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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ul 12. 2023

잠을 자기 위해서는 루틴이 필요하다

chapter1. 동사로서의 잠

        자다(동사:생리적인 요구에 따라 눈이 감기면서 한동안 의식 활동이 쉬는 상태가 되다)



매일 저녁 8시 30분, 휴대전화 데이터를 끄고 공유기 전원 스위치를 내린다. 세상의 모든 이야기와 소리로부터 차단된다. 암막 커튼을 친다.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머리맡 스탠드를 켠다. 책을 펼친다. 소설, 에세이, 사회과학, 인문학, 철학 무엇이든 상관없다. 종이 위 글자의 향연을 누린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눈꺼풀이 뻑뻑해지면서 글자가 두세 개로 겹쳐 보인다. 난시가 점점 심해지는 것 같다. 스탠드 전원 스위치를 내린다. 그리고 자기 위해 애쓴다. 


잠을 자기 전 나의 루틴이다. 이런 습관이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다. 문화단체에서 일할 때는 가끔은 저녁 시간도 반납해야 했다. 간혹 현장 작업이 있으면 저녁 시간은 거의 대부분 술자리로 이어졌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는 칼퇴를 하는 경우가 없었다. 가끔은 주말에도 일을 했다. 직장에서의 스트레스가 밤잠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되고는 했다. 퇴사를 하고 나니 그제야 나만의 루틴이 생겼다.  


잠을 자는 일은 하나의 행위인 동사다. 눈이 감기고 의식 활동이 정지되는 수면 상태로 들어가면 모든 신체활동이 휴면에 들어간다. 움직임이 없는 명사가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움직인다. 이불을 걷어차고, 오른쪽으로 누었다가 왼쪽으로 누웠다, 엎드렸다가 한다. 옆에 누군가 자고 있다면 옆 사람 배에 내 다리를 턱 하니 걸치게 되기도 하고, 가위에 눌리면 잡아주는 사람도 없는데 허공에 두 팔을 휘젓기도 한다. 잠자는 중에 일어나는 이 모든 행위는 일어나 그 흔적을 확인하게 되면서 머쓱해진다.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였다. 대학생이 되기 전까지 합법적으로 외박이 가능한 날이었다. 경주로 간 수학여행에서 단짝 친구와 한 방을 사용했다. 친구는 외동딸이었다. 칠흑 같은 단발머리에 외쌍꺼풀 진 동그란 눈이 왠지 가련한 분위를 만들어냈고, 얇은 진분홍빛 입술은 매사 다부진 성격임을 드러냈다. 까르르 깔깔 웃어대던 나와는 달리 큰소리로 웃는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저 그 작고 얇은 입술이 슬며시 올라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위선적이거나 천방지축으로 행동하는 일 따위는 전혀 하지 않을 것 같은 친구였다. 역시나 친구는 잠을 자면서도 이리저리 뒤척이지 않았다. 두 손을 배에 올린 채 잠이 들었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그 자세 그대로였다. 그 자세로 잠이 들어 그대로 깬다는 것은 자면서도 무언가를 의식한다는 일일까 의심스러웠다. 꿈을 꾸면서도 아주 정직하고 올바른 꿈만 꿀 것 같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락이 두절되었지만 그 친구가 아직도 그런 잠을 자는지 궁금해졌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는 김미월, 김이설, 백은선, 안미옥, 이근화, 조혜은 작가가 쓴 에세이다. 엄마이며 작가인 그들은 육아 과정에서 글을 쓰지 못할지도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럼에도 글을 쓰고자 하는 자신의 속내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육아에 대한, 그리고 자식에 대한 애정만큼은 그 어느 누구보다는 진심인 그들을 담담하게 읽었다. 비혼이고 육아 경험이 없는 나지만 그래도 조카나 작업 동료의 육아를 어느 정도 겪어본 적이 있다. 


특히 작은 조카는 태어나 100일까지 언니네에서 먹고 자며 돌봄 노동을 했다. 먹고 자고 싸는 것이 주 일과인 아기는 밤만 되면 잠을 자지 못했다. 산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언니를 대신해 조카를 둘러업고 밖으로 나왔다. 어화둥둥을 하거나 자장가를 부르며 조카를 다독여 잠을 재웠다. 들어와 자리에 눕히는 순간 조카는 잠에서 깼다.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형부가 잠을 설칠까 싶어 다시 둘러매고 집 밖으로 나왔다. 다시 어화둥둥을 한다. 눕히면 다시 깰까 싶어 포대기를 한 채 같이 누워 잠이 들기도 했다. 백 일이 가까워지면서 조카의 잠투정은 아주 서서히 줄어들었다. 만약 돌까지 계속되었다면 언니와 나는 잠을 못 자 병원에 입원했을지도 몰랐다. 육아를 백 번 공감하지는 못해도 열 번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고나 할까. 


인천에서 문화단체와 일하면서 엄마들과 활동한 적이 있다. 단체 대표는 지역 내 엄마들과 생활학교를 운영했고, 그곳에서 나는 유일하게 미혼이었다. 단체 대표 부부 역시 두 아이를 양육하는 중이었다. 그중 단체 대표 부부의 둘째 아이와 한 엄마의 둘째 아이는 10개월 동갑이었다. 모임이 있을 때면 당연히 아이를 동반했다. 회의를 하면서 아이가 가만히 있을 리 만무하다. 잠투정을 하거나 젖을 달라고 끙끙대기도 한다. 젖은 내가 주지 못하지만 잠을 재우는 일만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아이를 안고 사무실 밖으로 나가 역시 어화둥둥을 하거나 자장가를 부르며 잠을 재운다. 대개는 10분에서 20분 정도가 걸린다. 잠이 든 아이를 안고 사무실로 들어오면 엄마들 대부분은 소리 내지 않고 물개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뭐 대단한 노하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아이를 안으면서 나와 아이의 심장 박동이 포개졌을 때 오는 안온함을 즐길 뿐이다.  


그 아이들은 이제 중학생이 되었고 조카는 서른 살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아이를 품에 안을 일은 없어졌다. 엄마가 아님에도, 육아를 하지 않음에도 글을 쓰지 못한다는 불안감은 도처에 널려 있다. 뭐 대단한 글을 쓰는 것도 아니면서 첫 문장이 안 써져서, 읽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이 정도 글 밖에 안 되나 하는 열패감, 자괴감, 열등감 등에 심란하다. 그저 하얀 화면에 검은색 커서가 깜빡거리는 것을 맥없이 쳐다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날이 수두룩이다. 


그런 날에는 잠을 자면서도 글을 쓴다. 나의 무의식에서 완성되지 못한 문장이 마침표를 찍기 위해 발악하며 뇌리를 어성거리는 것이다. 잠에서 깼을 때 운이 좋아 그 문장을 기억하면 좋은데 거의 대부분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는 마법을 경험한다. 다시 제로 상태가 된다. 그렇다고 다시 잠에 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미 깨어난 나의 뇌는 비워낸 쓰레기통이 된 상태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하루 최소 8시간은 자려고 한다. 가끔 죽으면 평생 잘 텐데 뭔 잠을 그렇게 자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잠을 잔다는 일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나의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가장 최소한의 행위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무언가를 하고 싶지는 않다. 비록 내일이 오늘이더라도 잠을 자고 나면 몸과 마음이 정화되어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의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잠을 푹 자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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