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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낀 날 저녁 황금색 에펠탑

by Mhkim Feb 03. 2025




지닌 십일월 파리로 떠나기 두 달 전쯤이었다. 그때보다 일 년 반 전 포르토에서 처음 만나 마크의 사진 워크숍을 같이 했던 사진작가인 S와 인스타에서 서로의 안부를 물었다. 문자가 왔다 갔다 하는 중 두 달 뒤 내가 파리포토에 간다니까 자기도 파리포토 기간 동안 그곳에 있을 거라 한다.


나: “잘 됐다. 우리 같이 저녁이나 먹자.”

S: “오케이!”

나: “그럼, 네가 좋아하는 곳으로 레스토랑을 정할래?”

S: “그럴게.”

나: “저녁 먹고는 같이 사진 찍으러 가자. 어디로 갈지는 내가 생각해 놓을게.”

S: “그러자!”


파리로 떠나기 이틀 전 S 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S: ”여기가 내가 예약한 식당이야. 11/5일 7:30 PM, Josephine Chez Dumonet”

나: ”Okay, 그날 거기서 봐. 어디로 가서 사진을 찍을지는 그때 알려줄게.“

S: “알았어. 그때 보자.”


이상이 세대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자라온 배경이 다른 두 타인이 다만 서로가 여자사진사라는 이유만으로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그녀와 나는 일 년 반 전 포르토에서 처음 만나 일주일간 마크와 사진 워크숍을 같이한 후 작년 십일월 파리에서 다시 만나 몽파르나스에서 같이 저녁을 먹고 에펠탑 주위를 얼쩡거리며 엄청나게 재미난 추억을 공유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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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식당앞 (내 사진),           오른쪽: 내부 모습 (자료사진: 구글.com)


일 년 반 만에 만난 S는 여전히 시원시원했고, 아름다웠고, 명랑했고, 행복해 보였다. 전날 오스틴 텍사스에서 출발해 그날 아침에 파리에 도착했노라 하였다. 강철 체력이다 싶었다. 그녀는 지난 일 년 반 동안 사진집도 한 권 출간했고 몇몇 군데에서 상도 탔는데 사진가로 나선 지 십 년 만의 성과가 돌아오는 듯해서 보기 좋았다. 어떻게 이 식당을 알게 되었냐 물었더니 몇 년 전 자기 남편과 파리에 왔을 때 영국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가 데려 왔었다며 당시 음식이 너무나 좋아서 그 후론 파리에 올 때마다 꼭 들린다 했다. 파리의 식당을 꿰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곳이어서 일찌감치 준비하지 않으면 못 오는 곳이라 하면서 자기도 두 달 전에 예약을 했다며 메뉴를 보며 무얼 먹을까 찾고 있던 내게 다 맛있으니 원하는 것은 뭐든 시키라고 한다. ”아무거나 다?“ 그 말에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각각 레드와인 한잔씩과 원하는 디쉬를 정하고 디저트로는 만드는데 오래 걸리는 수플레를 나눠먹기로 하고 어렵지 않게 오더를 마쳤다.


식사를 기다리며 그녀는 “밥 먹고 사진은 어디서 찍을까?” 물어본다. 난,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 밤중에 안개 낀 에펠탑 어때?” 하였더니, 단번에 “그거 좋은 생각이야.” 그렇게 죽이 잘 맞는 두 여자 사진사들은 저녁식사를 기분 좋게 한 뒤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타고 몽파르나스에서 코앞에 있는 에펠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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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한국 가요 중에 “안개 낀 장충단 공원” 이란 가수 배호 씨가 부른 트로트 노래가 있다. 안개가 끼었다니 제목만으로도 장충단 공원은 그날이 멋졌을 것처럼 들린다. 그러나 누가 ”진짜로 그래?“ 하고 묻는다면 “몰라요.“ 가 답이다. 안개 낀 날 그곳에 가본 적이 없어서. 그러나 어느 누가 ”안개 낀 에펠탑이 멋져?“ 하고 묻는다면 이제부턴 진짜 장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그날의 즐거웠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한 건 물론이고 황금빛으로 물든 에펠탑은 발끝부터 꼭대기까지 얼마나 멋져 보였는지 모른다. 특히 안개 낀 에펠탑은 밤중에 가시라 강추한다.


