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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 Cartier-Bresson의 카메라

by Mhkim




어떤 사람들은 나보고 아마추어로 사진을 찍을 바엔 굳이 돈 들여 배울 필요가 있느냐 묻는다. 내 대답은 “제게는 시간이 많지 않아서요. 이 선생들이 제가 빨리 갈 수 있도록 도와주거든요.” 영어로 한다면 “They have the access for me to move faster”


여기서 Access란 나에게는 “기회”를 말한다.


나보다 십 년쯤 연상인 미국인 사진사 여자친구 A는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세계곳곳에서 하는 유명한 사진작가들의 워크숍을 거금을 들여 열심히 찾아 나선다. 그런 A가 한 번은 콩고에 거대한 고릴라를 보러 간다며 엄청나게 많은 돈을 쓰길래 (하루에 고릴라 15분 만나는데 가이드에게만 일당으로 $1500을 준다 해서 깜짝 놀랐다.) “그 돈이 값어치를 하는 것 같아?” 했더니 “He has the access to get to the Gorilla: (그 사람이 고릴라에게 가는 방법을 알거든.)” 하였다.


사실 그녀나 나나 이만큼 살고 보니 기회란 시간이나 돈으로도 못 사는 것일 수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배웠기에 우리는 문이 열린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든다. 우리에겐 놓치고서 후회할 시간조차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연유로 나는 마크의 파리포토 워크숍 중에서 유명 작가의 스튜디오 방문을 가장 좋아한다. 이는 사진계에서도 인싸여야만 들여다볼 수 있는 곳들에 가는 것인데 세이지는 마크의 사진작품 딜러이자 세계유명 작가들의 사진 딜러이기도 한 M을 통해서 모든 것을 섭외한다. M은 아마도 우리를 사진을 콜렉트 하는 잠재적인 고객으로 소개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실 그렇기도 하였다.


2023년에 이어 2024년에도 참가한 워크숍 중에 우리는 사진과 관계있는 유명 작가나 프린터들의 스튜디오를 여럿 방문했다. 모두 흥미로왔다. 책으로는 알 수 없는 그들의 인간적인 면이나 고뇌를 접할 수 있어서 작가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도 되었고 나 자신의 위치를 알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또한 돌아가신 분들의 경우는 그들의 미망인들이나 가족들에게서 작가들의 생전 행보에 대해 직접 듣고 볼 수 있는 기회라 배우는 것들이 많았다.


브레송의 아카이브도 그중 하나였는데 방문한 때는 2023년 가을이었지만 워낙 유명하신 분이라 당시의 기억을 소환해서 적어 보았다. 참고로 마레지구에 자리 잡은 그의 기념관 중에서 아카이브는 일반인들에게는 열려있지 않은 사적인 공간에 속한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HGB)의 이름을 제대로 듣기 시작한 것은 2022년 10월, 밀란에서 처음으로 마크선생을 만나 그의 워크숍에 참가했을 때이다. 그전에도 브레송의 유명한 사진들을 여기저기에서 본 적은 있었지만 확실하게 그의 이름과 특정한 작품들을 연결 짓기는 당시가 첨이었다. 2022년 유월, 한국 예술의 전당에서 그의 전시회가 열린 후,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이 한국에선 전 세계 사진사들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지만 나는 오래전에 한국을 떠나와서 보통의 한국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상식도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으면 잘 모르는 관계로 그에 대해서 알게 된 시기는 그보다 좀 늦은 2022년 시월이었다.


밀란워크숍에서 첨 만났던 친구 J가 아비동, 카르티에-브레송, 솔라이터, 등등의 이름을 얘기할 때 ”그게 누군데? “ 하는 나를 보고 “아니, 어떻게 이런 유명한 사람들을 몰라?” 하고 무시하듯 말했었다. 그래서 난 바로 “댁은 바우하우스가 뭔지, 윌리엄 모리스가 누군지, Arts and Craft Movement가 뭘 했던 건지는 알아?” 하고 되받아 쳤다. 그는 입을 다물었고 우리는 그걸로 끝.


그래도 그들의 이름을 받아 적고는 내 호텔방에 올라가 위키피디아에서 누군지를 찾아봤다. 내 사진이론 공부의 시작이었다. (이런 연유로 나는 위키피디아에 일 년에 사용료 겸 도네이션을 꼭 한다.)


