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사랑하기 위하여
풍경은 어쨌거나 사진에 담았을 때 더 아름답고, 사진을 찍으려면 좋지 않은 날씨를 견디고 화장실을 고생스럽게 찾아야 하겠지. 일단 여행지의 이국적인 표면을 뚫고 들어가면 외국에서의 삶은 집에서의 일상과 실망스럽게도 닮았어. 여행의 낭만을 위해 표면에 머문다면 네가 낭만적으로 그린 이들과 마주 앉아서 필요 이상으로 바보같이 굴어야 할 거야. 또 절대 공유하지 않을 삶을 염탐하며 그곳에 국외자로 머문다는 점 때문에 우울해질 뿐이야.
-「가끔 난 행복해」 (옌스 크리스티안 그뢴달 Jens Christian Grøndahl)
여행 잘해놓고 글까지 써놓고 갑자기 이런 문장으로 에세이를 마무리한다니. 사실 난 위 내용에 아주 동의한다. 1000% 공감하는 이야기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왜 떠날까? 이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인생은 간단하지 않아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붙여야만 설명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떠났고, 왜 썼고, 왜 또다시 다른 여행과 글쓰기를 꿈꾸는 것일까.
솔직히 나는 여행을 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도, 무조건 여행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좋아한다. 절박하지 않게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요즘은 뭔가에 미쳐야 하고, 이게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식으로 살아야 할 것 같은 분위기다. 하지만 나에게 여행은 1년에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곱씹어 볼 순간들이 많다.
문득 길을 걷다가 여행을 와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지금과 완전히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 핫트랙스 종이봉투 속 대파, 거리에 유난히 많은 외국인들, 대체 어떤 영업을 하는지 궁금해지는 요상한 인테리어의 가게, 전철 속 아이들의 웅얼거리는 시끌벅적함, 울창한 나무 밑에서 올려다본 하늘을 마주했을 때 그렇다. 하지만 곧 지긋지긋하게 익숙한 공간에 들어서면 그 기분은 금세 사라져 버린다. 아무리 붙잡아보려고 해도 손 사이 모래처럼 흩어져버린다. 손에 잡히는 산뜻함이 지속되는 시간은 저장된 이미지의 풍부함에 달려있다. 여행에서 얻어 오는 건 익숙한 대상의 새로운 이미지들인 것 같다. 퇴근길에서 런던의 야경을 떠올리면 반짝거리는 기분이 드는 것처럼. 몸에 남아있는 그때의 공기와 감각이 순식간에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나는 그런 일상의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글을 쓴다.
여행과 감상 에세이 중간에 있는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도 그 순간들이 와닿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다. 앞으로 내 인생에 더 이상의 여행 에세이는 없을지도, 아니면 아예 여행 작가로 살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내일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모르니까.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건강하고 행복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아트필러 K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