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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hkim Dec 16. 2024

난 마레 체질




마레에서 찍고 싶었던 거리 풍경이 몇 가지 있었다. 예를 들면 정통 유대인 복장을 한 아저씨. 게이가이들 밋업(meet-up) 장소, 또는 잘 차려입은 여인들… 모두들 꽤 이국적인 이미지들이다.


“사진이란 찍을 대상이 필요한 거라…”

그런 대상들을 찾으려고 무거운 사진기를 들고 온 거리를 휘젓고 다닌 듯은 하지만 원하는 사진은 못 찍었다. 그래도 안 가이드가 첫날 오후에서 늦은 저녁까지 온 동네를 발로 소개해주어 하루쯤 지나자 동서남북의 방향감각까지는 아니지만 구글맵을 적당히 참조하면 감은 잡을 수는 있어 길을 잃지는 않았다. 그분 덕에 새로 가보고 싶은 곳들도 생겼고 많은 것들도 보았고 맘껏 사진도 찍은 듯하다.


마레에서 몇 가지 생각 나는 점들을 사진과 함께 정리해 보았다.


“잘 가꾸어진 오래된 공원들”

벤치가 있어서 쉬었다 갈 수 있는 공원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깨끗했다. 그리고 아름다웠다. 물론 한국만큼은 아니었지만 (특히 새로 생긴 경복궁 옆 송현 공원은 정말 깨끗했다. 임시 공원이라 아쉽기는 했지만.) 미국의 대도시에서 홈리스들에게 점령당한 (특히 서부의 대도시들) 그라피티가 가득 찬 더럽고 냄새나는 무법천지의 공원들을 보다가 관광객들이나 동네 주민들의 쉼터인 진짜 공원들을 마주하니 너무 반가웠다.


“역시나, 요즘 트렌드답게 빈티지 샵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의 사진은 빈티지 티셔츠와 청바지 스토어 윈도디스플레이. 주인 청년이 자기 엄마가 여행 중에 이 주머니를 사서 본인에게 가져다주었다고 자랑스럽게 진열해 놓은 곳. 나는 내 아들에게 이 주머니 가방을 사다 주려고 들어갔다가 파는 게 아니라 해서 손 털고 돌아 나왔다. 가게에는 다 헐어서 찢어질듯한 수십 년 전 록밴드들의 로고가 박힌 면 티셔츠 들과 비슷하게 허름한 데님 바지등을 팔고 있었는데 그곳 젊은 친구들에겐 힙한 상점 같았다. 그러나 혹시라도 품질 좋은 빈티지 물건을 저렴한 가격에 사고 싶다면 유럽보다는 뉴욕으로 가시라. 그곳은 물건이 훨씬 더 많아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고 들었다.


”길을 걷다가 우연히 들어갔던 마레의 아트페어 전시관“

그림 파는 갤러리들이 차고 넘치게 많은 마레지만 그곳들은 작가가 딜러나 갤러리 오너들의 눈에 들어야만 작품을 전시하고 팔 수 있다. 커미션도 30-50% 정도로 어마어마하고. 반면 이곳은 작가가 소정의 부스 사용료를 지불하면 본인의 작품을 고객에게 직접 팔 수 있었다는 점이 신선했다. 마치 아트페어 같이. 물론 그들만의 심사를 통과해야겠지만 맘에 드는 화상을 만나지 못한 아티스트들에게는 좋은 옵션이라 생각했다.


부스를 둘러보다 작가인 Karine을  만나 같이 사진도 찍고 그녀의 프로파일도 찍어 이멜로 보내주었다. 언뜻 세어보니 백여 개의 2x4미터의 부스와 작은 실내용품들을 올려놓은 테이블들이 보였다. 작품가격은 서울의 인사동 갤러리에 전시하는 작가들과 비슷한 수준인 천불에서 오천불 정도. 부스가격이 적어도 일주일이면 일이천 불은 될 텐데 그림을 한 점도 못 팔면 완전 망하는 구조다. 그건 아트페어도 마찬가지일 것. 예술로 먹고사는 건 여전히 힘들지만 다른 직업도 힘든 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왕이면 용기 있게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지나가다 마주쳤던 벼룩시장

미국에선 야채나 과일을 파는 파머스마켓이 각 동네마다 일주일에 한두 번 서기도 하지만 이곳 같이 오래된 물건을 내다 파는 정기적인 벼룩시장은 아니다. 특히 고장 난 물건은 대부분의 미국사람들은 내다 버리고 (고칠 데가 없어) 귀한 물건들이 많은 부자들은 에스테이트 세일이란 것을 해서 약간의 현금을 벌거나 옥션 하우스에 내다 팔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돈 줘도 사고 싶지 않은 허접쓰레기 같은 물건들도 팔려고 나와있었다. 유럽은 상대적으로 미국보다 아프리카가 가까워서 그런지 이런 목각으로 만든 가면이나 인형들이 시장에 나와 있는 게 특이했다.


