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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kim Nov 18. 2024

발레 수업을 듣고 싶어서요.




“30년 전 퐁피두 센터 근처에 발레스쿨과 연극 공연장이 같이 있던 막다른 골목이 있었어요. 가능하시면 안 가이드님과 같이 가서 며칠이지만 그곳에서 댄스 클래스를 알아보고 등록을 하고 싶어요. 구글맵에서 비슷한 장소를 찾았는데 아마도 이곳 같습니다.”


인터넷으로 파리의 안성규가이드 웹사이트에서 반나절 프라이빗 투어를 신청하고 보냈던 문자의 일부이다. 안 가이드가 날 한 번이라도 봤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얼마나 황당했을까 짐작하고도 남는다.


“아니, 지공거사도 넘긴 양반이 그 나이에 발레를 배우시겠다고?”

“그것도 파리에서?”

“그래서 날더러 데려다 달라고?”


그렇지만 그가 나를 만나고 한 첫마디가 “발레스쿨부터 가시지요“ 였다. 역시 프로였다.



삼십 년 전 그날, 나는 런던에서 새벽 비행기를 타고 와서, 샤를르드골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전철을 탄 후 다시 택시를 타고 시청 앞에서 내렸다. 택시 기사는 나에게 손을 저으며 호텔까지는 못 들어간다고 하는 것 같았다. 거기서 물어 물어 호텔을 찾아가다 어느 오래된 골목 안에 들어섰는데 갑자기 음악소리가 들려서 쳐다보니 낡은 건물의 창문 너머로 어린 소녀들이 까만 바디 슈트를 입고 무용연습을 하는 것이 보였다.


”여기가 유럽이구나.“

그리곤 돌아 나와 겨우 호텔을 찾아간 적이 있다.


가끔씩 파리 생각을 하면 그 동화 같던 발레스쿨이 생각이 나서 그 후에도 마레에 갈 때면 퐁피두센터 근처를 배회하다 어느 때는 찾은 것 같았다 그 담에는 못 찾고 하는 숨바꼭질을 되풀이하였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다 올 초, 파리에 또 가는 김에 이번엔 마레에서 오 박 육일을 지내겠다 결심을 한 후 어떻게든 발레스쿨을 찾아 다시 가 보고 싶었다. 마침 작년 파리포토 기간 중에 첨 만나서 내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셨던 안 가이드 생각이 났다.


“불어 잘하시고 파리를 잘 아시는 이분에게 부탁해 보자.”


이번엔 구글맵을 샅샅이 뒤져보니 퐁피두센터 근처에 내 기억과 매치하는 댄스교습소가 있었다. 사진으로 보니 맞는 것 같았다.



그때는 대학 때 산 필름 사진기를 들고는 다녔지만 요새같이 거리에서 지나다니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는다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할 때였다. 필름이고 인화고 현상이고 너무 비싸서. 하지만 삼십 년 전 그때 내 눈앞에 있었던 바디 슈트를 입고 깡충거리면서 춤을 추던 어린 아가씨들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 사진 보다 더 선명하게 남아있었다. 그들의 모습을 진짜 사진으로 담고 싶었다. 안 가이드에게는 발레 수업을 듣겠노라 뻥을 쳤다. 그러는 게 간단해서.



“봉주르~”  

안 가이드가 사무실로 서슴없이 들어서며 한 말이다. 나도 잽싸게 따라 들어갔다.


“봉주르~”

사무실에 있던 동그란 모양의 빨간색 뿔테 안경을 쓰고 있던 흑인 여성이 답한다.


캐티라 했다. 그녀에게 안 가이드가 뭐라 뭐라 불어를 했다. 아마도 그곳에 왜 왔는지 얘기하는 듯했다. 그 와중에 사무실 문을 열고 다른 손님들이 들어와서 캐티에게 영어로 묻는다. 그러자 그녀가 유창한 영어로 답을 한다. 내 귀가 번쩍 띄었다.


“영어 하세요?”

“시도해 볼 수는 있어요.”


그녀가 눈을 찡긋하며 웃으며 답한다. 그제야 나는 그녀에게 혹 여기서 공부하는 어린 학생들의 무용하는 모습을 찍고 싶은데 하며 운을 띄웠다.



”아니, 발레 배우려던 것이 아니라 사진을 찍고 싶으셨던 것이었군요?!“

안 선생은 내가 그곳에 왜 가보려 했는지 그제야 이해가 되는 듯했다. 아마도 설마… 하는 맘이 있었나 보다.


캐티는 나에게 자기가 뭐라 답을 할 수 없으니 담날 와서 그곳의 디렉터에게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러겠노라 하며 안 가이드와 사무실을 나왔다.



지난 삼십 년간 머릿속으로 그림만 그리던 곳에 직접 가서 그곳의 사람들과 부딪쳐 보니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다. 꿈이 현실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 이런 기분일까?


마레를 떠날 때까지 그곳에 두 번을 더 갔다. 한 번은 캐티가 오라고 했던 담날 오후에 가서 디렉터에게 제대로 퇴짜를 맞았고, 그 이틀뒤엔 또 가서 담에 오게 되면 하루나 이틀이라도 댄스 수업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벌써 낯이 익은 캐티가 웃으면서 ”물론 가능하지“ 라고 말한다.


이번 연말에 남편이랑 파리에 같이 올 땐 진짜로 댄스 수업에 들어가 볼까 생각 중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원하던 사진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보는 걸로.


사진 설명:

어떤 문에는 “쇼팽”, 어디는 ”브람스“ 란 푯말이 있어서 뭔가 했었는데 각각의 스튜디오 이름이었다. 사진에서 베를리오즈 오펜바하… 의 이름이 붙은 문으로 가시던 연세 많으신 분들이 각각의 댄스 클래스를 가시던 길이었다.


마레 댄스 센터의 웹사이트는 불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안, 중국어로 나와 있는데 내가 그곳에서 보았던 동양인들이 중국사람이 맞았다. 가져온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니 클래식 댄스뿐 아니라 재즈댄스, 현대무용, 마샬아트, 아프리카댄스, 발리댄스, 오리엔탈무용 등등 없는 것이 없었는데 일본과 한국의 춤 교실은 없었다.


캐티의 말을 빌리면 각각의 무용 선생들이 각 스튜디오를 시간당으로 빌려 학생들을 모집하고 가르친다 했다. 웹사이트에 보니 어떤 룸들은 사운드 시스템, 거울벽, 탈의실, 샤워, 블루투스까지 무용에 관한 모든 것들이 갖추어져 있었다.


두 번째 갔을 땐 영국의 로열발레스쿨 토트백을 든 십 대 여학생이 옆에 있어서 그 백을 가리키며 ”여기 다니니?“ 하니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그렇다고 했다. 여름엔 그곳에서 인턴을 할 거라며 묻지도 않은 토까지 단다. (얼마나 좋았으면…) 아마도 파리에 머무르며 연습할 공간을 찾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Copyright © MyungHye Phot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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