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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된 사진 인화소 아뜰리에 프레송

by Mhkim Feb 10. 2025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사진 인화소(사진프린트샵)중 하나라는 프레송의 아틀리에는 파리에서 서북쪽으로 삼십 분쯤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해 있었다.


사실 사진 프린트샵이라는 단어가 작금의 필름 없이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시대에서는 지난 세기의 뒷방 기술같이 보이지만 내가 반세기쯤 전 대학 일 학년 때만 해도 사진 수업에서는 사진기 다루는 법, 사진 찍는 법 다음엔 반드시 찍은 필름을 직접 현상하고 암실에 들어가 직접 인화하는 것들까지 배워야 했으니 그리 소원한 기술만도 아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세월이 휙 지나서 다시 배운 사진은 디지털카메라로 찍으니 현상이나 인화라는 단어는 포토샵이나 라이트룸으로 대치되었고 정 프린트를 하고 싶으면 디지털 잉크젯 프린터로 하면 끝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사진들이 온라인으로만 사용되어 구태여 프린트로 만들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에 첨 이년 동안은 어떤 사진을 어떻게 찍느냐에만 몰두하며 살아온 듯하였다.



하지만 디지털 파일로만 존재하던 사진들이 일 년 이 년 자꾸 쌓여가면서 이젠 슬슬 내 사진들을 프린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었고 점점 다른 사진사들의 갤러리 전에 걸린 작품들은 보면서 어떻게 프린트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은 프린트를 만들까 하는 호기심도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을 때 이곳에 갔었다.


그때만 해도 프린트에도 아주 특별히 아티스틱한 면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 봤을 때이다. 그러던 중 파리포토워크샵에서 세이지가 이번엔 프레송 스튜디오에 간다 하였다. 그녀의 설명으로는 이곳에서 저 유명한 패션 사진가인 Sarah Moon의 작품도 프린트를 했다고 해서 호기심이 발동하였다. 사라 문의 사진들은 특유의 환상적인 패션 이미지에 컬러풀한 짙은 색감으로 유명하며 당대 최고의 호가를 누리고 있는 사진가라고 하여도 손색이 없겠다. 그런 사람의 프린팅을 한다니 아틀리에 프레송에서는 무슨 프린팅을 어떻게 하는 것일지 궁금했다.



파리 근교 작업실에서 만났던 인물은 4대 프레송인 Jean-Franćois였다. 그의 백 년이 넘은 스튜디오는 1899년에 프랑스 사진학회(French Soiety of Photogrpahy)에 그의 고조부가 소개한 Charcoal Paper (숯종이? 또는 탄소인화지?)에 사진을 직접 인화하는 방법에서 시작한다. 고조부는 자신의 방법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하였지만 그의 아내는 큰아들 Pierre와 함께 숯종이를 만들어 팔았고 이후 피에르와 형제인 에드몬드가 같이 사업을 하게 된다. 이후 형제는 다시 나뉘어 피에르는 극장의 영사기와 같은 이론으로 사진 확대기를 발명하여 인화를 하게 되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피에르의 아들인 마이클, Jean-Franćois의 아버지, 대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을 한 시기 같았다. 아들인 Jean-Franćois는 아버지의 방법을 더도 덜도 없이 그대로 답습하고 있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Jean-Franćois 에게서 그가 프린팅 하는 방법을 자세히 들었는데 “오마나,”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이런 식의 가내수공업식의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다못해 스튜디오 한쪽에는 프린팅 해서 나온 사진을 물감을 사용해서 붓으로 한 점 씩 고쳐나가는 수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긴 필름을 인화해서 프린팅 한 작품들은 지금도 점소묘식의 방법을 택해 약간씩 수정을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칼러로 점점이 고쳐나간 다는 것은 내 상상 밖이었다. 쟝프랑수아의 표현을 빌면 예를 들어 사진사가 본인의 프린팅을 보고는 오른쪽 위는 푸른빛이 좀 더 나오게 해 달려든가 왼쪽 아래의 물은 은빛이 찬란하게 해 달라든가 등의 주문을 한다고. 그럼 자기는 그런 색들을 골라서 사진에 덧입힌다고. 그러니까 그는 화가와 같이 사진을 그리는 것이었다. 그런 연유로 쟝의 손을 거치면 사진이 여러 장을 민들 수 있는 복사물이 아니고 단 한 장밖에 없는 회화작품이 되는 것이었다.



아뜰리에에는 그의 할아버지 피에르가 만든 팔십 년쯤 된 기계가 있었는데 그는 그 기계로 색을 분해해서 필름을 만들고 그 필름을 확대하여 프린트를 한다고 했다. 모든 과정은 오십 년쯤 전 내가 미대 다닐 때 보았던 제판기와 비슷해 보여 아주 생소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그런 기계를 사용하여 내 원화들을 확대 또는 축소도 하여 파이널 레아아웃에 사용하는 원판을 만들거나  했으니까. 모두 맥킨토시나 포토샵이 나오기 전 이야기이다.



모인 일행은 다들 사진가여서 인화하는 프로세스만 아니라 가격에도 관심이 많았다. 그의 대답은 약 30x40cm 한 장에 삼백유로 정도 된다 하였는데 자기가 그 가격에 팔면 사진사는 이삼천 유로에 작품을 팔 거라고 하면서 웃기지? 하는 투로 싱긋 웃었다. 내가 알기론 보통 파리포토에 나오는 사진가들은 그 정도가 적정 가격인 듯 보였다. 내 친구인 J는 그 가격으로 어떻게 수지가 맞지? 한 장에 천유로 이상은 받아야 할 텐데 하며 계속 웅얼거리고 있었고 마크는 자기도 한 장 프린트하고 싶다며 세이지에게 연락처를 받아두라 하였고 나는 내 그림장사하는 입장에서 머릿속으로 연신 넘버를 돌린 끝에 사진사가 그 이상은 지불하기 힘들 거라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작가의 사진 한 장이 삼만 유로 정도 되는 사라 문이나 토드 히도의 경우를 제외하면 말이다.


내 경우는 가격에 대한 관심보다 그가 한 장의 사진을 프린트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아하! 사진이란 게 그냥 곧이곧대로 프린트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크리에이티브한 인풋이 더해져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한 시간이었다. 일종의 사진과 회화의 경계점이 느슨해지는 경험을 한 것이랄까? 아니면 다큐사진과 예술사진과의 차이점을 본 것이랄까? 또한 재료에서도 프린트할 때 각각의 종이가 가진 특성을 알아야 한다든지, 잉크의 종류에 대한 생각도 해야 하고, 필름과 디지털의 차이점이라든지, 에디팅 할 때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등등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방문이었다.


백 년이 다 되어가는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기계를 다루며 가업을 이어가는 그를 보며 기술을 이어갈 다음 세대가 없다는 말이 안타까웠다. 고급공예가 사라지는 세상이 마치 희귀종 동식물이 하나 둘 사라지는 삭막한 세상같이 들리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까? 동료들에게 물어보니 별로 괘념치 않는 것 같아 약간은 의아해서 딜러인 M에게 자세히 물어보니 만일 이런 기술이 필요하다면 누군가는 또 복원할 거라는 식으로 느긋하게 대답한다. 나중에 파리포토에서 알게 된 것은 사라문의 프린터가 현재는 스페인에 있다는 소식이었다.


쟝의 아틀리에에서 이제는 더 이상 구할 수 없다는 프레송의 숯종이를 바라보며 이런 기술이 현존해 있는 동안에 나는 가능한 많이 보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름 큰 공부가 된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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