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도 내가 신부님 방에서 잘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못해봤다, 그것도 닷새씩이나….”
마레로 떠나기 팔 개월쯤 전, 파리행 비행기표를 사고 나서 그곳에서 묵을 호텔을 찾아봤다. 내 조건은, 마레지구일 것, 시청과 퐁피두 센터와 가까울 것,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는 곳일 것. 세 가지였다. 이유는 첫째, 파리에서 첨 묵은 곳이 마레였고 (너무 좋았고,) 둘째, 호텔이 시청과 퐁피두 센터와 가까워서 일 박 이일동안의 짧은 여정에도 일 센 루이와 노트르담도 걸어서, 오르세 뮤지엄과 루브르에도 걸어서, 샹젤리제는 지하철 타고 가서 점심까지 거나하게 먹고 다시 드골 공항에서 비행기 타고 (해저 터널이 생기기 훨씬 전) 런던으로 돌아오는 것이 가능했던 엄청 좋은 로케이션이라서, 마지막 조건은 호텔이 있던 곳의 골목이 하도 좁아 택시가 못 들어갔던 관계로 발로 헤매면서 찾아야 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그때는 런던에 회사일로 출장 와서 주말을 이용해 혼자서 단행한 과감한 일탈이었다 - 내 보스도 나중에 알고 나서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 자기가 보스란 위엄을 보이고 싶었는데 주말에 내 돈으로 갔다 온 거라 한마디도 못하게 되어 답답한 듯했지만 무슨 상관. (이래서 미국이 좋다.) 런던 호텔에 대부분의 짐을 놔두고 어깨에 메는 가멘트 백 (garment bag) 하나만 들고 단출하게 마레에서 호텔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커다란 짐가방 하나, 무거운 카메라 두 개와 렌즈 셋, 랩탑과 아이패드를 포함한 카메라 집기를 가득 넣은, 한 손으로 들기에는 벅찬 롤러웨이 케리어, 크로스바디 핸드백 하나, 그리고 훨씬 나이 먹은 내 몸까지 합쳐 그 모두를 끌고 들고 울퉁불퉁한 돌을 깔아 놓은 오래된 길거리를 헤집고 돌아다닐 엄두가 안 났다. 그래도 마레에는 있고 싶어 호텔닷컴을 싹 쓸어 마땅한 곳 하나를 찾아냈다.
Le Presbytère 호텔. 장로교의 그 프레스비테리안? 이곳에도 장로교의 교회를 개조해서 호텔을 만드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미국선 클럽으로 변신한 성당도 보았으므로.) 내부 사진들을 웹으로 보니 어떤 방은 마치 성당의 포트레스 빔이 방을 가로질러 가는 곳도 있어 혹시 성당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러나 말거나 깨끗하고 조용하면 되니까 신경 끄고. 가격은 비수기라 이백오십 유로. 레이팅은 9.8. 그 가격에 고를 수 있는 가장 좋은 조합이었다.
떠나기 나흘 전, 호텔에 다운페이를 지불할 때가 되니 컨펌 이멜이 오고 이어서 호텔에서 직접 운영하는 리무진 예약 서비스가 떴다. 팔십 유로. 이 정도면 팁포함 (미국 사람들은 팁을 주어야 속이 시원하다.) 넉넉잡아 백 유로라 공공사이트의 리무진 서비스와 비슷한 가격이다 생각하고 재빨리 예약했다. 너무 잘했던 것이 호텔 로고가 박힌 리무진이어서 덕분에 코앞까지 자동차가 들어갈 수 있었고 (마레는 대로를 제외하고는 거진 일반 차량 제한 구역들이다.) 차도 크고 깨끗하여 짐 넣기에 불편함이 없었고, (공공사이트에서 예약해서 잘못 걸리면 엄청 지저분한 차가 오게 되어 기분 잡친다.) 기사 아저씨도 호텔 직원이라 이층의 리셉션 데스크까지 내 무거운 가방들을 가비얍게 올려다 주었다. 일반 택시를 탔으면 들어올 수 없는 구역이라 하였다. 그랬을 경우 그 커다란 가방과 핸드캐리어를 끌고 내 노구를 이끌고 울퉁불퉁 돌바닥을 가로질러 첨 가는 호텔로 물어물어 찾아갔어야 했을 텐데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스타일도 엄청 구길 것이고… (내 나이가 되면 스타일도 엄청 중요해진다. 나이 든 사람이 기를 쓰고 뭘 하면 불쌍해 보이고 우선은 기분을 잡친다. 여긴 한국처럼 나이 들었다고 봐주는 문화가 아니다.)
