 만족하는 중이다. 첫 스타트에서 악보를 제대로 읽는 데만 시간이 한참 거리던 나로선 장족의 발전이다. 남편은 일요일 오후 내 피아노를 들을 때면 눈을 감고 허공에 피아노를 치는 흉내를 낸다. 쩡이와 쭌이는 최근 엄마의 피아노 실력이 늘었다면서 손뼉을 치기도 한다. 물론 그 손뼉의 배후에는 닌텐도를 30분 더 시켜달라는 시커먼 속내가 있지만.. 하지만 분명 엄마의 피아노 연습으로 아이들 또한 피아노 연습을 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루틴이 생긴 건 선한 영향력이다.
최근 찌는 바이올린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마음으로 바이올린을 배우기로 결심했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나와는 결이 다른 파도를 부시기 위해 바이올린을 잡은 게 아닐까 하고 짐작할 뿐이다. 우리는 서로의 연주를 녹음해서 보내기로 했다. 찌는 나의 피아노 녹음을 알림으로 설정했다고 한다. 누군가를 깨우는 게 나의 피아노라니.. 멋진 일이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찌의 속도에 맞추어 ‘나비야’를 합주하기로 약속하며 키득대는 우리다.
아직도 물어보지 않은 게 있다. 그 많은 컨셉진 중 왜 하필 그걸 뽑아서 보내 줬는지 말이다. 어쩌면 그저 얻어걸린 건지도 모른다. 얻어걸린 것이든 아니든 온 우주가 나를 돕고 있었다. 우울이라는 파도에 쓸려다니기를 그만하라고 말이다. 그리고 찌는 지금도 끊임없이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골라 전자책으로 업데이트해 주고 있다.
남편 또한 긴장이 풀리는 주말 오후에는 나를 더 유심히 살폈다. 록다운에 남편이 하노이로 돌아오지 못할 때는 대신 쩡이와 쭌이가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누군가에게 마크당하는 느낌이 들어 흠칫 돌아보면 쭌이, 쩡이가 서있었다. 왜냐고 물었다. 알고 보니 아빠로부터 비밀 임무를 받은 모양이었다. 엄마가 혼자 방에 오래 있으면 말을 걸고 문을 두드리라는 미션이었다. 모두가 CCTV가 되어 나를 지켜봐 주었다. 그렇게 우울이라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게 되었다.
오늘은 Kimura Yumi의 'Always With Me'를 양손으로 연주하는 대망의 첫날이다. 3시 반에 또다시 욕쟁이 할매가 되어 피아노 앞에서 끙끙거리고 있겠지.
그래도 나는 감히 외친다. 파도를 지배하려는 자여, 건반 위에 올라서라! 그리고 파도를 박살 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