유명한 사이파이 소설작가인 윌리엄 깁슨의 소설**에 보니 이곳도 천차만별이라 유명한 벼룩시장애서는 1960년대 샤넬 슈트도 팔던데 그런 곳은 어디 있을까 궁금해졌다. 안 가이드에게 다시 물어볼까나?


진짜 길거리 사진들

남자들이 많이 사는 곳이어서 인지 길거리에 이발소가 꽤 눈에 들어왔다.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어서 곳곳에 상점을 개보수하는 곳도 많다. 제일 아래 자동차는 파란 신호동을 기다리다 발견했는데 너무 귀여워서 찍었다. 찾아보니 Classic Citroën. 파리라서 볼 수 있는 앤틱 자동차라고.


수제품 스토어들

수제 가죽 구두점, (가격은 4-500유로 정도) 수제 프레임 숍을 비롯해서 (만일 파리포토에서 전시를 한다면 여기서 액자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손으로 만든 공예품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은 아주 비싼 가격이 아니면 구할 수도 없지만 우선은 다들 숨어있어 아름아름 가는 곳이라 이렇게 도로변애서 보기 힘들다.


그 외…

여자들은 입장을 사양한다는 게이바도 있었고 핼러윈인데 아무거라도 되어보셔요 하는 듯한 코스프레 숍도 여럿 있고, 물론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영어책 가게도 있고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는 아니다) 귀한 책이나 프린트를 파는 곳도 길을 걸어가다 만날 수 있었다. 그래픽 전공이라서 그랬는지 이런 종이 제품들을 파는 가게가 뭔가 있어 보이고 좋아 보였다.


마지막 마레의 밤은 호텔리어인 미구엘이 추천해 준 퐁피두 센터 근처의 레바논식 아이스크림 숍에서 자축했다. 아이스크림 콘 겉면에 곱게 빻은 피스타치오를 덮었는데 무지 맛있었다. 줄 서서 먹을만했다.


사진은 못 찍었지만 마레에는 여전히 24시간 필름 현상소가 옛날 어느 집의 마구간이었을 듯 한 코트야드 한가운데 있었고 (커다란 철재대문 너머에 있어서 초인종을 눌러야 들여보내주는데 다음엔 사진을 꼭 찍고 싶다. 미국은 뉴욕에도 없다.) 커다란 소고기 덩어리를 꼬챙이에 찍어 화덕에 굽는 옛날식의 BBQ 레스토랑도 있었고 (저렴한 가격, 대신 사장님은 퉁명스러웠던) 곳곳에 수많은 갤러리가 숨어 있었다. 비싼 브랜드, 싼 브랜드, 빈티지 숍, 오래된 노포, 새로 생긴 기념품 가게, 온갖 종류의 음식점, 카페등이 마구 섞여 나름대로 조화로움을 이룬 곳이었다.


그중, 진짜 마레의 로컬들은 약간은 변두리쯤 되는 곳에서 훨씬 조용하게 옛날같이 살고 있었다. 마치 예전 샌프란시스코에 살 때 주택가의 밤거리를 거닐며 느끼던 분위기와 비슷했다. 깜깜한 길에 불 켜진 레스토랑 하나 달랑있던 골목길. 잘 차려입은 할머니가 친구와 같이 근사한 저녁을 편안하게 드시던 식당을 보게 되어 반가웠다..

화난 얼굴이 아니라 알글 표정이 굳으신 분. 창 너머로 사진 찍는 나에게 손으로 인사하시던 모습이다. 나 역시 목례로 허락을 받고 찍었다.


“Paris is a city of foreigners.” (파리는 외국인의 도시.)라고 퐁피두 센터에서 만났던 러시아 출신 Eva의 말이다. 또한 안 가이드가 보여주었던 헤밍웨이의 인용구를 책 표지로 쓴 곳에서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 Paris is a Moviable Feast.”라 적혀 있었다. 그는 공산주의자로 찍혀 조국인 미국을 떠나 왔지만 파리가 그 정도로 편안하고 따뜻하고 재미있고 행복했던 곳 같았다.


둘 다 외국인인 Eva나 헤밍웨이처럼 파리에서도, 특히 마레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인종의 온갖 인간들이 다 모여 산다. 나는 그들이 특이하다 생각되어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막상 본인들은 서로를 별반 다르게 느끼지도 않았다. 그리고 관심도 없다.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동양 할머니이던 나까지 포함해서.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이런 마레가 점점 더 편안해졌다.

아마도 나는 마레 체질인가 보다.


FOOT NOTE

*홀세일 트레이드 쇼: 도매가격으로 파는 전시인데 가게를 가진 점주들만이 들어올 수 있다. 기프트 용품으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들이 밀란, 파리, 런던 등에 있으며 미국에서는 애틀랜타 기프트쇼가 가장 크다. 기본적으로 일반인들은 참석이 불가능하다.


**윌리엄 깁슨 (William Gibson)의 triology 중 하나인 Pattern Recognition에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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