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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May 24. 2023

골목길을 지키는 사람들

골목길 연작에세이

다시, 서울이다. 


익산에서 용산으로 가는 장항선 첫 기차를 탔다. 이른 시간임에도 이미 열차 안은 만석이었다. 목적지에 가기 위해 서둘러 나온 이들 대부분이 열차가 출발한 뒤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숙일 듯 말 듯, 넘어갈 듯 안 할 듯 머리를 끄덕였고, 어디선가는 코 고는 소리도 들려왔다. 그들의 머리를 따라 미진했던 밤잠의 무게가 난데없이 몰려왔다. 다른 이들과 박자를 맞추며 나의 고개도 조금씩 오른쪽으로 내려갔다. 퍼뜩 정신을 차리니 창밖으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간 빌딩 숲이 보였다. 영등포역에서 내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신림역에서 버스를 갈아탔다. 복잡한 도심을 지나 우림시장에 하차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면 오밀조밀한 난곡동 골목길 주택가로 들어선다. 


대로변 아리따움 사이 길로 들어서니 빵하우스와 싱싱생선, 찌개집과 우측 월드마트를 사이에 두고 난곡로 26길이 시작된다. 100미터 정도 걸었을까. 주황색 조끼를 입은 두 명의 아저씨와 자신의 몸집보다 큰 조끼를 입은 남자 어린아이가 보인다. 조끼 뒤에는 ‘신림감리교회’라 적혀 있다. 교회에서 쓰레기를 줍는 봉사를 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따라온 듯한 소년은 집게를 들고 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를 부지런히 담았다.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둬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한 할아버지도 집 앞을 청소하고 있었다. 골목길 곳곳에 쓰레기를 줍고 청소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일이다. 시골의 환경미화원을 만난 적이 있었다. 환경미화원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시작된다. 3시 30분까지 출근해 각자 구역을 돌며 정해진 자리에 쓰레기를 모아둔다. 4시 20분이 되면 압축차 두 대에 4명이 한 조가 되어 쓰레기를 수거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한겨울 눈이 많이 내리는 날이면 뒤에 서서 타던 사람이 내리다가 넘어지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쓰레기봉투를 압축차에 넣으면서 음식물쓰레기를 분리해 버리지 않은 쓰레기가 압축에 의해 오물이 터져 악취가 발생하기도 한다. 또한 좁은 골목길에 주차해 놓은 차들 때문에 운전도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다쳐서도 안 되고, 사고가 나서도 안 된다는 것이 환경미화원들의 설명이었다. 지금이야 압축차가 있지만 예전에는 리어카를 끌고 다니며 일했었다. 그때보단 그래도 지금 상황이 낫다고 희미하게 웃기도 했다.  


새벽일이 마무리되면 아침 식사를 한 뒤 잠시 휴식을 가진다. 오후 1시부터는 읍내를 걸어 다니며 쓰레기를 줍는다. 주머니에 쓰레기봉투 5~6장을 넣고 집게를 들고 나선다. 반나절을 그렇게 다니다 보면 집게를 쥔 손이 뻐근해지고 허리와 다리가 아프다. 어떤 이들은 우리가 쓰레기를 버려야 당신들이 할 일이 있는 거 아니냐고 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상황이 생겨도 환경미화원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명감 하나로 일한다는 환경미화원들이었다. 


도시의 경우는 조금 상황이 다를 수도 있을 것이다. 시골보다는 담당 인력도 더 많이 배치되니 노동의 집중 포화도를 분산할 수도 있을 테지만, 또 그만큼 사람이 많다 보니 배출되는 쓰레기 양도 시골보다 많을 것이기에 환경미화원들의 노동 강도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정작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쓰레기를 쓸어 담는 이들은 환경미화원이 아닌 골목길 사람들이었다. 무궁화공원에 놓여 있는 쓰레받기와 빗자루로 오물을 쓸어 담는 할머니, 버려진 재활용품을 정리해 밀차에 싣는 할아버지, 전봇대에 쌓여 있는 쓰레기봉투를 넘어지지 않게 정리하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도 있었다.   

 

골목길을 따라 좀 더 올라가니 꽃피움그리고가게 간판이 보였다. 각종 허브를 심어놓은 모종들 앞에 고양이 입간판과 화분이 놓여 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예술교육 활동가 김진영 씨가 재료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난곡동 토박이인 김진영 씨는 익숙한 곳에 있는 것을 좋아해 관악구를 벗어난 삶을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난곡동에 살고 있는 김진영 씨는 아리따움에서 시작되는 이 골목길부터 관악산 끝자락까지 작은 구멍가게가 10곳이 넘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았고, 마당이 있는 단층 주택들이 지금보다 많았다고 한다. 난곡동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관악산 덕분에 다른 동네보다 공기가 좋다고도 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너구리가 왔네, 라며 김진영 씨가 통에서 츄루를 챙기며 일어났다. 꼬리가 짧아 ‘너구리’라 부른다는 고양이는 입양되지 못해 아직도 길을 헤매고 다닌다고 했다. 김진영 씨가 건네는 츄루 2개를 쪽쪽 빨아대는 너구리는 사람을 경계하지 않았다. 배고픔을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듯 낯선 나를 보는 너구리의 눈빛은 그저 무심하기만 했다. 자신의 볼일을 마친 너구리는 유유히 뭉툭한 꼬리를 곧추 세우며 느릿느릿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김정연 씨에게 이야기를 들어서일까, 꽃피움그리고가게를 나오니 청명한 하늘이 마치 파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했다. 그날은 미세먼지도 없었다. 마스크를 내리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추위와 더위를 오락가락하던 지난 3월과는 달리 완연한 봄 날씨가 마치 시원하고 개운한 오이냉국을 먹은 기분이 들었던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싶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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