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전 도망가고 싶어요.

코벤져스 인터뷰 (2)

by 코로나기

“ 코로나가 심해지기 시작했던 1월 첫째주부터 회사 내부에서 ‘올해는 힘들 수도 있겠다’는 말이 있었어요. 앞으로 당직서고, 주말에 출근해야할 수 있고, 사무실도 도청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서 겁을 많이 주셨거든요. 그런데 정말로 설 연휴 쯤에 긴급 소집해서 상황 회의하고 분위기가 심각해지면서 이제 진짜 우리가 준비한 것을 실전으로 하게 되겠구나 실감했어요.“


코벤져스. 과연 그들이 없었다면 'K-방역'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었을까. 바이러스의 최전선에서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매일 방호복이라는 칼과 방패를 들고 전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그들을, 보건 의료종사자들 그리고 '코벤져스'라고 부른다.


인터뷰이 : 다리찢는뱁새 (29, 감염병지원단 소속 연구원)

일시 : 2021년 6월 26일

인터뷰어 : 박지원




Q. 근무한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A. 2016년 12월부터 근무했어요. 이전에는 간호사로 외래에서 2년 근무하다가 병동에 올라가서 5,6개월 정도 있었어요.


Q. 그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일과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간호사로 근무할 당시에 호흡기 병동에 있었는데 아무래도 대학 병원이다보니까 중증도가 높은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대부분 3,4차 항암치료 하면서 이 사람이 죽어가는구나 눈에 보이니까 그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짧은 5,6개월이었지만 감정적 소모가 너무 컸어요. 태움은 심한 편이 아니었지만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하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탈출할 수 있으면 하는 생각에 공고 뜨는 것도 많이 찾아보다가 그때는 한 곳 있었던 경기도 감염병 관리 지원단에 지원을 했죠. 되든 안되든 일단 해보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Q. 지금 하는 업무에 대해 자세히 소개해주세요.


A. 코로나 19 라는 상황이 터지기 전에는 보건 교육도 하고, 역학조사 지원을 했어요. 학교에서 손씻기 교육을 진행하거나 질병보건통합시스템으로 의료기관에서 특별한 감염병이 생기지는 않았나 감시하는 일을 했죠. 코로나바이러스도 ‘신종 감염병 증후군’ 으로 신고가 들어왔어요. 코로나 터진 이후로는 역학조사 지원에 신경 쓰고 있어요. 현장에 나가거나 GPS를 분석하고, 접촉자와 감염자 사이에 관련성 등을 분석하면서 연결고리를 찾아가요. 교육도 하고 있기는 한데 역학조사관 교육은 인력도 부족하고 시간도 없어서 문제네요.


Q.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나요?


A. 초반에 확진자가 하루에1-2명 나올 때 사람들이 낙인을 많이 찍었어요. 여기는 시골 지역도 있고 그러다 보니 집주소와 근무지가 털리고, 직장에서도 낙인 찍고. 제일 기억에 남는 분은 집이랑 식당을 같이 하는 사장님이 걸려서 식당명이 공개가 된거에요. 그때 식당에 방문했던 사람들은 코로나 검사 받으라고 연락이 나갔는데 사람들이 식당을 검색해서 전화로 욕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할아버지는 이미 입원을 한 상태였는데 집에 있는 가족분들께 너 대구 사람이냐, 신천지냐” 라면서 욕하고, 하루에 전화 100통 넘게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Q. 어려웠던 점이나 힘들 때가 있었나요?


A. 보건소에서 인사이동 할 때 교육하는 게 조금 힘들어요. 매일 중대본 회의 참석해서 계속 따라가고 있어도 방역지침이나 수칙, 정책이 자꾸 바뀌거든요. 지침 1부터 9판까지 나오는데 1년이 안 걸렸어요. 계속 수정이 되는데 그런 부분들을 캐치해서 보건소에 알려줘야 해요. 그리고 지침이 있어도 일선 현장에서는 따라가거나 적용하기 힘들죠. 그런 부분에서 노력하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Q.비상근무체제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주말, 주중에 다 출근하나요? 심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한계를 느낀 적은 없는지 궁금해요.


