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재난은 매뉴얼 부재 때문...의사 수 늘리는 건 해결책 아냐
인터뷰어: 주성진(의대생, 26)
인터뷰 일시: 2021년 3월 19일
인터뷰이: 유하빈
(본 인터뷰에 실린 답변은 인터뷰어 주성진 씨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의료계의 입장을 대변하지 않는다.)
Q. 의학을 전공하게 된 이유가 있나.
A. 대단한 사명감이 있던 건 아니다. 수학이랑 과학을 좋아했고 성적도 잘 나왔다. 내가 가진 재능을 나누는 사람이 되고자 택한 분야다. 이과계열 연구분야를 택할 수도 있었지만 연구보다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교류하는 직업이 나와 더 잘 맞을 것 같았다. 꼭 의사가 되지 않더라도 의학을 공부해 두면 다른 직종에서도 충분히 응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의예과 진학을 결정했다.
Q. 요즘 수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업에 지장은 없는가.
A. 지금 본과 4학년 재학 중이다. 학과 커리큘럼 상 본과 4학년은 병원에 실습을 나간다. 실습을 진행하지 않으면 진행이 안 되다보니 코로나19 상황과 무관하게 실습은 계속 진행했다. 다만 세미나는 대부분 취소됐고, 교양수업은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당연히 병원 실습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는 선에서 진행한다. 실제 현장에서 진행되는 만큼 더 철저하게 지킨다. 교수님을 포함 5명을 넘지 않는 인원 안에서 진행하고, 마스크도 KF94 이상만 착용할 수 있다. 호흡기환자와는 접촉할 수 없도록 동선 및 실습을 구성했다.
Q. 코로나19 상황 속 의료계에서 다양한 이슈가 발생했다. 코로나19 시국을 겪으며 진로에 대해 고민하지는 않았나.
A. 오히려 의학 전공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게 됐다. 이번처럼 의료진을 향해 전 국민이 응원을 보낸 적이 있었나 싶다. 정말 감사했다.
학교에서도 의료적 재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문가로서 의견을 개진하고, 현장으로 가는 것이 의사의 사회적 책무라고 가르친다. 의료진의 헌신은 당연했다.
Q. 의료진을 향해 응원을 보내는 한편, 대한의사협회 소속 의사들의 파업과 의대생 국시거부 등으로 ‘의사’들에 대한 대중의 시선이 곱지 않아진 것도 사실이다.
A. 알고 있다. 일련의 사건들을 거치며 소통의 중요성을 많이 느꼈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파업을 선택한 당위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의대 증설과 공공의료원 설립이 향후 감염병 확산 등 의료적 재난 상황을 대처하는 데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설명했어야 한다.
의료계에 종사하게 될 사람 중 한명으로서 물론 파업 당시 국민들이 겪었을 불편에 대해서는 송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다만 의료계가 환자를 팽개치고 거리로 나간 것처럼 보여지는 것은 아쉽다. 파업 당시 파업의 주체는 수련을 받고 있는 전공의들이었다. 그 위에 전임의와 교수들이 있다. 전공의의 자리를 매우고, 의료대란 발생을 막기 위해 퇴근도 못하고 근무하신 전임의와 교수들이 많았다.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던 환자에게는 파업여부와 관계없이 충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고 본다.
Q. 언론보도에 따르면 의사면허를 가진 이들 중 약 14% 정도만 파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실질적으로 참여한 정도가 낮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대한의사협회가 파업을 통해 피력하고자 했던 의견이 의료계 내부에서도 충분한 공감을 못 받고 있는 것처럼 비춰진다.
A. 의사면허를 가진 의사 대부분은 개원의다. 앞서 설명했듯 이번 파업의 주체는 전공의들이었다. 전공의를 기준으로 보면 적은 숫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교 내부에서도 파업에 동의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Q. 파업과 국시거부 등 단체행동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어떤가. 대한의사협회가 파업 당시 정부에 요구했던 사항은 의대정원 확대 취소, 공공의대 건립 계획 취소, 한방첩약급여화 등 학의학(약) 관련 보건 정책 폐지, 비대면진료 육성 철회 등이다. 사항들만 보면 의료계 종사하지 않는 이들이 느끼기엔 ‘밥그릇 지키기’로 보여 질 수밖에 없다.
A.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자면, 정부의 명제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 상황을 겪으며 정부와 국회가 의대정원 확대나 공공의대 건립 등을 추진하는데 속도를 낸 것이 의료진 숫자가 부족해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해서다. 의사들이 코로나19 확진자가 폭증하자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처음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건립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하루 확진자 수는 100명 남짓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그보다 수배 많은 확진자가 매일 나오는데도 의료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은 찾기 어렵다.
