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초겨울, 파리포토 워크숍 기간 중 세계적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세바스티앙 살가도의 (이하 살가도) 스튜디오를 방문하였다. 가기 전날, 힘든 방문을 성사시킨 프로듀서 세이지가 나를 똑바로 보면서 “M, 좋은 질문 하나 준비해 줘” 한다. 그를 잘 알지 못하던 나는 그날저녁 호텔방에서 다음날 방문할 작가의 TedX 영상을 온라인으로 보았다. 그의 사진들이 눈에는 많이 익었지만 작가 이름과 연관시킨 것은 처음이었다. 살가도는 사진뿐 아니라 브라질의 황폐해지는 밀림을 다시 살려내는 소셜액티비스트로 더 유명하다는 것도 그날 저녁에 알았다. 인상적이었다.
담날 아침, 우리는 몽마르트르 근처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전날 만났던 사진 딜러인 M이 기다리고 있었고 엘에이에서 온 유명 사진 갤러리스트와 소더비에서 사진 경매를 맡고 있다는 여성도 함께 있었다. 좀 기다리니 살가도의 부인인 듯한 중년의 우아하게 잘 차려입은 여성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의 스튜디오는 좋은 동네의 부티나는 타운하우스 건물의 일층과 이층에 위치한 멋진 곳이었다.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이 약 육십 평쯤 되어 보였고 그 위층의 공간은 그와 부인의 사적 공간으로 여겨졌다.
팔십 쯤 되어 보이는 살가도는 많이 지쳐 보였는데 짤막한 강의 중에도 본인 몸에 이상이 있어서 그날 주치의를 만나러 간다고 하였다. 나에게는 그를 직접 만나고 그의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할 수 있는 것이 커다란 영광이었지만 심신이 피곤한 그에게는 매일 일어나는, 별로 내키지 않는 일상이라는 것이 확연했다. 그러나 나는 집중했다.
강의는 전날 테드강연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아마도 수없이 같은 말을 반복했으리라. 인터넷에 찾아보면 다 나와있는 내용이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그는 브라질에서 원시림을 가진 농장주의 딸 다섯 사이에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하였고 경제학 박사과정 중에 월드뱅크에 입사하여 그곳에서 일을 했고 우연한 기회에 부인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다가 되려 자신이 사진사가 되었다고 했다.
유명한 사진가답게 그의 사진들은 웬만한 사진사들은 꿈도 못 꿀만큼 스케일이 방대하였고 범접하기 어려운 곳으로 직접 가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생생하게 찍은 존경할만한 대서사극 들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구의 끄트머리에서 피땀으로 범벅된 육체노동으로 삶을 영위해 가는 인간들의 비참한 상황을 찍으면서 본인 자신이 그들과 함께 같이 병들어 갔었다고 고백했다.
몸을 추스르기 위해 부인과 함께 고향인 브라질의 부모님의 농장으로 돌아온 그는 울창한 원시림의 모습이었던 어릴 적의 농장이 보기 힘들 정도로 황폐해진 것을 보고 참담한 생각이 들었으나 자신의 아름다운 부인의 권고로 (그의 직설적인 표현이 “suggested by my beautiful wife,”였다.) 메마른 땅에 다시 나무를 심고 가꾸어 본래의 모습인 원시림으로 복원했다고 했다. 자료에 보니 그의 가족 농장은 현재 브라질에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브라질의 황폐해진 원시림을 수백만 그루의 식목을 거쳐 원상으로 복구한 그의 성공 스토리는 살가도를 세계적으로 존경을 받는 사진가뿐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환경보호 액티비스트로 이름을 날리게 하였다. 필순이 넘은 그는 더 이상 사진을 찍지는 않지만 세계곳곳에서는 여전히 그의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프랑스 정부에서 기사 작위까지 받았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전날 세이지가 우리처럼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려면 살가도 재단에 수만 불씩 기부를 해야 한다며 우리가 얼마나 힘든 기회를 잡은 것인지 알고 오시라 하였는데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가도가 우리를 직접 만나준 이유는 순전히 우리와 동행한 사진딜러들 덕분이었다.
이십 분 정도 되었을까? 강의가 끝날 무렵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으로 온 주치의의 전화를 받고 나서 그는 의사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시간이 없으니 질문을 두 개만 받겠다고 했다. 갑자기 정신이 들어온 나는 손을 번쩍 들고 나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말을 내뱉었다.
나: “전 그래픽 디자이너로 40년이 넘게 일해왔지만 사진을 배우기 시작한 지는 일 년 정도 됩니다. 그런데 디자인부분과 달리 사진은 거의 남성 위주의 분야로 보입니다. 저의 질문은 이런 상황에서 만일 당신이 나 같은 여자 사진가의 입장이었다면 어떤 사진을 찍었을까요?”
살가도: (잠시 생각을 하더니,) “나는 여자 형제가 다섯이지만 모두들 나만큼 대접을 못 받고 자랐지요. 그러나 저는 한 번도 내가 여자였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 그래서 그 질문에는 대답을 못하겠네요.”
나: (그의 대답이 전혀 예상 밖이라 벙 쪄서는...) “한 번도 여성 입장에서 생각해 보신 적이 없다니 대단히 실망스러운 답변이네요. 전 매일매일 이런저런 경우 내가 남자였다면 어떤 대접을 받았을까, 어떤 일을 했을까 하고 생각해 보는데요.”
전날 세이지가 나에게 질문을 준비하라고는 했지만 정작 내가 이런 질문을 하리라고는, 그가 이렇게 답을 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순간 분위기가 싸- 해져서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본인의 이야기가 끝나고 살가도는 딜러 M에게 그의 포트폴리오집을 열어 주었다. 그중에서 내 마음에 쏙 들어온 작품이 위의 “인도 봄베이의 처치게이트 기차역”(1995)이었다. 이 사진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승객들이 기차역에서 바삐 움직이는 장면을 롱테이크로 잡은 사진이다. M은 구름 같은 무리 중에 한 남자와 한 여자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찍힌 부분을 가리키며 이 모습은 두 연인이 꼼짝하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는 모습이 사진사도 모르게 찍힌 것이라 하였다. 사진사도 모르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진은 이 두 연인의 모습 때문에 그의 걸작 중 하나로 꼽힌다.
난 이 사진을 보면서 사랑의 모습이 사진기에 낚였던 순간이었다고 생각했다.
살가도의 스튜디오 방문은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운 지 일 년이 겨우 되던 나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세계 정상의 사진가의 모습, 사진으로 이루어낸 그의 업적, 사진을 넘어선 그의 행동가적인 면, 개인적인 일면 등등… 나의 황당한 질문에 그의 속마음을 들켜버린 대목에서 내가 깨달은 점은 내 삶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였고, 못다 한 답을 지나가는 소리처럼 중얼거렸던 그의 한마디, “본인이 원하는 사진을 찍으라.”던 말은 큰 꿈을 꾸기엔 너무 늦게 뛰어든 나의 현실이나 여자 사진가로서의 한계, 등등을 극복하고 나 나름의 좋은 사진을 찍겠다는 마음이 들게도 하였다.
결론적으로 나는 내 사진에 감정과 스토리를 함께 담고 싶고, 남들과 다른 사진을 찍을 것이고 기술적으로도 모자람이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럴 수 있을 때 나의 사진은 담고 있는 내용의 크고 작음을 떠나 “눈으로 읽고 상상하고 느끼는 한 편의 시” 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작품이라면 여자라는 디스카운트가 어느 정도는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