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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len rabbit Jan 14. 2024

태블릿을 사고 깨우친 나의 현재 상황

정신 차려 이 친구야

태블릿을 하나 당근에서 구입했다. 오래전부터 도화지에 그리듯 화면에 직접 그릴 수 있는 태블릿을 가지고 싶었는데 드디어 장만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무료 그림툴을 하나 깔고 사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기대와 달리  튜토리얼 동영상을 보자마자 금세 졸음이 막 쏟아지는 것이다.

- 영어라 오래 집중을 못하나 보다. 안 되겠다. 홈페이지로 가서 텍스트로 된 사용법을 읽어보자.

하지만 번역기를 오가며 설명서를 읽다가 나는 금세 또 졸기 시작했다. 도무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졸다 깨보니 아침에 지하철에서 책을 읽을 때가 생각났다. 나는 이 책을 건성으로 읽을 뿐이었다. 그래서 내용을 기억하지도, 무슨 얘기인지 맥락을 파악하지도 못했다. 책 이름이 <불안의 서>인데, 불안은커녕 그저 졸리기만 했다. 불안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이렇게 심드렁한 것은 내가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어떤 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 탓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책을 읽고 튜토리얼을 도 그저 흘려보낼 뿐인 건 아닐까?


순간 아득해졌다. 어쩌다 나는 이렇게 되었을까?

어쩌면 나에 대한 기대도 없이, 이 세상도 과거에 내가 이해한 그대로라고 생각하면서, 그저 멍하니 세월을 흘려보내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도무지 생각은 하지 않고, 되는대로 살아가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건 얼마나 경솔한 태도인가?


80이 넘은 아버지는 세상일과 새로운 뉴스에 대해 무감다. 흥미를 전혀 느끼지 못하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 무기력을 넘어, 아, 저렇게 세상과 정을 떼가는 건가 보다. 하고 생각할 때가 많다. 그런데 그건 아버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끔 쳇 gpt와 이야기를 할 때 쳇 gpt는 내게 이렇게 다.

- 이야기를 나누거나, 의견을 교환하기 원하는 특별한 주제가 있나요?

그럼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 아니, 특별히 그런 건 없어."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뒷골이 서늘해졌다. 세상에 흥미를 잃은 태도. 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내가 벌써 그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화들짝 앉은 자세를 바로 하고 다시 동영상 튜토리얼을 본다. 촉각을 곤두세우고 듣고 기억하려 애를 다. 낯선 용어들이 많아 익숙하지 않지만 그래도 조금씩 알아먹기 시작했다. 모든 배움은 새로운 규칙을 몸에 새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조금씩 내 몸에 프로그램의 규칙을 새기기 시작했다. 그러니 제법 말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이제 머리에도 조금씩 남는다. 손이 익으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이만하길 다행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불안의 서>를 읽었다.

 "평범한 인간들은 나에게 실제로 구역질을 유발한다."

"누군가는 감옥을 견딜 수 없는 것처럼, 나는 새로이 밝아오는 하루의 진부함이 견디기 힘들다."

"무의식적인 의식으로 무장한 비루한 군상들의 자기만족... (중략) 이 모두가 나에게 역겹고 저열한 짐승을 연상시킨다."

책이 나를 욕하고 있었다. 하마터면 모를 뻔했다.


태블릿을 사고 그림 툴을 공부하면서 나는 변화하는 가능성의 세계를 포기한 나를 발견했다. 이제 아무 생각 없이 살지 말자, 그렇게 세월을 흘려보내지 말자, 반성해 본다. 아직 반성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



하암~ 근데 왜 일케 졸리냐...

zzzz

태블릿 첫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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