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는 사람들은 '말이 곧 글이고, 글이 곧 말이다.'라는 말을 자주 쓴다. 말을 해서 어색하지 않으면 글로 써도 읽기 좋고, 읽어서 좋은 말은 말로 해도 명문장이 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우리의 모국어인 한글에서는 그럭저럭 이해가 간다. 그러나 영어일 경우는 어떠할까?
읽기의 기초가 자리 잡히면 그다음으로 해야 할 일은 듣기이다. 영어를 듣는 방법에는 외국영화를 자막 없이 보기, 미국 뉴스를 듣기, 오디오북 듣기 등 여러 종류의 학습자료가 있다. 어떤 자료든 관계는 없지만 내가 추천하는 가장 좋은 영어 학습 듣기 자료는 '본인이 읽어서 이해가 가능한' 자료이다.
읽어서 이해가 가능한 책과 음원을 먼저 준비하자. 초등학생 들이 듣는 학습 음원도 좋고, 토익 리스닝 대본도 좋은 공부 교재이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작업은 '싱크로나이징(Synchronizing)'이다. 싱크는 글과 소리가 하나의 정보로 모일 수 있도록 해주는 과정이다. 소리를 틀어놓고 눈으로는 글을 따라가 보자. 본인이 읽어서 이해가 가는 수준의 자료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마치 노래방 화면에 있는 노래가사가 노래의 진행에 따라 흘러가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단어 하나 하나에 얽매이지 말고 귀와 눈을 음원의 속도에 맞추어 글과 귀를 노출한다. 억지로 해석하려 하거나 눈과 귀가 어긋나면 다시 시작하자. 다양한 성우의 다양한 음원을 이런식으로 자주 듣자.
이 학습은 두 가지 효과가 있다. 첫째는 영어 이해의 속도를 끌어올려준다. 분명히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읽기 자료였는데, 귀에 들리는 소리를 따라 눈으로는 글을 읽다 보면 눈이 소리를 못 따라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읽기 자료의 속도가 생각보다 너무 빠르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그동안 읽기를 통해 학습하면서 뇌가 느린 이해의 속도에만 길들여져 있던 것이다. 이제는 뇌의 이해 속도를 소리에 맞추어야 한다. 문장이 잘 이해되지 않더라도 음원의 속도에 맞추어 눈과 귀를 집중시켜야 한다.
두 번째는 학습자가 읽어왔던 영어 글의 정확한 발음과 강세, 호흡, 리듬감을 뇌에 입혀주는 것이다. 싱크 작업을 계속 연습하다가 소리 자료를 빼고 읽기 자료만 읽었을 때 귀에서 성우가 글을 빠르게 읽어주는 효과가 난다면 학습이 제대로 된 것이다. 읽었을 때 음성이 맴돌고, 음성을 들었을 때 글이 떠오르면서 문장 해석이 되는 것이 이 공부의 목적이다. 이해의 영역에서 그 둘이 만나면 좋은 영어 학습이 된다.
'눈은 귀보다 빠르다.' 사람이 아무리 빠르게 말해도 말하는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눈으로 읽는 속도는 말하는 속도보다 빠르다. 심지어 읽기가 숙련이 되면, 한 글자씩 읽지 않아도 문장 전체를 훑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우리 뇌가 정보를 인식한다. 속독의 원리이다. 눈으로 읽는 속도가 점차 빨라지면 이해의 속도 또한 빨라지게 된다. 영어 뉴스청취 또한 같은 원리이다. 뉴스가 잘 안들릴때 대본을 봐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이해에 속도와 노력이 드는 만큼, 뇌에서 정보를 처리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청취는 '영어 이해의 속도'이다.
부단히 읽고 또 읽자. 싱크작업이 잘 된 영어 학습자는 읽기 훈련을 통해 듣기 능력을 더욱 키울 수 있다. 빠른 속도로 문장을 해석하는 능력이 좋아지면, 같은 수준의 문장을 귀로 들었을 때 말이 너무 느려서 유치하다는 경험을 해 본 사람이 있을 것이다. 듣기의 속도는 결국 이해의 속도와 관련이 있다. 시간당 정보 이해의 속도가 빨라지면 그만큼의 시간에 들리는 듣기의 능력 또한 함께 발전한다. 이것이 내가 여러 영어 학습자들이 쓴 영어학습의 원리를 읽고 깨달은 점이다.
해외 출장을 다니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영어 사용자와 만났었다. 말하는 사람마다 발음, 강세, 표현, 음의 높낮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맥락 또한 모두 다르기 때문에 수준 있는 대화로 갈수록 영어를 제대로 듣고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내에서 우리가 만나는 영국인과, 해외에서 만나는 영국인은 다른 사람이다. 한국 내에서 만나는 영국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잘 알아듣는 영어를 알고 있다. 그러나 해외에서 만나는 영국인은 자신이 편한 원어민 영어를 쓴다.
영어는 공부하면 할수록 듣기가 가장 어려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