덕분에 우리의 만능프로듀서 세이지가 파리포토 워크숍 중에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재단을 방문한다고 했을 때 깡통 소리는 면할 수 있었다. 과연 사진의 역사 중 전설이라고 하는 그의 재단은 어찌 생겼을까 궁금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옛 정취가 가득한 마레지역에서는 꽤 모던한 모습을 한 제법 큰 건물이었다.



일행은 우리말고도 세 명이 더 추가되었는데 그중 한 명은 마크의 오래전 학생이며 성공한 비즈니스우먼인 M, 그녀의 동행이었던 본인을 사진 콜렉터라고 소개한 브라질 출신의 사십 대 중반 남자 한 명, 그리고 미국여인으로 파리에 산다는 사진딜러이기도 한 J였다. 특히 콜렉터라 소개했던 브라질 친구는 마치 연예인처럼 명품 펜디의 F 로고가 잔뜩 박힌 부티나는 겨울 코트를 입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내가 코트가 멋지다 했더니 대뜸 이 코트가 샤넬의 Karl Lagerfeld 가 타계하기 바로 전 마지막으로 디자인해서 내놓은 제품이라며 자랑을 하였다. 갑자기 K-드라마인 시크릿가든에서 현빈이 “이태리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어쩌고…” 했던 대사가 생각났다. 나랑 사는 동네가 다른 양반이었지만 나름 신선했다. 사진을 하게 되면 이런 사람들도 만나는구나 싶었다.



아카이브 책임자인 Aude R 이 우리를 전시실이 아닌 일반인 출입금지 구역인 일층의 직원들 사무공간에 위치한 아카이브와 연결된 회의실에 데려갈 때까지도 난 우리가 뭘 위해 그곳에 갔는지 확실히 몰랐다. 그러나 막상 Aude가 그들이 소장하는 HCB의 작품들을 담은 사진 박스들을 우리 앞에서 열어 보여주기 시작하면서 “아, 진짜 그의 사진들이 내 눈앞에 있구나” 깨달았다. 일행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했다. 다들 긴장을 한 탓인지 약간은 엄숙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무엇보다 박스에서 그의 사인이 분명한 사진들의 뒷면을 보는 것이 너무 좋았다. 어떤 것은 그가 누구를 어디서 찍었는지, 날짜, 장소등이 적혀있어 더욱 친근감을 주었다. 그렇게 앞면의 눈에 익은 사진들과 뒷면의 보기 힘든 모습들을 구경하며 우리는 연신 감탄에 감탄을 연발했다. 나 역시 그 유명한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아카이브에서 그의 원본 사진들을 하나하나 내 손으로 들춰가며 본다는 게 솔직히 믿기지가 않았다.


모두들 소리를 죽여가며 조심조심 사진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Aude가 바로 옆의 자료실에 들어가더니 카메라를 하나 들고 와선 회의실 테이블에 얹어 놓았다.


“와… “

갑자기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위의 사진은 내가 그곳에서 찍은 HCB가 사용했던 그 유명한 라이카 M3 카메라와 50mm 렌즈이다.


그는 카메라가 눈에 잘 안 뜨이도록 까만 테이프로 가리고 다녔다고 한다. 그런 연유인지 몰라도 지금의 라이카 M 카메라 바디들 중에는 빨간색 동그라미의 라이카로고가 눈에 잘 안 보이는 까만색으로 바뀌어 붙여진 것도 있고 어떤 것은 나의 M 카메라들처럼 아예 로고가 안 붙은 사진기들도 있다. 사진사의 입장에서 난 거리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닐 때는 로고가 없는 것이 편하다. 괜히 눈에 잘 보이는 빨간색 땡땡이 모양의 로고 덕분에 “나, 여기 비싼 카메라 들고 다니오.“ 라 소문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겉옷이 넉넉하게 크면 카메라를 옷 속에 숨겨 다니기도 하니 HCB가 까만 테프를 붙이고 다녔다는 말, 충분히 수긍한다.



마크가 부탁해서 브레송의 두 번째 부인이었으며 그가 설립한 마그넘포토의 멤버였던 Martine Franck의 사진들도 보았는데 솔직히 난 그녀의 작품들이 더 맘에 들었다. 그녀 역시 상당히 유명한 사진가였지만 HCB의 사진들이 모두 셀로판백에 보관되어 있는 것과 달리 그녀의 작품들은 셀로백 없이 낱장 그대로 박스 안에 들어 있어 약간은 홀대를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라서 그런가 싶어 살짝 언짢았다.


