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편지
좋은 집, 멋진 야경, 엄청난 작품 컬렉션이 있어도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없으면 그다지 행복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진부한 말이지만 공허한 성공이란 그런 것일까. 같이 있으면 서로의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꼭 연인이 아니더라도 존재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불안해하거나 집착하거나 싫증 내지 않고 서로를 오래 바라봐줄 수 있는 사이.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것도 기쁠 것 같다.
영국에서 한 달을 지냈다.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너무 더디게 흐르기도 하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기도 했던 시간들. 큰 사고 없이 건강하게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떠나면서 계획했던 것을 다 이루지는 못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기쁨도 느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외로움을 탄다거나, 은근히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는다는 등 나에 대해 몰랐던 모습들도 발견했다. 좋은 예술 작품들을 통해 근사한 생각들도 많이 떠올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두려워하는 것,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었다. 무엇보다 특별함은 나의 이야기 속에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 달 동안 영국을 여행하면서 한 번의 충격으로 깨달았다기보다 서서히 스며들듯이 든 생각이 있다. 나는 예술가로 살아야겠다는 결심,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어떻게든 세상에 전해야겠다는 다짐. 내 삶의 가능성을 사회의 기준에 맞추지 말자. 매일 보고 읽고 쓰고 느끼고 전하는 삶을 살자. 그리고 삶과 사람을 사랑하자. 한국에 돌아가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고 감동받고 감사하는 나날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