도착해 보니 바로 옆 건물에 성당인지 교회인지가 붙어있었다. 그러나 방에 올라가서 보아도 교회 같은 낌새는 없었고 조그만 창 너머로도 교회는 보이지 않았다. 내 방은 혼자 쓰는 거라고 젤 작은 곳을 예약해서인지 뷰는 별것 없었지만 창이 크게 나있어서 밝았고, 실내도 깨끗했고, 매트리스도 편안했고, 데코레이션도 프렌치 모던으로 쌈빡한 호텔방 분위기라 만족스러웠다. 호텔리어들도 메이드만 빼고는 다 영어를 잘해서 의사소통이 수월했다.
삼십 년쯤 전 두 번째 파리 방문에서 묵었던 라틴쿼터의 호텔 하나는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오래된 침대여서 나중엔 허리가 아플 지경이었고 그리 깨끗하지도 않았다. 그 후 파리에 올 땐 미국의 대형 호텔 체인으로 갔었다. 대충 국제적으로 사양들이 비슷하니까. 반면 마레는 모두 부티크 호텔들 밖에 없어서 신경이 좀 쓰였는데 생각보다 내부시설이 훨씬 업그레이드되어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파리도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많이 변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호텔을 찾으면서 파리 역시 코비드 기간을 지나면서 영세하고 오래된 호텔들이 돈 많은 기업형 호텔들에게 하나씩 둘씩 넘어간다는 소리를 들었다. 예를 들어 일 센 루이에는 허름하고 오래된 호텔이 서너 개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갑이 두둑한 기업에 팔려 레노베이션을 거쳐 훨씬 비싼 호텔로 탈바꿈하였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그 호텔이 내가 투숙한 곳과 같은 체인이었다. 그룹 안에 대여섯 개의 호텔들이 있어 서로 인력과 서비스를 공유하는 듯하였다. 예를 들면 호텔의 리무진 서비스도 그런 공유 시스템중 하나였다. 사실 방이 열한 개뿐인 곳에서 자체로 그런 서비스를 운영한다는 것이 무리지 싶었는데 다 가능한 이유가 있었다.
결론은 이곳 마레의 호텔들이 사이즈만 작았지 더 이상 부티크가 아니라는 점. 코로나를 지나면서 뉴욕도 엄청 변했는데 이곳 파리도 예외는 아니라는 점. 빈익빈 부익부는 지구촌 전체의 현상이었다.
웹사이트를 찾아보니 호텔은 16세기에 지어진 Saint Merry Church 옆에 위치한 주교관을 개조한 것이었다. Presbytére가 장로교라는 뜻만이 아니라 주교관이란 뜻도 있었다는 걸 첨 알았다. (영어는 배울수록 모르는 게 더 많아진다.) 어떤 방에는 고딕성당에서 볼 수 있는 사선형 빔이 위치해 있고 11개 방들이 다 유니크하게 생겼다고 하였다. (난 맘대로 또는 제각각이라 번역하고 싶다.)
그런 연유로 호텔은 역사적인 모뉴먼트 (Historic Monument: 영어로 랜드마크?)로 지정되어 레노베니션을 할 때도 엘리베이터는 설치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자기들이 짐은 다 책임지고 올려다 줄 것이니 걱정 말라고 적혀있었다. (파리에서 아주 큰 호텔 말고 웬만한 곳에는 원래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뭔 소리인가 싶었다.)
역사적인 기념관에서 하룻밤을 자고 담날 아침, 호텔 리셉션에서 일하던 - 그 전날 나의 엄청 무거운 가방을 삼층 방까지 (미국식으로 사 층까지) 올려다 준 - 미구엘을 또 만났다. 그에게 호텔 옆이 성당이냐 물으니 그렇단다. 그러면서 내방 침대 쪽 벽 반대편이 성당의 내부 벽이라 하였다.