의료진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경험해보지 못한 전염병에 대처하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현장이 혼선을 빚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업무가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했고, 공중보건의 등 정부가 운용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데 실패했다. 체계가 잡히지 않아 과부하가 걸린 것이지 인력난은 아니라는 게 내 입장이다.
공공의대도 마찬가지다. 공공의대 목적이 소아외과, 흉부외과 등 의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과를 육성하겠다는 거다. 그런데 지금 흉부외과나 소아외과 전문의를 고용하는 병원이 없다. 수요가 많지 않아 만성 적자를 보는 과이기 때문이다. 뽑는 곳이 없으니 전공하려는 사람도 없는 거다. 정부는 공공의대가 아니라 소아외과전문병원, 흉부외과전문병원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정부와 국회가 ‘의사 양성’과 관련해 당사자인 의사들과 충분한 협의를 거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의대를 설립하고 의사를 배출하는데 세금도 많이 들고, 의사수가 늘어나면 건강보험 제정 소모도 늘어난다. 굉장히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는 문제다. 급하게 추진할 정책이 아니다. 의사들과 협의할 생각도 하지 않고 법안부터 던지니 파업이라는 극단적이 수단을 쓰는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보기에 ‘밥그릇 지키기’로 비춰지는 건 소통 부족 탓이 크다. 파업 전에 좀 더 치밀하게 설득하고 설명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Q. 국시를 거부했던 의대생에게 정부가 시험 응시 기회를 다시 부여했다. ‘공정’이라는 시대적 화두가 이 이슈에 결부됐다. 앞서 의사와 의대생의 단체행동에 동의한다고 밝혔기에 이 질문을 던진다. 본인은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하다.
A. 세상에 있는 사람 수 만큼 공정의 정의는 다양하다. 저마다 해석이 다르고, 어디에 얼마나 무게를 두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공정을 말할 때 ‘형평성’을 중심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 많은데, ‘비례성’에도 무게를 둬야 한다. 예를 들어 주식에 투자한 사람이 많은 수익률을 달성하는 게 주식 투자를 하지 않은 사람과의 형평성을 따지면 불공정하다고 여길 수 있으나, 비례성을 따지자면 위험부담을 앉고 투자해서 높은 수익률을 달성한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예를 들자면 복지의 관점에서 고소득층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저소득층이 혜택을 많이 받는 걸 불공정하다고 보지는 않는다.
형평성에 무게를 두면 시험 기회를 다시 부여한 게 공정하지 않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의사를 배출하지 못해 의료 인력난을 겪게 된다면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그러니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시험 기회를 다시 주는 게 공정한 것일 수도 있다.
참고로 의대생들이 시험 기회를 다시 달라고 정부에 공식적으로 요청한 적은 없다. 정부가 시험 기회를 다시 열어준 것은 대의적 차원이라고 본다. 정부가 이번 일로 공정을 헤쳤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Q. 본인이 생각하는 의사의 직업관은 무엇인가. 어떤 의사가 되고 싶은지 궁금하다.
A. 학교에서 전인적 치료를 강조한다. 전인적 치료란 환자를 치료의 대상으로만 여기는 게 아니라 환자가 정신적, 사회적으로 겪을 어려움까지 고려하는 것을 말한다. 환자를 넓은 시야로 케어하면서 환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질병이 아닌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 치료를 마친 환자가 다시 사회의 건강한 일원으로 되기까지의 과정을 의료진이 같이 하는 것이다. 나도 전인적 치료를 실천하는 의사가 되고자 한다.
Q. 코로나19 시국을 지나며 중요하게 느낀 가치가 있다면.
A. 감정의 교류가 소중하다는 걸 많이 느낀다. 코로나19로 언택트 시대가 생각보다 너무 앞당겨졌다. 사람이 얼굴을 마주하지 않고 교류하는 상황이 됐다. 앞으로 기술이 발전하면 이런 언택트 문화가 더욱 공고히 자리 잡을 것이다. 그래도 사람은 얼굴을 맞대고 직접 목소리 들으며 감정을 주고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못 보니 나도 많이 힘들었다.
경험의 소중함도 느꼈다. 여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기쁨, 감정, 지식이 있다. 코로나19 상황이 좀 나아지면 제일 먼저 친구들과 여행 가고 싶다.
Q. 코로나19를 비롯해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지 모를 미지의 바이러스까지, 인류는 앞으로 바이러스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바이러스와 지혜롭게 공존할 수 있을까.
A. 인류의 가장 큰 무기는 적응력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분명 비극이다. 하지만 인류의 강인함과 가능성을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새로 등장할 바이러스에 잘 대처할 수 있는 예방주사 역할도 할 것이다.
앞으로 코로나19 같은 바이러스는 계속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바이러스가 발전하는 동안 뛰어난 적응력을 바탕으로 인류도 함께 발전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