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과 가족사랑 나라사랑 수신제가치국평천하
우리 집엔 연례행사가 있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속 마음 털어놓으며 엉엉 울기'. 정해진 날은 없다. 정해진 역할이나 임무도 없다. 셋이 모인 어느 순간, 열 오르는 대화 속에서 참다 참다 누군가 눈물이 터져버린다면 그때부터 행사 시작. 그것은 누군가의 가시 돋친 말로 시작될 수도 있고, 걱정이라는 포장으로 기대를 밀어붙이는 말들이 답답해 터져 나오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1년에 각자 한 번은 셋 앞에서 눈물을 터뜨려야 한다'는 것.
행사 참여 인원에 대해 설명을 해보자. 두 남매를 혼자 키우기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친 '어머니'가 있다. 시쳇말로 하자면 그녀는 매우 'T형 인간'이다. 약 20년간의 회사 생활을 겪어낸 그녀에게 위로는 자신의 영역이 아니다. 누군가의 고민을 접수한다면 거기서 '문제'를 해석하고 잠깐의 계산을 통해 '해결 방안'을 도출한다. 12년 전 실적에 목매는 회사 생활을 끝내고, 현재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마음에 여유가 생겼으나 T인 근간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아이들을 대한 방식은 고스란히 1녀 1남이 자라는 토양이 되었다.
그러나 콩 심었는데 팥 나는 경우 여기서 생겼는데, 집안 K-장녀, '딸'의 경우다. 여리고 이타적인 심성을 타고난 '딸'은 공감 능력이 뛰어났다. 눈치가 빠르고 정이 많은 아이. 게다가 가족 구성원이 뜬금없이 하나 감소하면서 그녀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동생까지 챙겨야 했다. 특히 저능아로 의심됐던 동생이었기에 그 업무는 거의 당연시됐다. 그렇게 자신도 돌봄을 받았어야 할 때 충분한 돌봄을 받지 못했고, 그마저도 동생에게 양보해야만 했던 때가 잦았다. 성인이 되어 연금처럼 못 받은 인정과 돌봄을 보상받는다면 좋았겠으나 이는 후술 할 상황 덕에 그나마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콩 심어서 콩 난 '아들'은 '어머니'의 T 토양을 쭈웁 흡수했다. 다만 '어머니'나 '딸'과 다르게 된 이유는 온실에서 자라났다는 점일 것이다. 저능아일 가능성과 '아버지' 부재에 대한 우려 덕분에 엄청난 보호를 받고 자랐다. 다만 저능아일 가능성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의외로 높은 학업 성취도를 확인하며 해결되었는데 우려가 컸던 만큼 우려의 빈자리를 기대가 채우기 시작했다. 때문에 그는 집안의 관심과 투자를 받았고, 이내 무너졌다. 무너진 경험이 두려워 우울증과 공황장애만 애착 인형처럼 안고 산다. 같이 세워진 콧대는 무너지지 않아 문제를 해결하려는 성향과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근거 없는 희망은 남았다.
궂은일 많았으나 모두 해결할 수 있었고, 해결해 냈던 '어머니', 이해와 돌봄이 부족했던 '딸', 부족함 없이 자라 실패에 큰 겁을 먹은 '아들'. 같은 지붕 아래 너무 다른 셋은 매번 대화에서 조금씩 버려지거나 비껴가는 감정들이 있었고, 그것들을 갈무리하기 위해 자연스레 연례행사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 연례행사를 통해 각자를 이해해 보려 노력하고, 며칠간 조심하지만 이건 '연례행사'다. 내년이면 다시 도루묵이다. 가족 구성원만큼 진행되니 1년에 3번은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진행되는 행사에 제시되는 안건은 보통 작년 안건과 동일하다. 우리는 그래도 매년 울고, 토하듯 말하고, 그리고 웃어낸다.
