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는 결혼식이 있었다. 몇 달 전 한국과 조지아의 문화 예술 교류를 위해 열린 <2022년 한국-조지아 작가 축제> 로 조지아를 함께 다녀온 여러 문화 예술인 중 한 사람의 결혼식이었다. 8월 초에 이 행사를 함께 다녀오고 친해진 몇몇 사람들은 지난 9월에 만나고 그제 10월의 결혼식에 다시 모였다. 조지아 여행을 마치면서 우리는 매달 만나자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는 2달째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1시 반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는 근처 공원에 모여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야기 속에서 아랍의 왕자가 등장하고, 아재 개그가 발을 걸어 자빠뜨리고, 우리 중 하나를 사막의 모래밭에 파묻었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웃고 떠드는 사이 시간은 훌쩍 다섯 시를 넘겼다. 우리 중 한 명이 연희동의 어떤 행사를 언급했고 거기 음식이 있으니 간다는 어처구니없는 핑계로 우리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청담에서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한참을 걸어야 하는, 족히 한 시간은 걸리는 대장정이었지만 우리는 기꺼이 수고를 감수했다. 그대로 헤어지기 아쉬운 탓이다. 연희동의 행사장에 도착한 우리는 배를 채우고 멋진 피아노 연주를 선물로 남겨주고 다시 다른 술집으로 옮겨갔다. 연극 연출가, 소설가, 작곡가, 시나리오 작가, 연극배우, 시인, 감독, 동화 작가, 건축가... 이 각양각색의 직업을 가진 9명은 공통점도 없지만 잘도 떠들어 댔다. 인생 최대의 실수가 결혼인데 사람들은 그걸 매년 기념한다며 웃다가 자정 무렵 술집을 나왔다. 그리고 천변 오두막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새벽까지 또 계속 웃고 떠들었다. 우리는 작곡가 선생이 주관하는 11월의 행사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새벽 늦게서야 헤어졌다. 틀림없이 우리들은 다음 달 그 행사징에서 만나 매달 보자는 약속을 지켜가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대학시절의 일기장을 다시 봤던 일이 기억났다. 일기장에 적힌 어떤 이름은 얼굴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새 그 사람이 잊혀져 버린 것이다. 세상에서 사라진 것이다. 기억이 나지 않는 사람은 내게 죽은 것과 다름없다. 사실, 나이가 들수록 나의 주변은 점점 단순해지고 앙상해져 갔다. 만나는 사람만 만나게 됐다. 띄엄띄엄 만나던 사람은 어느 순간 영영 다시 만나지 않게 되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되는 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었다. 나이 들어갈수록 자기 담장은 높아가고, 사람들은 점점 더 많이 내 담장 밖에 남게 되니까. 게다가 그들도 담을 쌓는다. 그래서 때로는 문득 이렇게 혼자가 되어가는구나 쓸쓸하기도 했다. 내가 속이 자꾸 좁아지니까 다른 사람이 앉을자리가 없다며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주변이 훌훌 떠나는 사이, 또 새로운 사람이 속속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이 조지아 팀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그러니 누군가는 떠나고 또 누군가는 새로 나타나는 거다. 앙상하게 말라죽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직 때가 일렀다. 새삼 새로 알게 된 사람들이 고마웠고, 그들을 떠올리자 저절로 빙그레 웃음이 지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들을 알아가는 건 신나는 일이다. 만일 내 곁에 아무도 있으려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주변의 사람들이 떠나기만 하고 텅 빈 채 남는다면 또 얼마나 적막할 것인가. 새삼 나를 받아주고 새롭게 인연이 되어 준 사람들이 소중했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그래도 새로운 사람들과 인연을 만들어 가는 나를 조금은 칭찬해도 될 것 같았다. 잘하고 있어. 하고.
그래서 또 괜히 빙그레 웃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