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삼십 년 동안 여러 번을 방문했던 파리지만 관광객으로서 아님 회사 출장이라 바쁘게 돌아다녀서였는지 그곳에서는 항상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도 봐야 해, 저것도 봐야 하는데…”
“오늘은 파리 사무실에 아홉 시까지 가야 하는데…”
이래저래 도착하자마자 호텔방에 짐을 올려놓고는 누가 쫓아올라 바쁘게 뛰쳐나가곤 했었다. 그러나 삼십 년 만에 첨으로 온전히 혼자서 별로 정해진 일 없이 마레에서 닷새를 지내다 보니 파리가 “드디어!” 나에게 스며든다는 기분이 들었다. 약간은 묘한 기분이었다. 마치 내가 로컬이 된듯한? 그러고는 다시 워크숍이 시작되면서 내 마음도 내 다리도 바쁘게 움직였던 것 같다.
파리에서 도합 10박 11일의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떠나는 날, 새벽 세시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머지 짐을 가방에 꾸리고 나서 일곱 시에 나를 데리러 올 택시를 기다리며 호텔방에서 한두 시간의 여유를 부려보았다.
“이번은 어떤 여행이었을까?”
돌아다보니 이번 파리 방문은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해본 것 같아 원이 없었다. 게다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한듯하여 마음도 흡족했다. 이보다 어떻게 더 좋을 수가 있을까 싶었다.
원하던 대로 일 센 루이에서 일 년을 살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마레에서 지낸 오 박 육일 동안 나는 삼십 년을 꿈에서만 그리워하던 마레 댄스 센터도 다시 가 보았고, 퐁피두 센터에서 마티스의 그녀와 썸도 탔고, 일 센 루이의 그 빵가게에서 아침도 두 번이나 먹었다. 내 맘대로 잠도 실컷 잤고, 눈뜨고 정신이 나면 나가고 싶을 때 나갔다, 들어오고 싶을 때 들어와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생활한 듯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하루하루 맘대로의 생활이 시간이 흐르면서 이것도 해야지, 저것도 해야지, 하면서 시간 계산을 해가며 To Do 리스트를 쓰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역시 뭔가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 본성과 마주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가만히 못 있는 한국사람의 유전자가 사십 년 타향살이에도 변함없이 여기 존재하는구나 하는 현타가 왔다고나 할까? “픽” 하는 웃음이 났었다.
장소를 바꾸어, 뱅돔에서 묵은 사 박 오일 동안은 마크와 세이지가 정한 프로그램대로 수동적으로 그러나 나름 열심히 참여했던 워크숍이었다. 많이 배웠고 많이 생각했고 동료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서로들 엄청 배운 듯했다. 미국 안에서도 비행기로 대여섯 시간이나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 같은 시간에 모두 파리에 모였다는 게 신기했고 감사했다.
또 하나,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지만 뱅돔에서의 내 호텔방이 진짜 마음에 들었다. 장소는 메리엇에서 운영하는 웨스틴 뱅돔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비싸지 않은 가격에 사 층 꼭대기에 튈르리 공원과 마주한 에펠타워가 보이는 방이었다. 가격은 마레의 호텔과 비슷했어도 뷰는 진짜 백만 불짜리이지 싶었다. 내가 이렇게 운이 좋아도 되는 건가? 싶기도 하였으니까. 그곳에서 멀리 있는 에펠타워도 맘껏 보았고, 바로 코 앞의 튈르리 공원도 아침저녁으로 즐길 수 있었다.
첨에 그 방에 들어가서 너무 기쁜 나머지 혼자서 기분을 내 보고 싶어 자그만 프렌치윈도우를 열고 밖으로 나가 손바닥 만한 발코니 위에 발을 얹어 놓고 마치 “파리의 에밀리”에 나오는 그녀의 멋진 데이트 신을 흉내 내볼까 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발코니가 생각보다 너무 좁은 공간이라 위험할듯해서, 또 샴페인이 없기도 해서 머리만 내밀어 사진만 찍고 들어온 적도 있었다. 그래도 이게 어딘데? 하는 생각을 포함해 오만가지 생각을 그 방에서 했다.
