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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Nov 12. 2023

영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AI. 미디어 산업의 미래

공교롭게 최근 연속해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됐다. 진격의 거인을 포함해서, 플루토, 귀무자, 푸른 눈의 사무라이까지. 다들 정말 굉장한 작화와 연출을 뽐내고 있었다. 무척이나 공들인 작화는 눈을 즐겁게 했고, 영화에서는 보기 힘든 파격적인 연출은 나를 들뜨게 했다.  

만화책을 고를 때 특별한 정보가 없는 경우에는 일단 그림체를 보고 만화를 고르게 된다. 그래서 만화의 작화는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이 즈음의 웹툰들도 작화에 정말 어마어마한 공을 들이고 있다. 한 회 연재를 할 때마다 어시스트들과 함께 며칠씩 그림 그리는 데 매달린다. 그만큼 만화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 즈음에 본 애니메이션들이 모두 작화와 연출이 미쳐있으니 인력도 시간도 어마어마하게 들었을 게 분명하다. 매번 감탄이 저절로 나오는 작화들을 보면서, 아니 이럴 거면 그냥 실사를 찍지. 하는 탄식이 나올 정도다. (그렇다고 실사는 쉽겠냐만은) 기술의 발전과 함께 애니메이션도 정말 현실과 구분이 가지 않을 만큼 놀랍 발전했다.  

아니 그러니까. 이걸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최장기간이라는 할리우드 작가들과 배우들의 파업이 얼마 전에 끝났다. 이번 파업 이슈 하나는 AI였다. 할리우드는 배우들의 얼굴을 디지털화해서 무제한 사용하려고 다. 그리고 작가도 AI로 대체하려고 했다. 쳇gpt는 다들 알다시피 거짓말도 능하고 스토리도 제법 잘 쓴다. 그러니 까다롭고 성가신 데다가 제작자가 원하는 이야기는 안 쓰고 엉뚱한 것만 쓰는 작가들을 얼마나 AI로 대체하고 싶었을까. 그렇게만 된다면 수십 명의 작가들이 동원되던 시나리오가 단지 몇 명의 작가만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AI에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이즈음 영화의 CG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고, 이제 아무리 눈썰미가 좋은 사람도 실사와 CG를 구분할 재간이 없다. (사람이 날아다니고, 괴물이 뛰어다니는 것이 CG라는 걸 모를 리 없다. 그러니까 내 말은 그게 그림이라는 티가 전혀 나지 않는다는 이다.) 때문에 촬영은 3-4개월 하 CG 1년씩 하는 게 지금 영화의 현실이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헐리우드는 자기 입맛에 맞는 이야기를 AI로 만들고 작가들이 이를 다듬는 방식으로 시나리오 작업을 하려 했다.  촬영 역시 주요 인물들만 촬영한 뒤에 디지털화한 수많은 배우들을 CG로 화면에 으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하면 비용을 엄청나게 절감할 수 있지만 작가와 배우들은 직업을 잃게 된다. 할리우드 노조는 이를 막으려 했던 것이다.


최근 어느 IT기업이 왜 회사가 직원은 뽑지 않고 그래픽 카드만 사 모으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직원을 하나 뽑는 것보다 그래픽 카드를 하나 사는 게 훨씬 싸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AI가 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이미 T셔츠나 넥타이 등의 일시적으로 유행을 타는 디자인이나 늘 비슷한 패턴의 무늬가 반복되는 영역은 모두 AI 가 하고 있다고 한다. 그저 사람은 어떤 게 필요하다는 요청을 컴퓨터에 입력할 뿐이다. 예전에는 그 요청을 실행하는 직원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AI가 그것을 대신하는 것이다. 당장 유튜브의 클래식 채널만 봐도 변화를 직감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저  바흐나 헨델의 얼굴만 있었지만 지금은 바흐가 덤벨을 들고 헨델이 커피를 만드는 등의 AI로 만든 그림으로 바뀌었다.

사실 지금은 누구라도 몇 번의 조작만으로 동영상을 만들 수 있는 시대다. 이를테면 쳇GPT로 스토리를 만들게 시키고 미드저니나 달리, 어도비 등을 이용해서 가상의 인물을 만들고 이 인물들로 동영상만드는 식이다. 그리고 이마저도 조금만 더 있으면 누구든 "이런저런 스토리를 가진 몇 분짜리 영화를 만들어 줘."라고 말하기만 하면 거의 실시간으로 AI가 알아서 결과를 뚝딱 만들어 주는 시대가 될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여서 딥페이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포르노 시장에서는 딥페이크 기술로 유명인들의 얼굴을 가져다가 포르노에 출연시키고 있다. 목소리마저 똑같다. 어떻게 보면 실제 연기를 한 배우, 얼굴이 차용된 유명인이나 모두 엿을 먹는 희한한 방식이지만,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려시도는 이제 거의 무의미한 지경이다. 그저 '이런 유명한 사람이 이런 영화를 찍겠어?' 하는 상식에 기대어 진위를 구별할 뿐이다. 지금은 목소리는 물론이고 노래까지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다. 임재범이나 브르노 마스가 부르는 하입보이 같은 클립이 유튜브에 넘쳐난다. 이쯤 되면 '내가 나비가 꾸는 장자인지 장자가 꾸는 나비인지'는 다 지랄 방귀뿡뿡 그냥 오리무중 대혼란이다.

   

이렇게 기술이 발전하고 인공지능의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면서 미래의 미디어 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흘러가고 어떻게 변할지 무척 궁금하다. 중후 장대 하던 카메라가 소형화되면서 영화 제작의 방식이 바뀌었고, 광범위하게 CG가 사용되면서 영화의 양상이 변했다. 셀로판지에 17 프레임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그려서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시대에서 컴퓨터로 3D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시대로 변했다. 애니메이션의 어떤 장면들은 정말 실사 이상이다. 그러니 이제 어느 순간, 실사와 같은 퀄리티를 뽐내는 애니메이션과 실제로 촬영하지 않고도 현실처럼 보이는 영화가 AI의 도움을 받아 결국은 한 점으로 모이지는 않을까? 두 장르의 경계가 무너지게 되는 건 아닐까?


영화 현장에서 수많은 배우와 스텝들에 대한 계약은 생각보다 꽤 번잡하고 골치 아픈 일이다. 하지만 현장 인력이 아닌 애니메이션 스텝들의 계약은 이 보다는 훨씬 단순한 편이다. 언제나 자본은 복잡한 것들을 지양하고 단순한 공정을 지향한다. 인건비 등 비용을 줄여서 이윤을 극대화하려 또한 자본의 속성이다. 그리고 현실은 미디어 자본이 AI의 발전과 함께 커다란 변화를 가져 올 어떤 것들을 이미 모두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과연 그들이 미디어의 미래를,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어디로 데리고 가게 될 나는 무척 궁금하다. 그 미래가 아직 미래로 남아 있는지, 아니면 이미 어제가 되어 버렸는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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