A. 저희는 작년에 코로나가 처음 터졌을 때는 아무 체계도 없는 상황에서 뛰어들었어요. 24시간 근무체제로 연구원 6명이서 3교대에서 2교대로 바꿨다가 당직제로 다시 바꿨죠. 주중에는 다 같이 근무하고,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1,2인 체제로 일하고... 여섯 명 밖에 안되니까 돌아오는 순서가 빨라요. 지금은 훨씬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는데, 코로나는 하루이틀로 끝나지 않으니 장기적으로 대응하려면 서로 이해하면서 같이 으쌰으쌰해야죠.


Q.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종식까지는 아직 요원한 상황입니다. 어떤 심정으로 코로나 시국 최전선에서 일 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A. 죄송한데 전 도망가고 싶어요. 끝날 것 같지는 않고, 끝까지 대응하기에는 심리적 신체적으로 소모가 심해서… 순환근무로 탈출을 꿈꾸고 있습니다.


Q. 연구원에서는 백신 관련 업무를 하고 계시는 게 있나요?


A. 백신이 현장에서 잘 이뤄질건지 평가하는 일을 해요. 처음에 우리나라에서 해본 적이 없던 것이라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현장컨설팅 나가서 보면 깔끔하게 세팅도 잘하고 인력도 잘 돌아가더라고요. 위탁의료기관에서 잘 진행되는지는 현장 점검이 필요한 부분인데 보건소에서 잘 안하고 있어요. 백신도 결국 보건소에서 다 끌어안고 가는 상황이 되다 보니까. 보건소에 대한 인센티브나 해결책이 필요한 것 같아요.


Q. 현장에서 느끼는 방역 사각지대가 있나요? 현장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점이 있는지 궁금해요.


A. 방역 사각지대는 있어요. 아무래도 지역 특성상 사각지대가 더 심한 곳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일하는 지자체의 경우에는 우선 어르신분들이 많아서 언론에서 전하는 소식에 느리기도 하고 사각지대가 있죠. 현장에서 바뀌었으면 하는 점은 너무 많은데 현실적으로 바뀌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Q. 두 분 다 본인이 선택한 직업과 근무지에 만족감을 느끼나요? 후회했던 순간은 없었나요?


A. 공무원으로 선택한 직업에 대해서는 만족도가 높았어요. 보건소 들어오면서 회의감을 느꼈죠. 공무원으로 일을 하다 보면 인사발령으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역량을 늘려갈 수 있고 어떤 업무를 해도 할 수 있게 되는게 목표였는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다른 업무들과 협력도 떨어지고 이해도도 떨어지고 인식도 안 좋으니까 많이 후회했어요. 지금도 다른 곳으로 이직해야하나 고민이 들 정도로 힘들어요. 간호사 일이 최고로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당직제 하면서 3교대 보다 힘들다고 생각이 들어서 옳은 길인가 하는 회의감이 드네요.


Q. 현장 의료진, 직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A.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는 하지말라고 하고싶어요.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말도 하고 싶지 않고...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어요.


Q. 코로나19 상황이 안정기에 접어들고 여유가 생긴다면 무엇을 제일 하고 싶나요?


A.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에는 출장이 정말 많았어요. 출장 가서 일하고, 공부도 하고, 학회도 듣고 저녁먹고 돈독하게 이야기도 하고 … 이젠 그러지 못하죠. 코로나가 안정기에 온다면 이전처럼 그냥 좀 더 즐겁게 일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교육 기획이나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하고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Q. 코로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많은 것이 변한 시대, 어떻게 우리는 이 바이러스와 함께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A. 코로나 이후에 일상적인 면에서 많이 변했잖아요. 학교에 나가는 것도 사람수 맞춰서 나가고, 격주로 나가고 뭐 그런 것처럼? 그래서 저는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이 타국에 비해서 접촉이 많은 나라라 뭐든 같이 모여서 이야기하고 음식도 나눠먹고 위험노출 요인이 많잖아요. 그런 부분들이 코로나로 바뀌고 있고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문화도 점차 바뀌어가고 백신접종도 빨리 진행되고 치료제도 나오면 괜찮아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신종인플루엔자때도 타미플루로 금방 나을 수 있었으니까 코로나도 금방 앓고 나을 수 있는 질환이 된다면 좋겠어요. 문화의 변화와 바이오의 노력이 필요하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손 잘 씻고 기침예절 잘 지키고. 담배 피우고 침 뱉고 그런 거 안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