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도시에 여행을 가면 대체로 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사진은 물론 찍는 것이고, 참새 방앗간 가듯 미술관에 놀러 가고, 또 하나는 공연 예술을 보러 간다. 사진 빼고 나머지는 서울에서 자라면서 중학교 때부터 해온 일이지만 미국에서 지낸 사십 년 중 지난 십오 년은 문화시설이 빈약한 곳에 살아 유명한 연주자나, 오케스트라,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 라이브 연주회에 목마르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챙겨서 간다.
왜냐고? 살아있는 음악과 살아있는 사람이 너울대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 좋은 기운(바이브)이 그립기 때문.
파리로 가면서 이번엔 어디로 향할까 생각하다 아직 가보지 못한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을 골랐다. 예전에 마에스트로 정명훈 씨가 음악감독으로 계셨던 곳이다. 비록 순전히 정치적인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지만…* 바스티유는 마침 시즌 중이었고 내가 한 번도 직접 못 보았던 모차르트의 마법의 피리가 스케줄에 나와있어 인터넷으로 표 한 장을 샀다. 그리고 잊었다. 정신없이 바빠서…
마레에 도착해 몇 날을 내 맘대로 정처 없이 돌아다녔다. 한참 걷다 쉬고 싶으면 호텔에 돌아와 기약 없이 자고, 가끔씩 멍 때리며 사나흘을 지나니 갑자기 공연하는 날이 돌아왔다. 아무것에도 묶인 것 없이 잘 지내다 어딘가 시간 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버벅거리기 시작했다.
헐, 이것도 연습이 필요한 “일” 이네!
내 딴에 서두르기는 싫어 일찌감치 저녁을 먹고 오페라 갈 때 입으려고 챙겨 온 블랙 롱드레스를 입고 드레시한 모자를 쓰고 힐까지 신고 방을 나서다 혹시 밤중이라 발을 잘못 디뎌 돌바닥에 넘어지면 안 되겠다 싶어 다시 돌아와 굽이 없는 앵클부츠로 갈아 신고 코트를 걸치고 택시를 잡으려 대로에 나섰다. 호텔리어인 미구엘은 전철을 타는 게 젤 빠르다 했지만 우선 파리의 전철이 낯설었고 서울도 아닌 곳에서 밤중에 지하로 내려가 전철을 탄다는 게 영 마음이 불편해 길거리에서 우버를 부르니 십 오분이나 걸려서 겨우 도착했다. 파리에서도 금요일 저녁은 택시 잡기 힘든 시간이 맞았다.
꽉 막힌 파리의 트래픽을 뚫고 바스티유 홀 앞에 내리니 팔 분 전. 급하게 뛰쳐 올라가서 내 지리에 앉으니 딱 정각. ”다행이다! “ 신발이 편해 뛸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내 좌석은 삼층 앞줄이라 무대도 잘 보였고 내 왼쪽에는 연세가 드신 백인 할머니와 손자인듯한 소년, 오른쪽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과 까만 칵테일 드레스를 멋지게 차려입으신 날씬하고 세련된 젊은 엄마가 있었다. 역시 마법의 피리는 어린아이부터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같이 즐길 수 있는 가족용 오페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았다.
이제껏 보았던 여성 지휘자 중 지휘하는 모습이 젤 멋있었다.
