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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르 갤러리: DIOR/LINDBURGH 전시회

by Mhkim




파리포토 기간 중에 열리는 마크의 워크숍은 총 나흘이다. 프로그램은 모델과 사진을 찍는 슈팅 세션이 반나절, 마크와 세이지가 각 개인들의 작품들을 한 사람씩 리뷰하는 시간이 반나절, 유명한 스튜디오와 갤러리, 전시회 방문이 이틀, 그리고 마지막날엔 파리포토에 가는 일정으로 짜여있다.


첫날은 디오르 본사옆에 위치한 디오르갤러리 방문이 일정의 주요한 부분이었다. 올해 참가자는 나의 동료이자 멘토인 J와 마크의 영화필름 제작총괄이며 그의 오랜 제자인 D 그리고 마크에게서 삼 년 차 수학하는 나를 포함 총 세명이다. 사실 참석한 세명의 학생과 선생인 마크 드 파올라, 그의 프로듀서인 세이지 다섯 명이 벌써 잘 알고 지내는 사이라 우리는 격의 없이 모여서 간단하게 인사를 하고 바로 디오르갤러리로 향하였다.



Peter LINDBURGH

마크에게서 사진을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지 이년이 조금 넘는 아직 초짜인 나에게 Peter Lindburg는 또 하나의 생소한 사진작가의 이름이었다. 마크는 그런 나의 마음을 알았는지 전시 장소로 떠나기 전, 피터에 대해 짤막한 소개를 해주었다.



“내가 이십 대 초반 이태리 밀란에서 사진사로 활동할 때에 여러 신진 사진가들 중에 피터가 있었어요. 우리는 여러 나라에서 모인 비슷한 또래들로 열정을 가지고 사진작업을 했었는데 당시 피터의 사진은 우리들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그는 패션 잡지사진에 첨으로 스토리를 도입한 사람이었어요. 1960-70년대의 패션잡지 사진들은 그냥 예쁜 모델의 사진을 잘 찍어 커버로 쓰거나 메거진 안에 그냥 나열하는 식이었는데 피터는 그런 종래의 방식에서 벗어나 기사를 쓰는 것처럼 스토리를 만들어 내었어요. 아무도 그러는 사람이 없었는데 혼자만 그리 한 거죠. 어떤 면으로는 혼자서 쌩 난리를 치고 있었죠. 여러분이 지금 모델과 일할 때 스토리를 만들어 에디토리얼 디자인을 하는 것을 그는 이미 사십 년 전부터 하고 있었던 게지요. 가시면 잘 둘러보세요. 배우는 게 많을 거예요.”



솔직히, 난 그때까지 마크가 다른 동료 사진사들에 관해 이런 식의 약간의 부러움을 가미해서 얘기한 것을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서 깜짝 놀랐다. 열두 살 때 아버지가 사준 라이카 카메라를 처음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그이다. 당신의 아버지는 유명 사진사였고 전설적인 사진작가 Richard Avedon이 아버지 절친이었다고. 자랑스레 말하는 그는 소위 이 세계에선 금수저로 통한다. 또한 일찌감치 사진기를 들고 스물한 살에 밀란에 가서 이태리보그의 유명한 에디터였던 Franca Sozzoani와 같이 작업을 한 그는 패션 사진으로 톱클래스에 속하고 사진사로는 드물게 영화도 찍는 사람이라 이 세계에서는 나름 확고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으며 본인 또한 자신의 입지를 잘 아는지라 다른 사진사들에 관해 얘기할 때 관대할지언정 시샘을 내거나 한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자부심이 강한 마크가 같은 또래의 린드버그를 약간은 존경심까지 곁들여 얘기하는 것을 보고 저으기 놀랐다.


“도대체 피터 린드버그가 어떤 사진가지?”

“게다가 그 유명한 디오르에서 일개 사진사를 위해 전시회를 할 정도라니 얼마나 대단하길래?“



마크의 말이 딱 맞았다.


전시회를 보면서 뒤따라 오는 그에게 사진이 너무 멋지다고 “어떻게 저렇게 찍었지?” 하며 혀를 내둘렀더니 그의 말이 당시에 이런 사진을 밤낮으로 찍었다고 생각해봐 한다. 갑자기 사진 하나하나를 보다가 그 모두를 합친 전체 총량이 머리에 그려졌다. 그런 사진을 매일 찍었다는 것이 어떤 것이었을지 상상이 갔었고 다음은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의 나는 이런 사진 한 장 찍어보려고 그렇게 용을 쓰고 있는데 이 양반은 이삼십 대에 벌써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니…


“아, 사진의 길도 멀고 멀고나…”

정신이 퍼뜩 들었다.



위의 사진은 디오르갤러리에서 내가 찍은 사진이다. 전시의 마지막쯤에서 한 구석에 마네퀸이 앉아있는 줄 알고 “어?“ 하고 다시 보니 사람이었다. 본능적으로 셔터를 누른 후 나의 디지털카메라 스크린에서 찍은 사진을 체크하면서 저으기 놀랐다. 달랐다. 내가 찍는 사진은 그와 확연히 달랐다. 그리고 한껏 움츠렸던 기분이 좀 나아졌다. 다시 그 여인이 떠나고 조용해진 갤러리에서 빈 의자를 다시 찍었다. 그 또한 내가 찍은 첨 이미지와. 이렇게 달랐다. 정말 놀랐다.


나의 미래도 이렇게 다를 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곤 어떻게 다를지는 계속하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라이터스 블록 (writer’s block) 같이 워크숍 첫날부터 난 그동안의 우울함의 심적 구덩이에서 빠져나온 듯했다.



마크 선생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패션이란 나의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동떨어진 세계였다. 그러나 그에게서 인물 사진을 배워가면서 패션이란 것에 서서히 관심이 가게 되었다. 이전엔 하도들 명품 명품하며 기도 안 차게 비싸지기만 하는 고급 브랜드들에 반감도 많아서 일부러라도 나는 그런 겉모습에만 치중하는 부류와는 섞이고 싶지도 않았다는 게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 사진을 찍으면서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 포트레이트 (portrait photogrpahy)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나의 대상 (subject) 들이 걸쳐야 하는 옷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사진이 달라지니까. 이것도 일종의 공예제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아름다운 옷에 대해서도 시각디자이너로서의 눈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허영이 가득한 인간이 소유하고 과시하는 빈 껍데기 치장품이 아니라 그 물건 자체로서의 아름다움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의식주의 한 부분에 우리가 입는 옷이 있다. 그 옷이란 것을 명품으로 따로 구분해서 비싸기만 한 물건으로 치부하기 전에 그냥 아름다운 물건 그 자체로 본다면 어쩌면 인간의 감성이나 본성을 가장 많이 담아내는 또 하나의 공예품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패션 사진은 그런 인간의 미를 추구하는 본성을 더 극대화하여 보여주는 시각 예술이란 생각 또한 들었다.


아름다운 모델이 멋진 옷을 입고 근사하게 찍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또한 거칠고 힘들게 사는 초라한 모습의 여인들이라도 그녀들의 자연스럽고 당당한 모습을 찍은 사진을 아름답다고 보는 것 또한 같은 사람들이다. 전시를 보고 나니 나의 사진은 이 모든 레벨의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한쪽만 편애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린드버그의 자연스러운 표정의 스토리를 담은 여인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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