도착하기 전까지는 추운 날씨에다 늦은 저녁이라 관광객도 별로 없어 어쩌면 썰렁할 수도 있을까 하는 우려도 했었다. 그러나 십오 년 만에 다시 탑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에펠탑은 이젠 더 이상 널널하게 뚫린 공공의 장소에 서있지 않았다. 대테러 방지용으로 2017년에 설치된 투명 방탄유리벽은 생각보다 효용이 좋아서 일단 보안시설을 통과만 하면 유리벽 내부에는 잡상인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유리벽이었지만 그녀를 잘 보호해 주는 기분이 들어 나름 아늑했다. 덕분에 한밤중이었지만 하나의 썰렁함도 없이 너무나 안전하게, 편안하게, 여기저기 맘대로 구경하고, 맘껏 사진도 찍고 잘 놀 수 있었다.


특히 이곳에서만 가능했던 풍경은 타워의 바닥 정 중앙에 서서 고개를 구십 도로 꺾어 곧장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었는데 어찌 보면 만화경 (칼레이도스코프: kaleidoscope) 같이 사방이 대칭형으로 구성되어 있는 에펠탑의 복잡하지만 치밀하게 계산된 철제구성을 맘껏 보고, 맘껏 감탄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곳에서 보는 타워는 마치 거미집같이 촘촘히 엮어진 기하학적인 직선과 곡선들이 안개 낀 까만 밤하늘에 황금색 조명빛의 난반사를 받아 더욱더 찬란하게 보였다. 어떻게 백사십 년쯤 전에 이런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는지 에펠이라는 사람이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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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구경하다 다시 보안 구역 밖으로 나오니 아프리카에서 온 듯한 잡상인들이 나름 장사하는 구역에 모여 있었고 모두들 막강한 파리 경찰들의 지휘아래 있었다. 비록 파는 물건들은 에펠탑이란 주제만 제외하고는 품질이나 진열한 모습들이 모로코의 마라케시 야시장 분위기였지만 그곳처럼 시끄럽거나 정신없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피리소리에 춤추는 뱀 파는 상인들은 없었다. 그래도 파리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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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벽 밖으로 나와 어디로 갈 거냐고 물어보는 S를 향해 트로카데로 언덕을 가리키며 “나, 아직 저 언덕에 한 번도 못 올라가 봤거든? 우리, 같이 올라가서 내 소원 좀 풀어줄래? “ 하니, 그녀는 웃으며 ”물론이지!“ 하며 나를 따라나선다. 밤중이고 가로등도 없어 깜깜하였지만 핸드폰 플래시에 의존해서 잘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기어이 올라가 보니, 역시! 그 많은 유명한 사진가들이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다. 그곳에서는 에펠탑이 시야를 가리는 것 하나도 없이 온전히, 너무나 잘 보였다. 게다가 반질반질하게 잘 닦인 대리석 바닥재는 희미하게나마 빛을 반사해서 멋진 미러이미지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 “오호! 비 오는 날 이곳이 사진 찍기에 좋을 수밖에 없는 이유로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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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선 열 두시가 다 되어가는 한밤중이었는데도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아마도 소등할 때 흰색 불빛이 춤추듯 수놓는 화이트 에펠 타워를 보려는 인파들이리라… 그러나 다음날 아침부터 뛰어야 하는 우리는 서운함을 뒤로하고 언덕을 가로질러 걸어 나와 택시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호텔 방으로 돌아와서 튈르리 공원으로 향한 창문을 여니 좀 전에 스테파니와 같이 보았던 황금빛의 에펠타워가 까만 실루엣으로만 보였다.


황금빛의 에펠탑, 오래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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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그로부터 한 달 후,

나: (위의 오른쪽 사진을 그녀에게 보내주며) 스테파니, 여기 에펠타워에서 찍은 네 사진 나왔어. 멋지네.

S: 고마워. 난 아직도 그때 찍은 사진들 에디팅을 못했어. 네 사진도 있는데 곧 보내줄게. 근데 내년에도 파리포토에 갈 거니? 난 갈 건데, 너도 가게 되면 이번엔 한 이틀쯤 잡아서 같이 놀자.

나: 물론이지. 내년에도 파리포토에 가려고 하는데 그때 또 보자. 지난번에 너무 재미있었어. 음식도 기가 막혔고 황금색의 에펠타워는 오래 기억할 거야. 같이 가 주어서 정말 고마웠어.

S: 나도 그래. 연말 잘 보내~

나: 고마워. 너도~ Happy Holidays~


그녀는 연초에 엄마랑 이모랑 파리에 또 간다고… 그리고 니스에 사진작업 하러 갈 거라고. 나보다 훨씬 더 잘 다니시는 사진사가 거기 있었다.


P.S. 그녀에게서 내 사진은 아직도 못 받았다. 아마도 이번 가을에 다시 볼 때쯤 받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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