“흠… 난생처음, 꿈에도 생각 못했던 신부님 주교관에서 잔 거 맞는구먼. “
“그래? 그럼 성당을 구경할 수 있을까?“ 했더니 지금 가서 보여주겠단다. 호텔을 나와서 이십 미터쯤 미구엘을 따라 걸어가니 성당 입구가 보였다.
내부가 생각보다 무척 커서 깜짝 놀랐다. 이 동네는 그냥 길거리 아무 성당에나 들어가도 다 이 정도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경험에 유럽에서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성당에 들어가도 내 눈에는 명동 성당을 뺨치곤 했는데 이곳은 그보다 더해 명동 성당보다 세배는 더 커 보였다.
세인트 메리 교회는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지어졌지만 양식은 그전 세기의 화려하고 웅장한 고딕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내부에서 자세히 보니 크기만 컸지 인테리어나 집기들이 원래는 화려했었다고는 하지만 지금은 먼지에 푹 절어 지저분했고 더러워 보였다. 마치 나이 들면서 잘못한 성형수술 자국이 마구 보이는 왕년의 여배우를 연상시키는 듯해서 측은했다. 노트르담같이 불은 나지 말아야겠지만 이곳도 개보수가 시급한 곳이구나 싶었다.
원래 Saint-Merry는 인근 Rue des Lombards에 위치한 이탈리아 대부업자와 은행가들을 위한 교구 교회 역할을 했으며, 파리에서 가장 부유하고 가장 화려하게 장식된 교회 중 하나였다고 한다. 또한 중세 시대에는 파리의 매춘부들이 그들의 "사업장"에서 가까워서 주변 거리에서 일한 후 고해성사를 하러 오는 장소로 쓰였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사람들이 떠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교회 주변을 걷다 보면 홈리스들의 천막들이 즐비하였고 공공 화장실이 변변치 못해 길거리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었다. 파리의 어글리 사이드를 보는 듯했다.
프랑스에선 모든 교회가 로마 교황청이 아닌 국가 재산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노트르담 사원 화재 후 재건축의 재원과 설계 모두를 국가가 주도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본인의 명예를 걸고 한 국책 사업이었다. 며칠 전 오 년간의 보수가 끝나고 재개장 때 보여주던 영상에서 예전의 어둡고 칙칙했던 성당이 환하게 다시 태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또 갈만 한 듯했다. 내 눈으로 노트르담의 모습을 업그레이드하고 싶었다고나 할까? 퐁피두센터도 2025년부터 오 년간 개보수에 들어간다고 하는데 앞으로 5년간 그곳에 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섭섭은 하지만 오 년 후의 달라진 퐁피두 센터를 기다리는 마음이 더 크다.
사람은 바꿔 쓰는 게 아니라고 하는데 건축은 아닌 것 같다. 크게는 도시 역시 마찬가지이고 작게는 내 호텔방이 그러했다. 어떻게 가꾸느냐에 따라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에게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마레의 호텔방에서 나는 편안했고 따뜻함을 느꼈고 침대의 다른 쪽 벽이 별로였다는 걸 내 눈으로 확인까지 했지만 전혀 상관없이 잘 지냈다. 그래서 더욱 건물은 잘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점은 사람도 마찬가지겠지만…
언제쯤이면 노트르담의 여동생으로 불리는 세인트 메리 교회가 재탄생할 수 있을까? 그때쯤에는 나도 이 호텔에 다시 돌아와서 깨끗하게 새 단장한 옆집에서 프랑스의 유명한 작곡가인 Saint-Saëns 이 연주했다던 파이프 오르간 소리도 들어보고 (내 친언니가 파이프오르간 전공이라 나도 어느 정도는 들을 줄 안다, 이 말은 괜히 자랑삼아…) 그 옆의 스트라빈스키 광장 분수대 옆에서 느긋하게 책도 읽고, 퐁피두 센터에도 다시 들어가 마티스의 그레타도 또 만나고, 꼭대기 층의 유명한 식당에서 파리를 내려다보며 사진도 찍으며 멋진 식사도 하고 싶다는 꿈을 꾸어본다.
그럴 날이 꼭 오면 좋겠다.
퐁피두 광장옆 스트라빈스키 분수대 옆에서 책을 읽던 이 여인은 내가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한참 동안을 독서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 자태가 아름다웠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에 다시 보니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놓지 않았더라면 내 눈을, 기억을 의심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