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와의 처음 워크숍은 하루하루가 지나가면서 내 머릿속에 있던 사진이라는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죽박죽으로 만들었고 급기야는 내가 사진을 배운 적이나 있었나? 할 정도로 내 머리를 멍하게 만들어 놓았다. 마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사진이라는 캔버스의 이미지가 흐믈흐믈 사라져 가는 듯이?
이런 과거와 현재의 충돌은 매우 생소했지만 왠지 이 시간을 잘 헤쳐나가야 된다는 느낌만은 확실했다. 아마도 지난 사십 년 동안 내 안에 자리 잡고 커온 그래서 익숙해진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너무나 경직되어 있어 이 틀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종의 촉이 왔다고나 할까? 그러나 그 과정이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마크를 만나기 전의 내 사진의 한 예. 그래픽 디자이너답다. 멀쩡한 사진에 글자가 들어가 있다. 그것도 빨간색 상자 안에)
마크의 사진을 대하는 시선은 나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상업사진에 익숙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고 그는 나같이 틀에 박힌 갑에게 틀을 깨라고 요구하는 아트사진작가였다. 그리고 본인의 생각이 옳다고 너무나 확고하게 믿고 있어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만이 있었다. - 내가 껍질을 깨고 나오던지 아니면 그대로 그 껍질 안에 안주하던지.
예를 들어, 그는 우리에게 “초점 맞출 생각 말고 먼저 느끼고 그 느낌 그대로 찍어라“라고 요구했는데 그 말을 들은 나는,
“그게 가능해?”
“아니, 뭘 찍을지 생각도 없이 느끼는 게 먼저라고?”
“구도도 생각 안 하고 초점도 안 맞추고 백그라운드도 안 보고 그냥 찍으라고? 맙소사! “
“난 이제까지 디자인할 때는 모든 것을 다 정리하고 계획하고 아이디어가 나오면 그걸 실천에 얼마나 잘 옮겼냐로 먹고살았는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난, 못해. 못해, 못해, 못해………..”
하며 속으로 되뇌고 있었다.
내 머릿속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면서 구와 신이 왕장창 싸우는 와중에도 겉으로의 나는 첫날 촬영을 무사히 마쳤고, 두 번째 날은 아르마니 사일로에 가서 매그넘 멤버들의 포토 전시회를 보았고 (아래 왼쪽 사진) 위층으로 올라가 멋진 의상들 사진을 죄다 찍었고 (아래 오른쪽 사진) 저녁에는 라이카 밀란의 제너럴 매니저가 주최하는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만드는 쿠킹클래스에 쓰일 식재료를 사러 몇몇 팀멤버들과 시장을 보러 갔고, 저녁 만찬에 참석했었고, 내 호텔 방으로 돌아와 그날 찍은 사진들을 리뷰하고 에디팅 하고 잤다.
다행히 내가 처음 인물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를 기억해 내었다.
“오케이, 적어도 내 나름의 목적은 있으니 그걸 추구해 보자.”
“그노무 초점을 어떻게 맞추고 안 맞추고는 천천히 생각해 보고…”
우리의 모델이었던 J에게 내가 생각하던 인물의 내면을 찍으려고 한껏 포즈를 잡게 했었다. 그때는 이 사진들이 좋아 보였는데 지금은 그저 그렇다. 왜 그럴까? 이 친구의 연기가 이젠 내 눈에 들어오는 것 같아서일까? 확실한 건 모델은 괜찮았는데 사진사가 별로였다.
역시, 비슷비슷한 결과.
역시, 어느 그저 그런 패션 메거진에서 본 것 같은 사진들…
“어쩌나? 어쩌지?”
“그냥 한번 초점 맞추지 말고 함 찍어봐?”
“오… 그건 못하겠어.“
“그건 내가 한 번도 해본 방법이 아니야.”
“그래도 저질러?”
“몰라, 몰라…”
그때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감도 못 잡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당시의 나는 잘 알고 있다 생각하던 사진에 대한 모든 것을 첨부터 지워? 말아? 투쟁 중이었다.
그 와중에도 촬영은 계속되었고, 나는 새롭게 다가오는 밀란의 거리, 화려한 상점들, 옷구경, 길거리 사진 찍기 등등을 겉으로는 즐기는 듯 보였지만 속에서는 미칠 것 같은 답답함으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당시, 아침저녁으로 걸어서 출근하던 밀란의 거리에서 일하시던 분들. 우리의 사진기를 보고는 일부러 불러서 자기들을 찍어달라고 하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이 양반들이 프로모델보다 나아 보였다. 밀란은 특이한 도시였다.)
기어 인포:
라이카 Summilux M 35mm ASPH F1.4 + LeicaM10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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