시작종이 울리고 지휘자가 걸어 나오는데 여성마에스트로였다. 멀리서 보니 자그마한 체구의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녀는 마치 베이에어리아에 살 때 자주 갔었던 샌프란시스코 심포니의 전설적인 음악 감독 마이클 틸슨 토마스 (MTT 가 그의 애칭이다)의 한창때 모습과 닮아 있었다. 날렵한 몸매에 우아하면서도 절도 있는 지휘법과 단정하게 서있는 모습이 발레리나를 연상시키듯 몸동작이 깨끗하고 정확하게 보여 마음에 들었다. 그간 뒷모습이 펑퍼짐하거나 움직임이 세련되지 못한 여성 지휘자들만 보아서 실망했었는데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신선했다. 관객들에게 보여야 하는 퍼포머인 이들은 그 엄청난 양의 악보를 가끔씩은 통째로 외우고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을 넘어 본인들의 생김새나 몸짓 하나까지도 신경을 써야 하는구나 생각하니 대단한 사람들이란 생각이 다시 한번 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그녀는 사십 대 후반의 우크라이나 출신의 Oksana Yaroslavivna Lyniv. 이태리 오페라계에서 최초의 여성 음악 감독으로 임명된 유명인이었다. 2022년부터 볼로냐 코뮤날레 극장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으며 전 세계를 무대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녀는 비슷한 연배의 젊은 지휘자 그룹에서도 탑 레벨에 속한다. 한국 국립 교향악단을 객원 지휘한 이력도 나와 있다. 또한 청소년 음악 교육에도 관심이 많아서 2016년에 우크라이나 청소년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설립했다는 것도 흥미로왔다. 세계 최상의 마에스트로들 중에는 청소년 교향악단을 지휘하다 유명해진 사람이 내가 알기에도 여럿이 되는데 예를 들면 현재 엘에이 음악감독이며 다음 시즌부터 뉴욕필의 상임지휘지로 활약할 구스타프 두다멜이나 샌프란시스코 오케스트라의 MTT 등이 있다..
“와우! 참신하네! “
그녀의 퍼포먼스를 지켜보며 삼십 년쯤 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우연히 본 마에스트로 정명훈 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는 드디어 아시안 남성이 이 백인남성 천지의 세상에 들어왔구나 했었는데 (물론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가 선구자이지만) 이제는 드디어 여성 지휘자가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한다. 지휘의 세계에서도 마이너리티들은 백인 남성 위주의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는데 오랜 세월이 걸리는구나 생각했다. 어디서든 산 너머 산이다.
처음 가서 본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팔레 가르니에 (The Palais Garnier)와 너무나 달랐다. 나폴레옹 삼세 때 지어진 팔레가르니에는 건물 전체가 번쩍번쩍한 금으로 도금이 된 화려함의 극치인 19세기 건물 (1862년 오픈)인 반면 바스티유 오페라 하우스는 장식이 거의 없는 20세기말 건축으로 1989년에 문을 열었다.** 만일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의 입장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이왕에 돈들이고 가는 거 좋은 음향과 함께 전통에 흠뻑 젖은 팔레 가르니에를 뽑겠지만 반대로 오페라 홀에서 일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더 좋은 직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 바스티유를 선택할 것이라고들 한다. 또한 이곳은 최첨단 사운드 및 시각 기술, 팔레 가르니에의 거의 두 배나 되는 좌석, 모든 관객을 위한 완벽한 시야를 갖춘 좌석 배치 (오래된 홀들 중에는 시야가 확 트이지 않는 좌석들도 있다.) 좀 더 넓고 안락한 의자 등 관객의 편안함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였다 한다. 진짜 가서 보니 의자도 편안하고 약간 넓어서 의외라 생각했다.
또한 객석 세배크기의 백스테이지에서 무대사이즈와 동일한 크기의 거대한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며 무대의 모습을 수월하게 바꿀 수 있는 장치라든지 특히 오케스트라 인원의 크고 작음에 따라 그들의 좌석이 놓인 단상이 엘리베이터와 같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설치들은 최신의 장비들이었다.
그렇지만 솔직히 말해서 바스티유 극장은 아름답다고는 할 수 없는 건물이었다. 너무 기능성에 치우친 나머지 인터미션 동안에 객석을 나와서 처음으로 건물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별로 볼 것이 없었다. 홀 밖의 공간은 너무 휑해서 공항 대합실 같이도 보였다. 내가 비록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 는 장식을 배제한 바우하우스식 디자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도 이건 아니지 싶었다. 오페라 극장 같은 곳은 건물의 생김새나 분위기등 심미적인 요소도 중요한 기능 (Function)중 하나인데 이 점은 완전히 무시된 듯했다. 마치 미쉘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음식을 먹는 곳의 “분위기=환경”인데 이곳은 부엌의 기능성과 음식의 맛만 고려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자리로 돌아와 눈앞에 훤히 내다보이는 오케스트라 핏을 바라보며 비올라 연주자인 아들이 바스티유 오페라에 간다는 나에게 했던 말을 생각해 냈다.
