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가 얼마전 회사에서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제품을 한 가지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아빠 회사에서 생산되는 기계가 사막 한복판의 모래바람에도 견딜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이란다. 아빠는 단순한 아이디어만 가지고 있었는데, AI 가 제품의 디테일한 모양, 크기, 재료, 색상까지 모든 것을 구현해 주었단다. 예전 같으면 엔지니어 5명이 몇주동안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결과물인데, 이걸 불과 반나절만에 완성할 수 있었다. 아빠는 기쁘기보다는 무서웠어. 인간의 힘을 초월한 AI의 거대한 능력 앞에서 '인간은 이제 무얼 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것은 서막에 불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너희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은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의 모든 것이 인공지능화 된 초현실 사회가 될 것이 확실해 보여. 이것이 아빠가 오늘 너희에게 글을 남기기로 결심하게 된 이유란다.
아들아, 사람이 할 일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세상이 이미 왔다. 예전 아빠가 신입 사원이던 시절에는 선배 엔지니어들이 미국에 보낼 이메일을 하나 쓰기 위해 빈 공책에 초안을 작성하고, 사전을 찾아가며 어휘와 표현을 점검하고, 영어를 가장 잘했던 영문과 출신 부장님께 검토를 받았단다. 지금은 AI에 간단한 맥락만 제공하면, 불과 30초도 안되어 서울대 영문과 교수님이 쓴 것 같이 정확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완벽한 이메일이 만들어지니, 너희들에겐 아빠의 신입사원 시절 모습이 굉장히 우스꽝스럽게 보일 테지. 그렇게 힘들게 작성한 소중한 영어 이메일 하나가 누군가에겐 대단한 기술이었고, 누군가에겐 밥벌이 였으며, 그 기술은 후배들에게 전파되어 세상은 그렇게 아주 조금씩 발전했단다.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너무도 빨리 변하고 있단다.
이렇게 급격한 변화의 시대에, 아빠는 너희에게 물려줄만한 큰 재산이 있는 '부자 아빠'도 아니고, 명문대를 나와 훌륭한 지식과 인맥을 전해 줄 '엘리트 아빠'도 아니야. 아빠는 가난한 노동자의 집에서 태어나 일을 하며 야간 대학을 나왔어. 큰 욕심 안 부리고, 현재에 감사하며, 성실하게 그저 하루하루 살아온 평범한 기술 영업 사원이란다. 이런 평범한 아빠가 그동안 우리 식구들이 먹고살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지금도 그 혜택을 보고 있으며, 앞으로도 아빠의 든든한 노후의 취미 생활이 될 궁극의 비밀을 알려 주려고 해. 그건 바로, '영어 공부' 란다. '에이, 그게 무슨 비밀이야?'라고 무시할 수도 있겠지만 잘 들어봐.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 '영어를 공부하는 사람이 점점 더 줄어들기' 때문 이야.
한국에서 영어는 언제나 소수들만이 해낼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었단다. 60년 전, 50년 전 과거는 물론, 아빠가 살아온 2000년대만 해도 영어는 특별한 능력의 상징이었어. 그런데 그거 아니? 2025년 현재까지도 영어를 잘 쓰는 사람은 늘 부족했고, 지금도 부족하며, 미래에도 진귀한 능력치가 될 거란 거. 요즘은 영어 조기교육 때문에 아이들의 영어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필요한 영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은 여전히 귀하고 그들은 몸값이 높단다. 왜 이렇게 실무에서 영어를 하는 사람은 귀할까? 그 이유는, '영어만 잘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 이야. 지난 수십 년간 영어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과 교육의 부작용으로 학부모들은 영어만 잘하는 아이들을 양산했단다. 영어만 잘하면 모든 게 완벽해질 거란 부모들의 망상 때문에 '영어만 잘하는 바보' 아이들이 세상에 너무도 많아졌어. 영어는 우리에게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이자 수단이어야지, 절대적인 목적이 되어선 안돼. 기계를 설계하는 사람이 영어를 활용하여 일을 하고, 전기 엔지니어가 해외에서 영어로 일을 할 수 있어야 돼. 영어 선생님들은 영어만 잘하는게 아니야. 영어를 통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잘하는 거지. 아빠에겐 누군가가 가진 기술이나 지식, 일이 우선이고, 영어는 사람의 일을 도와주는 도구여야 한다는 입장이야. 아빠는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만큼 수준급의 영어실력은 없지만,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거든. 이것이 고작 토익 800 점을 넘기는 영어 실력으로 아빠가 감히 영어에 관한 글을 쓰는 이유야. 영상 매체와 가상현실, 유비쿼터스가 우리 삶을 둘러 싸면서 앞으로 사람들의 문해력과 어휘력, 즉 리터러시 (Literacy) 능력은 자꾸 더 떨어질거고, 영어를 직접 듣고 읽고 쓸줄 아는 사람은 더욱 귀해질 거야.
영어를 공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 '영어 공부는 그 자체로 즐겁기' 때문이야.
영어가 즐겁다고 하면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알아, 영어 공부가 고통스러운 과정이라는 것. 그런데 즐거움과 고통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 아니? 근육을 만드는 사람에게 운동기구를 드는 한 개 한 개가 모두 고통이고, 달리기를 하는 사람에게 마지막 한 발 한 발이 고통이야. 하지만 사람은 어떤 목표로 하는 곳에 가기까지의 과정 안에서 결국 그걸 다 해냈을때 쾌감과 희열을 느끼지. 사람은 참 신기해. 고통스럽고 남들은 하길 꺼리는 일을 하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니 말이야. 영어도 똑같아. 단어 하나, 문장 하나, 토익시험 10점, 무엇하나 공짜로 주어지는 게 없어. 한국에서 태어난 사람이 영어를 공부 한다는 것? 언덕에서 굴러 내려오는 바위를 거꾸로 올리는 일처럼 어려운 일이야. 모든 게 다 노력이 들어가고 시간 투자가 들어가. 그러나 그 고통 속에서 다른 것으로는 절대 느낄 수 없는 재미와 보람과 기쁨을 만끽할 수 있어. 이건 돈으로도 구입할 수 없고, AI에게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같은 질문을 던져도 알 수 없는 인생의 진리 란다. 아빠가 한 평생 영어공부를 통해 얻은 기쁨과 즐거움을 너희들도 똑같이 누리게 되길 바라는 마음이야.
너희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어떠한 세상이 펼쳐질까?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살아갈 그 세상이 참 궁금하다. 언젠가는(혹은 조만간 일수도?) 온 세상 사람들은 100% 완벽한 실시간 통번역기를 장착하여 수십 개국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이 올거라고 봐. 그 때가 되면 사람대 사람이 눈을 마주치고, 미소를 주고 받으며, 뜨거운 마음을 전달하려고 나누는 그런 대화가 아닌, 통역 보조장치를 이용한 그저 '정보의 교환 행위'를 하고 있겠지. 아빠의 이런 글 들도 그저 오래된 유물처럼 이 지구상의 서버 저 구석 어딘가에 아주 작은 몇 Byte 단위의 정보로 영원히 저장되어 사라지겠지. 그 시기가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런날이 온다 하더라도 너희들 만큼은 외국어를 공부하는 고통도 느껴보고, 중세 시대에 써진 멋진 글들을 영어로 읽어낼 수 있는 기쁨도 누려보고, 다른 사람은 잘 할 수 없는 능력치를 뽐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소수의 인간으로 남길 바란다. 그것이 아빠가 AI 시대에 너희에게 하고 싶은 말이란다. 너희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자녀이고, 언제까지나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을 잃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아들아,
영어 공부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