새벽에 내다보는 파리는 조용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대로는 그 유명한 리볼리길(Rue de Rovili.) 이젠 길 이름도 귀에 꽂히고, 동서남북도 감이 오고 하는 걸 보니, 자주 오기는 했나 보다. 신께 감사했다. 이런 상상도 못 하던 경험을 하게 되어서...
브런치 첫 연재에 대하여…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대 파리포토 기간 동안에 열리는 내 사진 선생 마크의 워크숍에 참석하러 그곳에 간다는 것은 어찌 보면 좋은 핑계였다. 아마도 식구들이나 친구들 모두 그런 나의 맘을 훤하게 들여다보았을 것이지만 두 손 들어 잘 갔다 오라 하며 흔쾌히 보내주었다. 그들의 격려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괜히 징징거리고 투덜거렸다면 아무리 내 돈으로 가는 것이지만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여행하는 것은 내 생애에서 잘하는 일 중에 하나라 생각한다. 더불어 이렇게 늦은 나이라도 사진기를 다시 들게 된 것 또한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덕분에 나의 좁은 시야가 조금씩 확장되어 가고 전엔 못 보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게다가 덤으로 삶에 활력까지 생기게 되었다. 누구 얘기처럼 “이 나이에…”
특별한 것은 이번엔 여행의 기억이 내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고 이렇게 브런치에 올린 글로서 남게 되었다. 석 달 넘게 일주일에 한 두 편씩 사진을 고르고 글을 써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는 사건들이 있다는 것에 조금씩 놀람이 늘어갔다. 그래도 열심히 찍어 놓은 사진들 덕분에 그렇게 사라질뻔한 기억들을 다시 잡을 수 있어서 얼마나 안심이 되었는지…
또한 이번 기회를 통해 나의 변변치 않은 글들을 읽어주시는 여러분들에게 진심 어린, 진한 감사를 전하고 싶다. 얼굴을 볼 수 없는 분들이지만 여러분들의 좋아요 하나하나가 다음 글을 쓰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세상 살면서 글을 연재해 보긴 정말 처음이다. 첨에는 매주 한편을 쓰겠다는 약속을 한다는 것이 엄청 부담스러워서 할까 말까 망설였지만 그래도 그러지 않으면 끝을 안 내고 주저앉을까 봐 억지를 부렸는데 아주 잘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마지막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이 또한 감사한다.
이제까지 내 글과 사진을 어떤 앱을 사용해야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이 많았는데 브런치의 포맷이 나와 꼭 맞는다는 확신이 들어 기쁘다. 다만 글을 따로 카피해서 모아 두려는 시도를 할 때마다 포스팅 전체가 한 번에 카피가 되지 않아 개개의 문단별로 복사해야 하는 것이 불편했다. 굳이 흠이라며 흠이다. 이점, 브런치의 테크니컬 매니저들께서 고려하여 주시면 금상첨화일 듯하다.
다음 주제는 이로부터 딱 한 달 후에 또 방문하게 된 파리에서의 또 다른 열흘간이다. 두 번째 여행은 남편과 휴가 삼아 가는 것이라 파리포토와는 다른 종류의 경험을 하게 되었다. 사실은 남편의 초대에 내가 게스트로 동행한 거라 내 맘대로 못한 것들은 많지만 대신 음식 만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사람이 좋은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어 혹시라도 흥미롭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음 연재를 기획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이번에 한 권의 연재를 마치면서 알게 된 글쓰기의 즐거움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는 약간의 중독성도 있겠다.
이제 숨을 조금 가다듬고 한주는 뛰어넘고 두 주 후부터 새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그 사이 막간을 이용해 다른 주제의 글도 쓰려는 걸 보니 이제는 허공에 날아가던 모국어가 조금씩 되돌아오는 것이 아닐까 하는 희망도 생긴다.
마지막으로 내게 글을 쓰도록 플랫폼을 허락해 준 브런치 관계자 여러분들과 나의 소중한 독자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이제는 좀 더 열심히 그분들의 글도 찾아가서 멋진 이야기들을 조금은 느긋하게 즐기고 싶다.
미국 오레곤주 포틀랜드 숲 속의 집에서, Myunghye Kim H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