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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 밀란 프라다파운데이션

by Mhkim




뒤돌아보니

내가 절벽에서 뛰어내린 것 같았다.

엄청나게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듯했는데

하나도 안 다쳤다.


이야기 인즉슨은...

밀란에서의 첨 며칠이 정말 많이 힘들었다.

그냥 놀러 온 셈으로 사진기 하나 달랑 들고 온 워크숍이었는데 갑자기 Scene당 오 분씩을 줄 테니 이 모델들 사진을 찍고 스토리를 만들어서 제출하라고 한다. 한 스무 장 너머 업로드를 했을 것 같은데, 아래 보시다시피 사진들이 다 고만고만하다. 이 사진들을 바라보며 지난 장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미칠 것 같았다.



Fondazione Prada

그리곤 프라다파운데이션으로 또 필드 트립을 갔다. 그곳은 이태리의 빌리어네어 패션사업가인 프라다 여사가 만든 곳으로 마치 패션을 주제로 한 컬처럴 테마 파크 같았다.


그 안에는 영화관도 있었고 현대 미술관도 있었고 커다란 전시실들도 수도 없이 많았는데 마치 무지하게 넓은 낡은 공장터를 죄다 사서 옛것은 껍데기만 남겨두고 속은 모두 현대식으로 고쳐 놓은 것 같았다. 카페도 있었고 식당도 있었는데 나는 그중에서도 7-8층쯤 되어 보이는 타워 같은 건물의 맨 꼭대기로 향했다. 이상하게 아무도 나같이 빨빨거리고 다니는 동료들이 없어서 결국 혼자서 휘휘 둘러보며 그곳으로 갔었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그 위에 옥상 카페가 있다고 읽었고 그곳에서의 뷰가 기가 막히게 좋다고 쓰여있었다.



힘들게 올라갔더니 역시! 프라다가 패션/디자인 컴퍼니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멋진 바가 나타났다. 까만색과 진한 빨간색이 무지 잘 어울리게 디자인된 곳이었는데 이름은 “Torre” 이태리말로 탑이란 뜻이라고. 내가 탑 꼭대기에 있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보니 바로 앞에는 기찻길이 보였고 근처는 온통 공사를 하느라 뒤집어 놓았다. 폼 잡고 혼자 칵테일을 한잔 마시면서 한동안 멍을 때렸다.



그러고 나오는데 아래 보이는 공중에 뜬 듯한 까만색 테이블에 약간 퍼지는 듯한 까만 드레스에 둔탁한 앵클부츠를 신은 메트르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 갑자기. 퍼뜩, 머릿속에서 “저걸 찍어야 해” 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래서 그녀에게 다가가서,

“혹시 제가 거기 서 계시는 모습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그랬더니 좋다고 하면서 그 테이블 안에서 나와서.

“아니요. 그 테이블 안에 서 계시는 모습을 찍고 싶어요.”

“아, 저는 찍으시면 안 돼요.”

“아니 댁의 얼굴은 안 찍을 거니까 안심하시고요.”

“정말로 얼굴은 안 나오는 거죠?”

“절대로 안 나와요. 찍고 나서 보여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다시 들어가서 서 있을게요. “

그렇게 해서 찍은 사진이다. 나중에 그녀에게는 이멜로 파일을 보냈다.


이 사진은 내가 첨으로 찍은, 실수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초점이 안 맞게 찍은, 내가 아직도 너무나 좋아하는, 내가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고 타워를 내려왔더니 나의 동료들이 이렇게들 모여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이들과 인사를 하고 같이 끼어 앉았다.

내가 그 타워 꼭대기에서 눈감고 뛰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나의 첫 번째 “점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조그만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올 때 같다고나 할까?

신세계였다.

나오고 나니 별거 아니었는데 왜 그리 힘들었을까?

초점하나 블러리 (한국친구들은 흔들리게 찍는다고 하던데..) 하게 만든 것 밖에는 없었는데.


왜 그렇게 초점을 안 맞추는 것이 나에겐 그렇게 어려웠을까?

사십 년을 그렇게 배워먹고, 일하면서 살아서일까? 아니. 아마도 내 성품 때문이 아니었을까?

내가 배운 바우하우스식의 기능을 강조한 디자인 교육, 칼로 잰듯한 디자인, 그리고 그런 나의 성품 - 단정해야 하고, 한치의 틈도 보이고 싶지 않은 완벽주의자 같이 보이고 행동해야 속이 편한 기질이어서?


나는 거기서 벗어난다는 것은 한 번도 생각도 안 해봤는데 선생하나 잘못 만나 (물론 농담이다) 결국은 그 상자를 깨어버린 나는, 어쩌면 이게 운명적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봤다.

사진을 배운다는 것은 그렇게 나를 깨어버리면서 속에 내재한 나를 찾아가는 또 하나의 과정인 듯싶었다.


J U M P

히나도 안 다쳤고 이상하리만치 속이 뻥 뚫린 듯했었다.

그래서 그곳 TORRE는 내 마음의 성지 비슷하다. 내가 사진에 첨으로 발을 들여놓은 곳이라서 특별하다.

그날 그곳에서 칵테일을 한잔 마시고 들고 나왔던 냅킨 조각을 내 노트북에 끼워 놓았다. 노트북 내지 첫 장 귀퉁이엔,

“Oct 11, 2022, Milan, Italy”

“Jump Out” & “I DID”

라 적혀있다.


이후로부터 이 년간 두 달에 한 번씩 만나오던 마크와의 클래스는 매번의 만남이 “JUMP”였다.





기어 인포:

라이카 Summilux M 35mm ASPH F1.4 + LeicaM10R

Editting software: Adobe PhotoSh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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