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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일기장

by allen rabbit

가까운 사람 중에 자기가 죽으면 세상에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겠다는 사람이 있었다. 자기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는 나라는 존재가 없었으니까, 자기가 죽고 나면 자신이 있었던 흔적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았으면 한단다. 마치 머물던 자리를 깨끗이 청소하고 떠나듯이.

나는 그런 마음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순간까지 살고 싶다고 고함을 지르고, 몸부림을 칠 타입이기 때문이다. 나 여기 있다고, 더 있고 싶다고. 아직 할 게 남았다고.

며칠 전 본가에 갔을 때 어머니가 다락 정리를 하다 내 일기장을 발견했다며 가져가라고 하셨다. 그렇게 받아 든 일기는 박스 하나 가득이었다.

대학시절의 일기장들이었다. 일기장에는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도 알뜰하게 붙어 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그 시절 친구들의 이름이 소환되었다. 편지를 주고받던 사람 중에는 누군지 가물가물한 이름도 몇몇이 있었다. 어쩌다 잊혔는지 도무지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조금 읽어보니 의외로 너무나 세세한 기록이었다. 자세하게 서술된 20대의 어느 하루를 읽고 있자면, 마치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영화 나비효과처럼 일기장을 펼치고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 것처럼. 만일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나는 일기에 써 놓은 것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변할까? 기분이 묘했다. 일기를 읽는 도중 나는 깜짝깜짝 놀랬다. 너무나 솔직하고 가감 없이 있었던 일을 세세하게 적어 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기 속에 적은 마음속 이야기는 읽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솔직했다. 나는 일기를 왜 이렇게 쓴 것일까? 쓰는 행위를 통해 나의 선택과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해석하려 했던 걸까?

하지만 나는 일기장을 덮으며 생각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난 똑같다고.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여전히 쓸데없는 상상과 염려 그리고 헛된 다짐을 반복하고 있다. 사람은 정말 안 변하나 보다.

생각해보면 일기장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싸이월드가 유행하고 그 뒤로 다음 카페가, 다시 블로그를 거쳐 이제는 페이스북에 온갖 일상과 자질구레한 생각들이 남겨졌다. 나는 내가 일기처럼 살아온 흔적을 남긴다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유행 따라 곳곳에 글을 남겨놓았다. 나만 보는 일기장에 내 이야기를 적는 것과 웹에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은 조금 다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마치 개가 새로운 공간에 가서 오줌으로 영역을 표시하듯, 새로운 매체가 나오면 그곳에 글을 남겼다. 세상천지에 온갖 흔적을 여기저기 남긴 셈이다. 어쩌면 내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을 흔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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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페이스북은 돌아가신 분의 생일을 알려주기도 한다. 망자의 계정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인데, 그걸 볼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내가 세상을 떴을 때 어떤 어플은 죽은 내 생일을 축하해 주라는 메시지도 뜰 거다. 선물 랭킹 1위로 양념 반 후라이드 반을 추천하면서.

이 세상에 남겨지는 내 흔적들은 나 없이도 의미가 있을까? 실체 없는 관념의 조각들만 세상에 남는 일이 조금 섬뜩하기도 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아무것도 세상에 남기지 않고 떠나겠다는 사람의 의지가 조금 이해가 된다.

내게로 다시 돌아온 30년 전의 나. 나는 내 의지 없이 세상에 왔지만, 나는 세상에 온 의미를 찾겠다고 부단이도 몸부림치던 20대의 일기장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그래서 30년 뒤의 너는 세상에 온 의미를 찾았느냐고.

"아니, 아직도 찾는 중이야. 그리고 아직도 세상은 내게 낯설다. 미안."

KakaoTalk_20221008_214712967.jpg 다녀온 카페 성냥갑을 언제 누구와 다녀왔다는 걸 적어서 모으던 시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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