아기자기한 폭스바겐 미니버스와 함께 달리는 이 영화의 포스터는 이 영화가 주고자 하는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 나 또한 이 귀여운 포스터에 이끌려 DVD를 대여해서 봤는데, 당시 그 결정은 아주 특별한 것이었다. 어릴 적, 주에 한 번 비디오 대여점에서 보고 싶은 영화 한 두 개씩, 만화책도 몇 권씩 빌려 주말의 여가를 가졌는데, DVD 대여 가격은 VHS 테이프 두 개 가격이었기 때문에 주에 한 번 있는 자신의 영화 시간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만 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가 비디오테이프 두 개만큼의 만족을 주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로부터 시간은 흘러 우리 가족의 눈물 파티가 연례행사로 자리 잡게 되고, 거의 20년은 흘러서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된다는 소식에 괜히 반가운 마음에 찾아서 보았다. 그리고 난 연례행사도 아닌데 울어버렸다.
영화는 꽤 단순한 로드 무비다. 가족들의 활극과도 같은 영화이기에 첫 시퀀스에서 그들의 캐릭터를 설명한다. 각기 다른 여섯 명의 가족이 집안 막내 '올리브'의 아동 미인 대회 출전을 위해 약 1200km를 운전해서 주를 횡단하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영화의 큰 소재로 사용되는 '성공'과 '패배'를 위해 가족들은 각자 '패배자'로 설정되어 있다. 맹목적으로 '성공'을 향해 달리지만 가정에는 가장 큰 위험요소인 동기부여 강사 아버지 리처드, '성공'과 '패배' 그 자체에 달관한 마약 중독자인 할아버지 에드윈, 워킹맘이자 가족의 평화를 지키고 싶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어머니 셰릴. 니체 신봉자 아웃사이더 청소년이자 파일럿이 되기 위해 침묵의 맹세를 지키고 있는 아들 드웨인, 1인자 철학 교수였으나 대학원생과의 사랑 실패 후 경쟁 교수에게 1인자 지위에 연인까지 빼앗겨 낙심 후 자살 시도마저 실패한 게이 삼촌 프랭크. 그리고 막내딸 올리브만이 이러한 패배자 설정으로부터 자유롭다. 이 '패배자' 설정은 영화의 주제에 직접적으로 닿지 않는다.
영화 '미스 리틀 선샤인'은 모순적인 모습으로 구성되어 모순에 의지해 기능한다. 그리고 그 모순적인 모습은 이 영화 속 세상 또한 구성한다.
성공학 강사이면서 파산 위기에 놓인 아버지가 만약 자기의 성공학 강의대로 성공했다면 이 영화는 시작도 못 했다. 그냥 비행기 값 내고 캘리포니아로 갔으면 끝이기 때문. 어쨌든 아버지의 사업 자금으로 가정 예산이 거의 다 쓰인 탓에 구식 폭스바겐 미니버스를 타고 앨버커키에서 캘리포니아 리돈도 해변까지 1200km를 달리기로 결정한다.
중반까지 영화는 '가족'과 '리처드'를 대립해서 보여준다. 성과가 급한 리처드의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는 가족들에게도 강요되고 가족들은 이러한 리처드의 모습에 치를 떤다. 성공 강요는 순수한 올리브에게까지 닿는데, 가족들은 올리브에게만은 '성공'에 대한 집착이 영향을 주지 않도록 경계한다. 정작 리처드는 성공으로 점철된 어른의 시선을 강요하며 아이스크림도 먹지 못 하게 하면서 '패배'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성性적인 이야기, 마약 이야기는 올리브가 듣지 못하도록 화를 낸다.
영화는 여행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아 버스를 고장 낸다. 버스의 클러치가 고장 나 기어를 변속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밀면서 차량 시동을 걸고 2단까지 변속한 후에야 가족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택하는데, 이건 고전적인 가치, 즉 가정의 소중함을 뜻하는 폭스바겐 구식 미니버스가 모든 가족이 힘들여 굴리지 않으면 기능할 수 없음을 뜻한다. 하다 못해 막내딸 올리브까지 버스를 굴린다는 것이 포인트.
