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이 : 최예빈 (25, 대학 17학번)
인터뷰 일시 : 2021년 3월 27일
인터뷰어 : 박지원
Q. 교환학생 가기 어렵다는 말 많이 들었어요. 준비하면서 기대한 게 많았을 텐데, 본인이 생각한 것과 비교했을 때 어땠나요?
A. 사실 가기 전에는 인종차별이 고민이었어요. 혹시나 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있지는 않을까 두렵기도 하고 영어실력으로 소통이 안되지는 않을까 고민도 했죠. 그런데 막상 미국에 가보니까 생각보다 한국의 위상이 높더라고요. K-POP 영향인지 오히려 제가 한국 사람인 걸 알아보고 먼저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고요. 소통에 있어서도 큰 문제없이 수월하게 생활하고 왔습니다.
Q. 미국 생활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였어요?
A. 음, 말씀 드린 것처럼 한국의 위상이 높아 졌다는 거? 코로나가 터지기 이전부터 방탄소년단이나 블랙핑크처럼 K-POP으로 한국이 잘 알려졌었는데, 그때쯤 영화 <기생충>이 수상을 받으면서 더 위상이 높아진 것 같아요. 토론 수업에서도 기생충이나 K-POP, K-방역에 대해서 다뤘는데, 제가 수강생 중에 유일한 한국인이라 발표할 기회도 많았고 제 레포트가 참고자료로 쓰이기도 했고요.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생활이었죠.
Q. K방역을 다룬 수업은 어떤 수업이었나요?
A. 문화 관련 커뮤니케이션 수업이었어요. 당시에 방역에 있어서 한국이 이슈가 되고, 한국인 학생이 있다 보니 교수님께서 이런 주제를 선정하신 것 같아요. 신기했던게, 한국과 미국이 마스크 착용을 바라보는 관점이 서로 다르더라고요. 한국은 아무래도 미세먼지로 마스크 착용이 상용화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딱히 불편하다고도 인지하지 못했는데 외국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이걸 자유와 인권문제로 연결을 시키더라구요. 그 친구들은 한국 사람들이 정책에 대해 반발하지 않고 따르는 점을 신기하게 바라봤던 것 같아요.
Q. 음, 어려운 질문일수도 있는데… 그럼 한국 사람들이 정부 정책에 따를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A. 아무래도 서로 피해를 주기도, 받기도 싫어하는 정신이 작용했지 않았나 싶어요. 미국은 개인주의가 강해서 자기자신이 공동체보다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자기가 불편하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한 반면에 한국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말아야한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 정부방침에도 따라준 것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Q. 미국에서 처음 코로나 소식을 접하셨을 텐데, 타지에서 코로나19 소식을 접했을 때 어땠어요?
A. 초반에는 부모님을 통해서만 들었는데 설마 미국까지 퍼질거라곤 상상도 못했었죠. 사실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잘 인지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저는 심지어 3월 초까지도 남미로 여행하면서 다녔는데 그때 제 주변 사람들은 아무도 마스크를 착용하지도 않고 다들 파티하는 분위기 였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락다운 됐다고 하니까 많이 혼란스러웠죠. 집에서도 마스크 보내주고 저를 많이 걱정했는데 당시 제가 있던 미국과 상황이 달라서 좀 혼란스러웠어요.
Q. 코로나 19 확산 이후에 아시아인에 대한 인종차별, 혐오가 심해졌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그랬나요?
A. 봄방학에 남미 쪽에 여행을 갔었는데, 그 지역사람들이 차를 타고 가면서 “너네 나라로 돌아가!” 라고 소리 지르더라고요. 그게 아시아인인 저에게 한건지, 아니면 저희가 외부인이라 한건지 헷갈려서 넘겼지만 어떻게 보면 그것도 인종차별이라고 볼 수 있겠죠… 그리고 LA에서 같이 사셨던 할머니가 재채기를 하셨는데 점원분께서 계산 후에 물건을 안 담아주시면서, 코로나에 걸렸을 수도 있으니까 못 담아주겠다면서 쫓아내듯이 내보냈어요. 그런거 들으면 속상하기도 하고, 과연 재채기를 해서 그런건지 아니면 아시안이어서 그랬었나 하는 생각이 없잖아들긴했어요.
Q. 처음 한국 돌아왔을 때 지인들 반응은 어땠나요?
A. 무사히 돌아온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분위기였죠. 그 당시 귀국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코로나 감염이 많았어요. 저도 불안해서 비행하는 열 몇 시간 동안 화장실도 안 갔어요. 그래서 지인들은 안전하게 귀국한 것 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해줬죠. 한편으로는 아쉽겠다 이런 반응도 많았어요.
Q. 귀국한 후에 자가격리 시간은 어떻게 보냈어요?
A. 일단 온라인으로 계속 수업을 듣고 있던 상황인지라 밤낮도 바뀌고, 시험도 준비하면서 자가격리 2주를 보냈어요. 그 뒤에는 친구들을 가끔씩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취업 준비도 생각하게 되고 한국에서 할 일을 고민하게 됐죠. 오픽 자격증도 따고 인턴도 지원하고 했어요.
Q. 이제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코로나와 같이 살아야 하는 시점이 왔어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좀 더 지혜롭게 바이러스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요?
A.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정부에서 방역도 잘 하고 있으니까요. 절대적인 상황 앞에서는 생각이라도 긍정적으로 하고, 단기적인 목표를 세우면서 살아가는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