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했던 파리포토는 그랑팔레(GRAND PALAIS)가 레노베이션이 끝내고 재개장을 한 덕분에 재작년의 후진 창고건물 같은 곳에서 벗어나 다시 본래의 장소인 멋진 전시장에서 열린다 하여 무척 궁금하였다. 역시 유명한 곳은 다 이유가 있는 법. 입구에 들어서니 내 맘에 꼭 드는 채도의 초록색 페인트 칠을 한 가느다란 연철과 그 사이사이를 유리로 연결시킨 마치 거대한 온실과도 같은 높고 아름다운 곡선의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회 장소가 좋아서 전시부스들을 한눈에 볼 수도 있었고 이층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니 여러 열로 늘어서 있는 하얀색 반투명의 부스가 너무 깨끗하게 눈에 들어왔다. 아름다웠다.
“아, 다시 왔구나!”
그랑팔레는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인데 공식적인 예술행사를 위해서 크게 지어졌다. 보자르 (Beaux-Arts)* 취향에 따라 설계된 이 건물은 화려한 석조외관, 유리천장, 철과 연철로 만든 프레임, 철근 콘크리트를 모두 사용한 시대적 혁신을 특징으로 하였고 프랑스 문화부로부터 역사적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막상 건물 안에 들어가 보니 젤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마치 전날 가보았던 에펠탑이 외부에서 보아야 하는 철과 연철의 향연이었다면 그랑팔레는 그런 에펠타워를 안으로 뒤집어서 실내로 끌어들인듯한 거대한 건축물 같았다. 에펠탑을 정중앙 아래에서 올려 보았을 때 느꼈던 먹먹함이 그랑팔레의 어마어마하게 큰 내부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니 비슷하게 다가왔고 초록색 철로 만든 시원하게 뻗은 곡선과 직선의 향연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웠다. 이 건물은 전기가 발견되기 이전에 지은 런던의 크리스털팰리스에 영감을 받은 마지막 대형 구조물이라 하였는데 거대한 원형 돔을 목이 빠져라 하고 쳐다보니 녹색연철 구조에 둘러싸인 투명한 유리창들은 찰떡궁합처럼 잘 어울렸다. 오랫동안의 수리를 마치고 작년 파리 올림픽에서 다시 선보인 이곳은 프랑스가 지난 세기만이 아니라 지금도 잘 나가는 국가라는 것을 모두에게 시위하는 듯했다.
그런 멋진 장소에서 열리는 파리포토는 1997년에 시작하여 지난 28년간 매년 11월에 열리고 있는 전 세계에서 제일가는 사진 페어이다. 그들의 미션은 사진창작과 갤러리, 출판사, 아티스트들을 홍보하고 육성하는 것이라 한다. 내가 지난 이십여 년 너머 참석했던 수천 개의 브랜드가 참가하고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기프트페어와 달리 이곳은 최대 200개의 전시자들을 모아 수집가와 애호가에게 수준 높은 프레젠테이션을 제공한다. 덕분에 심사를 통과하는 것 자체가 꽤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미국이 사진 애호가들도 많고 세계적인 사진 컬렉션을 자랑하고는 있지만 뉴욕의 AIPAD (the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photogrpahy art dealers)나 Photo LA 등은 ParisPhoto의 반도 안 되는 크기로 질과 양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에선 갤러리로 참가하는 곳은 없고 닻프레스가 유일하게 사진 관련 출판사로 북섹션에 참가했다. 시간이 없었지만 일부러 찾아갔었는데 오래전부터 가지고 싶었으나 미국에선 구할 수 없었던 Shoji Ueda의 한국전시 도록이 있어 잘됐다 하고는 냉큼 집어왔다.
전시에 가기 전에 마크는 파리포토는 사진 장사를 하는 곳이라며 그냥 갤러리에 가서 사진 구경을 하고 오는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나는 속으로 “물론 다르지요. 그림을 그리는 것과 그 그림을 파는 것이 얼마나 다른 건데…” 생각했다. 그러면서 머릿속으로 한참 계산을 해 보았다. 이런 페어의 부스하나가 크기와 장소에 따라 약 만 유로에서 삼만 유로 정도라 들었는데 거기에 비행기표 x 2 내지 3 인, 호텔비, 부스셋업, 사진 현상, 인화, 프레임, 운송비, 카탈로그, 책, 등등을 대충 더하면 약 3-6 만불은 조히 들것이다. 이걸 만회하려면 적어도 부스참가자들은 6-10만 불 정도는 팔아야 타산이 맞을 것이다. 보통의 사진가격이 2000유로에서 3만 유로 정도라 할 때 작은 작품의 경우 30개에서 비싼 작품은 네다섯 개는 팔아야 한다. 그것이 가격대가 낮은 책일 경우는 물론 부스 가격도 좀 낮아서 1만 불 정도로 가정한다면 오백 권은 넘게 팔아야 수지 타산이 맞게 된다.
물론 플로어에서의 세일즈가 아주 중요하기는 해도 페어에서 만난 고객들이 나중에 더 큰 판매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꼭 그곳에서 판매한 총액으로 수지타산이 맞았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은 여느 트레이드쇼와 다르지 않다고 들었다. 이 쇼가 지닌 마케팅 파워가 상당해서 페어에 나왔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 갤러리의 위상이 올라간다고도 생각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시작하여 다른 아트페어에도 나갈 수 있는 문이 열릴 것이라.. 나의 경우도 처음 기프트쇼에 나갔을 때는 쳐다보지도 않던 손님들이 한 해가 지나고 해를 거듭할수록 늘어갔었고 브랜드파워도 커 갔었다. 우선은 해봐야 하는 것이고 그다음은 계속할 수 있는 것이 관건이라 하겠다. 요샛말로 존버가 필요한 곳이 아닐까…
갤러리나 출판사의 입장에서 ROI (return on investment)를 실컷 계산해 보고 내린 결론은 “내가 이 나이에 시작하기는 힘든 비즈니스다.”이고 우선은 사진 장사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서 좋은 사진부터 찍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만일 내 사진을 팔고 싶으면 본인의 웹사이트를 통하여 인터넷으로 하던지 갤러리 전을 통하는 것이 더 빠를 듯하였다. 우선은 사진이 중요하다는 또 다른 결론에 도달하였다.
사진가의 입장에서 이런 페어는 내가 콜렉터가 아니라도 일 년에 한 번씩은 와서 보면 많은 공부가 될 것이다. 트렌드가 파악될 것이라. 지난 이십 년 너머 다니던 기프트쇼가 나에게 그 인더스트리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눈만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감각을 주었던 것처럼 사진페어도 계속 다니다 보면 사진을 보는 관점도 넓어질 것이고 내 사진의 방향을 잡는데 많은 도움을 받게 되겠지만 무엇보다도 사회 전반의 흐름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나만의 촉을 키워나가는 장소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2025년에는 파리포토를 마크의 워크숍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이 페어의 참관을 메인으로 삼아 오고자 한다. 반나절이 아니라 사흘동안 샅샅이 둘러보며 희미한 무엇의 실체를 조금씩 파헤쳐나가고 싶다. 누군가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인다 하는 말을 실감하고 싶다.
주:
*Beaux Arts는 웅장하고 화려하며 대칭적인 건물이 특징인 건축 양식이며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에 인기가 있었다. 미국 건축에서 불리는 Gilded Age의 유럽판이라 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