우리가 사진들을 리뷰하던 커다란 탁자가 있던 방 옆에 그의 사진들을 모아놓은 아카이브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촬영이 금지되어 눈으로만 보았는데 나오면서 어디서 본듯한 그림이 그려진 콘크리트 블록처럼 생긴 모형 하나가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Aude에게 “Matisse?” 하고 물으니 그렇단다. 그 블록 아래에는 브레송이 찍은 마티스의 사진들이 놓여있었다. 이 소중한 모습을 사진으로 못 찍는 게 하도 서운해 한숨을 쉬면서 ”이거 못 찍어 너무 아쉽다.“ 하니 Aude가 웃으며 이건 찍어도 된단다. 요때다 싶어 너무 좋아서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린다. 일 년 후에 다시 보니 사진 안에 마티스의 그 유명한 비둘기 모습이 보였다. (표식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넣었다)



이 사진들 중에 희귀한 비둘기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촬영한 시기가 마티스가 니스의 로사리오 성당 모자이크 작업을 하기 전이었던 것이 분명했다. 공교롭게도 피카소에게 평화의 상징으로 인용되는 비둘기 그림들은 마티스가 좁은 화실에서 대작인 성당의 모자이크 작업을 하기 위한 공간이 필요해 같이 살던 비둘기들을 피카소에게 주었다고 할 때부터 나타난다. 마티스가 죽은 후에는 두 대가의 브로멘스의 상징으로 피카소 그림에 등장한 적도 있다. 얼마 전 피카소 뮤지엄에서 내가 샀던 5유로짜리 비둘기 그림의 마그넷 (자석) 모델이 여기 있구나 생각하니 괜히 이 오래된 사진들이 전혀 낯설지 않았다.


그 비둘기가 이 비둘기들이었네.



쟈코메티의 작업 사진

쟈코메티는 마티스와 더불어 나의 최애 작가 중 하나다. 손바닥 반만 한 그의 조각 사진을 어릴 적 중학교 미술책에서 발견했을 때부터 괜히 좋아했다. 세월이 흘러 십여 년 후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에서 직접 보았을 때의 감흥이 지금도 생생하다. 몇 년 전 쟈코메티의 회색 인물화에 엮인 스토리를 담은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남편과 같이 보며 내가 연상 웃어대었더니 그가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내가 한 말이 “이 양반, 내가 같이 학교 다녔던 대학 때 누구누구들이랑 비슷해서“ 였다. 그들 중 하나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고 살아있는 친구들 몇몇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미술계의 대가들이 되어있다.



미팅을 마치고 나오면서 기념관 책방에서 전부터 가지고 싶었던 그러나 미국에서는 절판이 되어버려 못 구했던 그의 커다랗고 무거운 사진집을 뒤도 안 돌아보고 덥석 샀다. 너무 무거웠지만 미국에선 세컨핸드 스토어에서 4-500불 정도를 줘야 하였기에. 이 책은 1952년에 처음 출판되었던 것으로 그의 절친인 앙리 마티스가 자신의 콜라주 그림으로 책의 표지 디자인을 해주었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훨씬 더 유명해졌다고 생각한다. 카버에 Images A La Sauvette (images on the run: 달아나는 이미지들)이란 마티스 친필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영어로는 “The Decisive Moment: 결정적인 순간” 으로 번역되었는데 영어판의 제목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켜 브레송을 연상시키는 단어에 머물지 않고 사진이라는 전체 장르를 대표하는 어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불어 제목인 “달아나는 이미지들” 이란 말이 훨씬 좋다. 나에게 사진이란 “catching the fleeting moment: 흐르는 시간을 잡는 것”이라서. 그래서 나는 기회가 내 눈앞에 있을 때 시간을 잡듯 셔터를 누르고 이 문이 열려 있을 때 배울 수 있는 것은 맘껏 배우고 싶다. 언제 닫힐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


당시의 사진들을 오랜만에 꺼내보니 특히 내가 찍은 HCB의 카메라 사진들이 정말 맘에 든다. 그때 별생각 없이 눌렀던 카메라 셔터가 미래의 나를 이만큼 행복하게 해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 사진이란 참 희한한 요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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