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작가는 모 방송에서 작가는 '말을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의 정의에 따르면 작가는 여러 나라의, 여러 문화의,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직업적인 어휘와 문장들을 수집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다. 목수나 요리사처럼, 소설가에겐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모두 글의 재료이고 문법은 레시피이다.
나는 영어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많은 영어단어와 영어숙어, 영어문장을 재료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요리사는 하고 싶은 요리가 있을 때 필요한 재료와 양념을 정해진 위치에서 빠르게 찾아 꺼내어 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어로 작문을 해야 하는 사람은 쓰고 싶은 문장이 있을 때 가지고 있는 단어와 숙어, 문장을 조합하여 말을 잘 만들어 내야 한다.
영어 쓰기라 하여 부담을 갖는 분들이 있다. 우리는 스티븐 킹이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급의 영어 명작을 만들어 내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 분들이라면 이 글이 별로 필요 없을 것이다.) 우리 같은 보통의 사람들이 필요한 수준의 영작은 업무에서, 혹은 학업에서 필요한 정도의 영어 문장 만들기일 것이다. 이를테면 리포트를 작성한다는지, 공문을 작성한다든지, 이메일을 쓰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어 글쓰기다.
이런 종류의 글쓰기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논리적인 형태의 글이라는 점이다. 논문에서 작성자의 감정을 격하게 표현해야 하거나, 외국계 기업의 공문에서 철학적인 은유를 이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영어로 글을 쓸 때 첫 문장부터 막막한 경우가 있다. 이는 영어 실력의 문제가 아닌 경우가 많다. 논리적인 글은 일정한 패턴이 있다. 전체적인 글의 구조를 정하고 가지고 있는 재료(단어와 문장)를 활용해서 퍼즐을 맞추듯 글을 쓰면 된다.
영어는 이처럼 우리가 필요로 하는 논리적인 표현에 적합한 언어이다. 원어민이 보기에 어색할 수 있겠지만 문장의 구조를 블록단위로 배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많은 쓰기 연습이 필요하다. 쓰기 연습 이전에 많은 읽기와 듣기 연습이 필요한 것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인풋이 많으면 아웃풋이 좋아질 확률이 높아진다. 좋은 글을 많이 읽고, 많이 들어보는 것은 훌륭한 글을 쓰는 전제조건이다.
쓰기를 연습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을 베껴 쓰는 필사다. 필사라고 하는 이 작업은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활용하는 기술이다. 필사는 전체 문장을 아무런 생각 없이 줄줄이 베끼는 게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문장(위에서 설명한 말 재료)을 발견했을 때 문장 단위로 여러 번 써 보는 방법을 의미한다. 외우지는 못해도 구나 절을 여러 번 써 보는 것은 좋은 글재료가 된다.
남은 것은 글의 내용이다. 영어로 글을 잘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글의 내용이 결국 중요하다.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좋은 내용을 써야 하는 것이지, 좋은 영어를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한글로 써도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잘 모르겠는 글들이 많다. 영어 단어가 어색하고 문법적 오류를 범했다고 해도 전체 글의 구조가 잘 잡혀있고 내용 전달력이 있는 글은 좋은 글이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후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