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혼자 잘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하다못해 무인도에 떨어져 혼자 살던 로빈슨크루소도 우여곡절 끝에 28년 만에 부모형제 친구가 있던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인간은 그 정도로 사회적 동물이고 여러 명이 모이면 혼자서는 상상도 못 하는 큰일을 해낸다. 우리 같은 작은 스케일의 패션 사진 촬영도 프로 같이 보이게 찍으려면 여러 선수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마크와 같이했던 나의 첫 번째 촬영은 남들이 차려준 풍성한 밥상에 내 숟가락 하나를 달랑 얹은듯한 기분이 들게 했다. 이런 걸 팀워크가 좋았다고 하면 내가 사기 친 기분이 들 정도로…
(왼쪽: 밀란의 유명한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 그녀에게 쟈켓이 멋지다 했더니 대뜸 몇 년도 피에르카르뎅의 무슨 시즌 작품이라는 말이 돌아왔다. 어떤 옷이 언제 누구에게서 나왔는지 패션의 역사에 대해 줄줄 꿰고 있었다. 이 친구가 뉴욕에 왔을 때도 같이 일을 해 봤는데 밀란에서부터 엄청나게 많은 옷을 싸 짊어지고 왔었다. 우연히 소호에서 예술책을 파는 서점에 같이 들어갔는데 옷에 관한 책만 보았다. 역시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 맞았다. 그런 사람이라 할 수 있는 일 같았다.
오른쪽: 헤어 디자이너 A, 처음 이틀간 우리와 일하였는데 상냥하고 이쁘고. 일할 때는 역시 프로였다.)
밀란에서 합류했던 인원이 크리에이티브디렉터, 의상담당, 의상보조, 메이크업담당, 헤어담당, 헤어보조와 매일 바뀌던 모델 (총 다섯 명, 하루에 한 명, 마지막 날 두 명)을 합쳐 여섯 명 정도, 미국에서 건너간 사람들 셋, 여기에 학생 다섯과 배우자 한 명까지 약 15명이 매일 함께 다니며 촬영을 했다. 촬영 기간은 도합 4일. 이중 사흘은 야외에서 진행되었고 하루만 실내에서 헤어와 메이크업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중간에 이틀은 아르마니/Silos에서 Magnum photo 전시와 아르마니 뮤지엄을 구경했고, 거대한 캠퍼스인 프라다파운데이션에도 갔었고 10 Corso Como에서 전시도 보고 책도 구경하고 쇼핑도 했었다.
아주 꽉 찬 스케줄의 일주일이었는데 아침 여섯 시 기상, 일곱 시 반에 J와 호텔 카페에서 조식, 여덟 시 반 도보로 호텔 출발, 9시에 두오모 근처에서 그룹을 만나 하루를 시작했다. 어찌 보면 9-5의 직장인들 같이 밀란에서 일주일을 살았다. 하루 걸러 그룹 디너가 스케줄에 잡혀있었는데 그리하면 호텔에 열 시쯤 돌아와 밤늦게까지 그날 찍은 사진들을 에디팅 하다 선잠을 자고 담날 여섯 시에 일어나 다시 전날을 반복하게 되어있었다. 지금은 모든 워크숍이 비슷한 패턴으로 돌아가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하지만 당시는 처음이라 정신 똑바로 차리고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던 것 같다. 남편이 같이 안 와서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각 모델들의 면면은, 첫날은 스웨덴에서 온 A, 둘째 날은 브라질에서 온 J, 세 번째 날은 루마니아 출신인 B, 넷째 날은 미국출신의 흑인인 R과 타이완 출신의 L이었다. 생각해 보면 중동과 인도만 제외한 거의 모든 인종을 아우렀는데 이유는 피부색과 인종에 따라 찍는 방법이 약간씩 다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과연, 한 사람 한 사람이 골격도 다 달랐고 머리색도 달랐고 머리의 텍스처까지도 달랐다. 마크 얘기는 이렇게 여러 나라 사람들을 찍어봐야 실무에서 어떤 모델이 나오더라도 당황하지 않는다 하였다.
크루들 역시 대단한 재주꾼들이라 길거리에서 즉석으로 만드는 헤어스타일이나 메이크업등이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였다. 특히 이들은 모델 촬영 중 간간이 끼어들어 헤어도 고쳐주었고 화장도 매만져 주었다. 이런 걸 영어로 Spoil 된다고 하나? 그들이 이런 자잘한 구석까지 섬세하게 도움을 준 덕분에 처음이었지만 나의 사진들이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혼자서 촬영을 진행해 보고야 깨닫게 되었다.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사진을 크게 프린트해 보면 모든 것이 다 보인다. 못 보고 지나친 장면은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온다.
(젤 위 왼쪽의 사진에 보면 헤어디자이너인 C가 드라이어를 들고 길거리에서 웃는 모습이 있다. 나는 그가 바로 위 왼쪽 사진처럼 R의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쳐 놓은 걸 보고 뭘 하려고 저러나 궁금했었는데 오른쪽 사진 속의 완성된 머리를 보고 입이 딱 벌어졌었다. 역시나 선수구나!)
