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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도 Oct 24. 2021

단 하루의 가을

익숙해져 버린

가을은 홀로 있는 걸 좋아하는 이들을 위한 계절이다. 허전한 옆구리에 코트를 꽁꽁 싸매도 그 누구도 이상하게 보는 일 없고, 따뜻한 차로 몸과 마음을 데워도 당연하게 여겨지는 계절이니까. 그렇다고 홀로인 게 너무 외롭지만은 않게 가끔 닿는 햇살도 기분 좋고, 머리 위에 떨어지는 색색의 잎들도 단조롭지 않아 좋고.


모든 게 과하지 않은, 적절한 깊이에 익숙해져가는, 가을이 좋다.


가을이 좋아하는, 집에서만 입는 맨투맨에  감겨 있다. 손목을 걷어올려야 움직이기 편할 텐데도 걷어올리지 않고 손목을 꼭꼭 감췄다. 손을 크게 움직이지  일만 하기에 딱히 문제   없다. 눈이 감길  그냥 눈을 감는다. 눈을 감고도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익숙하다. 익숙함으로만 가득한 하루이기에, 눈을 뜨지 않고도  살아간다.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도 눈을 감고 있다. 검정 다음에 흰색, 그다음엔 검정이 온다는  안다. 도는 미와 솔과도  어울리지만  플랫과  플랫과도  어울린다는  안다.  방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많다.


익숙한 것들과 함께하는 것에 익숙해졌다. 처음 느끼는 것들에도 의연하게 대처할  있는 , 그런  섬조차도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한 해가 익숙해져 가는 단 하루의 가을이다. 새로운 네 자리 숫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다이어리에 잘못 날을 써넣는 일은 없는 가을.


내가 좋아하는 가을은,

아침으로 전날 밤 쪄둔 고구마를 먹는.

햇빛에 좋아하는 소설을 읽는.

크리스마스 생각에 들떠 재즈 캐럴을 듣는.

종아리에 스치는 트렌치코트를 즐기는.

가죽부츠와 빵모자와 핸드 워머를 입을 수 있는!



이게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다.


좋아하는, 단 하루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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