영화는 중반 이후 캐릭터들의 '패배'를 확정 지으며 급물살을 탄다. 리처드의 사업은 실패로 확정되고, 할아버지는 헤로인 과다 투여로 사망한다. 당장 오늘 올리브의 리틀 미스 선샤인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데 할아버지의 시신을 병원에 그대로 둘 수도 없고, 시신을 가져가는 것도 허가가 필요하다고 거절되니 가족은 시신을 훔쳐 달아나기로 결정한다. 병원에서 올리브가 궁금해가져 온 시력 검사 팸플릿으로 오빠 드웨인의 색맹 사실까지 알게 되며 비로소 올리브와 어머니 셰릴을 제외하고 모두 패배를 경험한다.
영화의 말미에 드디어 할아버지의 시신을 포함해 모든 가족이 대회장에 당도해 리틀 미스 선샤인에 참가한다. 하지만 이곳 뭔가 이상하다. 아동 미인 대회에 참가한 아이들은 아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라 마치 어른의 모습을 따라한 듯 하다. 가족들도 점차 이상함을 느낀다. 이 모습이 이 대회에서 말하는 ‘미인’이라면 우리의 올리브는 그렇지 않다. 올리브가 느낄 패배의 감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가족들은 이곳에서 나가자고 한다. 하지만 그런 어른의 결정을 올리브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지켜보기로 한다.
대망의 올리브 무대. 그러나 할아버지가 코칭해 준 올리브의 미인 대회용 장기자랑이 스트립 댄스였다는 것이 밝혀지고, 추후 캘리포니아에서 열릴 모든 미인 대회에 출전 금지 당하면서 올리브마저 사전적 패배를 경험한다.
자신의 패배 인정하기(사업 실패-리처드), 욕구에 잠식되어 패배하기(마약 남용-에드윈), 패배와 마주하며 자신의 위치 확인하기(전연인과의 재회-프랭크), 노력과 무관한 패배(색맹으로 인한 자격 미달-드웨인), 열심히 했으나 사전적 패배(미인 대회 탈락-올리브)까지 패배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여전히 영화 내에서 패배를 묘사하지 않은 인물이 있는데 그것은 어머니 셰릴이다. 셰릴은 현재의 가정을 지키려 한다. 2주 내내 닭튀김만 먹더라도 저녁을 차리고, 두 번째 남편인 리처드, 전남편과의 아이 드웨인, 그리고 리처드와의 아이 올리브, 자신의 동생 프랭크, 리처드의 아버지 에드윈. 관계로만 설명하더라도 너무 다양하게 퍼진 이 가족을 하나로 모으고자 부단히도 노력한다. 모두가 패배할 때 그들을 보듬는 역할을 해내고자 하는 셰릴이 유일하게 이 영화에서 패배하는 모습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또 하나의 가슴 찡한 포인트이다.
그 모든 모순과 고난의 여정 이후 무엇이라도 달라졌을까? 아니. 단 한 개도 해결된 것은 없다. 할아버지 에드윈의 빈자리를 이제야 실감할 것이고, 가계 상황은 여전히 파산 직전이며, 삼촌 프랭크는 여전히 자살 고위험자다. 가족을 혐오하면서도 단 하나의 꿈을 잃지 않았던 드웨인은 이제 다른 목표를 찾아야 할 것이다. 하다못해 구식 미니버스까지 여전히 고장 난 채다. 그래도 돌아가는 길 내내 모든 가족이 미니 버스를 밀어가며 운행할 것이다.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모순적인 세상에서 가족들만이 온전히 의지할 수 있는 품이며, 가족이 그 기능을 하기 위해 모두 모여 발을 굴려야 한다는 사실에 달라지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