팀을 꾸릴 여력이 없는 나는 그 후로 혼자서 모델 사진을 찍으러 나갈 때면 당시 배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아래와 같은 체크리스트를 들여다보곤 한다.
1. 장소 스카우팅: 촬영 전 혼자 나가서 원하는 장소를 살펴본다. 사람이 많은지, 조용한 곳인지, 시간에 따라 빛이 어떻게 바뀌는지 등등을 고려하여 선정한 후 샘플 사진을 찍어둔다.
2. 의상 준비: 촬영 전 모델에게 내가 원하는 느낌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서로가 가능한 선에서 의상과 프롭 등을 사전에 조율해 본다. 여의치 않을 경우가 생길 수 있으므로 나 역시 여벌로 몇 벌을 준비해 간다. 한번 촬영 시 의상을 3-4개 정도로 바꿔가며 이미지의 변화를 꾀한다.
3. 액세서리 준비: 모자, 머플러나 스카프등도 좋은 프롭이 될 수 있다.
4. 머리빗, 머리 묶는 고무줄, 핀, 마스킹테이프, 가위 등은 꼭 준비해 간다. 여기에 옷핀도 여러 개 가져가면 커튼 등의 뒷 배경을 조절할 수도 있고 혹시 의상에 문제가 생겼을 경우 땜빵이 될 수도 있다.
5. 가능하면 조수를 대동한다: 한 사람이 더 있음으로 나의 촬영이 엄청 수월해지고 장소의 분위기나 처음 만났을 때 서로 간의 긴장감이 낮아진다. 가끔 아들이 촬영을 도와주는데 조수로서만이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6. 진행은 차분하게: 계획하지 않고 갑자기 촬영을 할 경우라도 위의 사항을 머릿속으로 찬찬히 복기하며 가능한 한 서두르지 않으려 한다. 모델과는 정중하게 협업하는 자세로 프로페셔널하게 촬영에 임한다.
7. 자세히 봐야 한다: 비유파인더에 들어온 이미지를 찬찬히 살핀 후에 본 촬영에 들어간다. 또한 모델과 오버랩이 되는 뒷 배경이 마음에 드는지 확인해야 한다.
8. 오픈 마인드: 제일 중요한 것.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유연하게 풀어나가는 창조적인 마인드가 무척 중요하다.
나의 경우 너무 피곤했는데도 무리해서 파일을 꺼내보다가 다 날려버린 적이 있었다. 모로코에서 여행 중에 벌어진 일인데 정확히 자정에 일어났던 상황이었다. 저녁 내내 촬영한 호텔 사장님의 사진들을 아차 하는 사이에 죄다 지워버리고 나서 문득, “진짜로 머릿속이 하얘지는 기분이 맞는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 후론 피곤할 땐 함부로 파일을 열거나, 저장하거나, 지우거나,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비슷한 경우는 생긴다. 그러니 한번 찍어놓은 사진들은 웬만하면 없애지 마시라. 눈을 감았거나 이미지가 안 보인다거나, 심하게 흔들렸을 경우라도 파일 정리는 여행 갔다 온 후에 하시라 당부하고 싶다.
마지막날 워크숍을 마무리하면서 마크와 우리는 세이지가 준비한 “Franca: Chaos and Creation” 이란 다큐멘터리 필름을 시청했다. 이탈리안 보그의 전설적인 편집장이었던 프랑카 소자니(Franca `Sozzani)의 일생을 그녀의 아들이며 유명한 필름디렉터인 프란체스코 카로지니 (Francesco Carrozzini)가 만든 것으로 아들의 눈으로 본 죽음을 앞둔 어머니를 위한 작품이었는데 나는 너무 감동을 먹었는지 조금 울컥했었다고 기억한다. (패션에 관심 있는 분들은 x튜브에 나와 있으니 찾아보시라. 당찬 여인이 거기에 있다.)
프랑카는 1988년부터 66세에 폐암으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28년간이나 이태리보그의 편집장으로 있었다. 그녀가 지휘했던 가장 유명한 기사는 2010년 BP가 오일 시추선의 폭발로 인해 멕시코만을 오염시킨 사건을 패션 사진으로 쇼킹하게 패러디해 보여주었던 “Water & Oil”이다. 이 기사로 그녀는 패션계의 교황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나 역시 당시 그 기사를 어느 디자인 잡지에서 마주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녀는 패션계의 만연했던 모델 선정의 인종차별에 관한 기사 외에도 가정폭력, 마약남용, 성형수술등의 사회 이슈 등을 이색적으로 패션잡지에서 다루었다. 유엔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유엔의 친선대사를 시작으로 UN 세계식량계획의 기아에 반대하는 기구에서 대사로 일하기도 하였다. 또한 패션 산업을 이용한 UN 프로그램인 Fashion 4 Development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냥 옷만 파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크 역시 당시 그녀와 같이 일을 하던 젊은 사진가들 중 하나였는데 필름이 다 끝나고 참가자인 우리를 향해 “소자니는 우리가 찍는 모든 사진들의 퀄리티는 팀워크가 어떠냐에 달렸다고 했어.“ 라 밝혔다.
과연 이태리보그를 28년간이나 성공적으로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그녀만의 노하우가 그 한마디 말에 담겨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