“바스티유 오페라 홀의 오케스트라 핏을 말러가 봤다면 싫어했을 거야.“
“왜?“
“말러는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는 관객에게서 안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세월이 변했다. 이젠 오페라 하우스가 화려한 옷을 입고 깃털 달린 모자를 쓰지 않아도 갈 수 있는 대중의 공간이 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음악을 맡은 오케스트라 멤버들도 더 이상 구덩이(pit) 안에 숨어서 가끔씩 배고프면 군것질을 할 수 있는 반주하는 이들이 아니라 (아들 말에 의하면 말러나 바그너 같이 몇 시간씩 연주할 때는 당이 딸린다고…) 이제는 당당하게 앞으로 나와 무대 위에서 노래와 연기를 하는 가수들과 함께 마음을 합하여 작품을 만들어 가는 주요한 구성원들이다 하고 보여주는 듯했다.
“똑바로 앉아서 눈을 감고 조는 모습을 보니 딱 부처님 같아.”
인터밋션이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 앉으니 옆에 앉으신 어르신이 웃으면서 말을 건다.
”아뿔싸! 걸렸구나.“ 그렇게 졸고 있는 티가 안 나게 애를 썼는데도 서둘러서 늦지 않으려 뛰어온 덕에 느긋하게 앉아서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니 졸음이 몰려왔었다.
“여행 온 지 얼마 안 되어 시차(jetleg) 때문이에요.“ 구차한 변명을 하며 나도 머쓱하게 웃었다.
“어디서 왔나요?” 그녀가 물었다. 이런 질문은 상대가 어느 인종이냐 묻는 말이다. 이때에는 미국서 왔다고 하기가 좀 그렇다. 아시아 어느 나라 사람이냐 묻는 거라서.
“미국서 왔는데 원래는 남한 출신의 한국사람이에요.
댁은요?” 답을 하고는 상대방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래야 스몰토크가 진행된다.
“홀랜드 사람인데 은퇴를 하고 남편과 파리에 살아요.” 그녀의 약간 딱딱한 독일식도 완전히 아닌 영어 악센트가 느껴졌다.
“옆의 소년이 손주인가요? 잘 생겼네요.“
“맞아요. 손주예요. 고마와요.“ 사소한 대화를 나누는 동안 다시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지휘자가 나타나고 무대막이 오르며 2부가 시작되었다.
모차르트의 마법의 피리에는 몇 가지 유명한 아리아가 있다. 한국의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 씨처럼 하이 소프라노인 콜로라투라 가수가 부르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그중 가장 유명하고 개인적으로 나는 파파게노가 부르는 “나는 즐거운 새 잡이”를 제일 좋아한다. 재미있어서.
이번 공연은 라이브로 처음 관람하는 거라 그 유명하다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를 듣고 싶었다. 모차르트가 자기가 부르는 것이 아니라고 마음껏 어렵게 썼다고 할 정도로 힘든 작품으로 세계에서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소프라노가 독일의 담라우와 한국의 조수미를 비롯해 몇 안된다고 들어와서 꼭 직접 듣고 싶었다. 역시 어려운 곡이었지만 그날의 밤의 여왕도 보통 솜씨가 아니게 잘 불렀다. 덕분에 소원 하나를 이루었다.
일 막에서 잠시 졸기는 했으나 역시 라이브 음악을 제대로 듣는 것은 너무나 큰 축복이었다. 가수들의 생생한 목소리와 오케스트라의 멋진 연주가 그 큰 무대를 넘어 내 가슴에 울려 퍼졌다. 진동이 느껴졌다. 그리고 짜릿했다. 게다가 무대 장치도 너무 훌륭했고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배우들의 연기도 더 말할 나위 없었다. 좋은 바이브가 이런 거지. 내가 많이 잊고 살았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공연이 끝나고 홀을 나서며 나의 졸던 모습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처음이 아니어서… 그러나 누가 나에게,
“졸더라도 또 오겠냐?” 고 묻는다면?
“물론. 백만 번이라도…”
주:
* 정명훈 씨는 서울 시향에서도 비슷하게 정치적인 이유로 물러났다. 아마도 음악 감독의 자리는 정치적인 요소가 다분한 것 같다.
** 당시 신진이었던 우루과이 출신 캐나다 건축가인 Carlos Ott 가 설계한 건축 공모작인데 심사위원들은 유명한 미국의 건축가인 리쳐드 마이어가 설계한 건물인 줄 알고 뽑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