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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Nov 22. 2023

자식은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인가 (중)



** 전편 자식은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인가 (상)편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https://brunch.co.kr/@naaaong/19




내가 첫째에게 젖을 처음 물렸던 장면은 앞으로 오랜 세월이 지나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60시간 진통 끝에 유도분만을 실패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했다. 회복이 되지 않은 수술부위를 부여잡고 수유실로 걸어가서 아기를 처음 직접 안아보았다. 수유쿠션 위에서 꼬물거리던 조그만 아기는 배가 무척 고팠는지 설레는 표정으로 엄마 젖을 덥석 물었다. 그리고 생각만큼 젖이 나오지 않아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


초산이고 수술 직후여서 당연히 젖이 돌지 않았을 터. 의도치 않게 내 아이와 첫 만남부터 배신감과 불신을 안겨주고 있는 그 상황이 나는 당황스러웠다. 내 바로 옆에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같은 날 셋째를 출산한 산모가 있었다. 그분도 수술 직후였음에도 온화하고 여유 있는 표정으로 수유를 마치고 나에게 말씀하셨다.


힘들죠? 물릴수록 잘 돌아요. 힘내세요.


그때 나에게는 자연분만을 실패했다는 죄책감이 있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유도분만 실패는 내 잘못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모유수유라도 성공해야겠다는 오기가 들었나 보다. 병원에서 나와 조리원에서도 산후조리를 포기하다시피 했다. 잠을 안 자고 새벽에도 수유콜을 악착같이 받아서 젖을 물렸다. 산후조리원 선생님들이 제발 쉬라고 했을 정도니.


젖양은 잘 늘지 않았다. 우량하게 태어나서 뱃골을 크게 타고난 첫째는 늘 슬피 울어댔다. 게다가 모유 맛을 본 첫째는 분유를 한사코 안 먹겠다고 거부했다. (첫째는 미각이 예민해서 지금도 우리 집 제일의 미식가다.) 그렇게 나는 피로감에 오기가 사그라들어도 어쩔 수 없이 모유수유를 해야겠다.



모유수유가 산모와 아기에게 이점이 많다고 하지만, 결국 엄마의 상황에 따라 선택을 해야 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모유수유를 최소 생후 24개월까지 권장한다. 나는 정작 1년이나 먹인 사람도 주변에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처럼 젖이 너무 안 돌거나, 누군가는 일찍 복직해야 하거나, 아니면 다른 건강상의 이유로 모유수유 대신에 분유수유를 선택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장 결정적인건 분유를 먹어도 아기는

씩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준다. 그러니 각자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일 뿐이다.


엄마도 아기도 모두 다르게 타고났으니. 육아에는 참고거리만 있을 뿐 정해진 답은 없다. 그런데 우리는 아기 때부터 모두 육아를 겪으며 자라와서 그럴까? 육아의 정답을 참 쉽게 이야기한다. 육아라는 이 오묘한 영역은 애들 둘 키운 나도 솔직히 잘 모르겠던데. 누군가 각 성별별로 최소 두 번 이상, 그러니까 자식 너 다섯 정도는 키워봤다면 또 모를까. 그런데 지금 초저출산인 우리 사회에 그 정도 낳아본 사람은 천연기념물이지 않은가?


출산하고 50일이 되니 출산으로 불어난 몸무게는 자연스럽게 그전보다 더 빠져버렸다. 이쯤 되니 나혜석이 백 년 전쯤에 쓴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자식은 모체를 좀먹는 악마라고. 그때는 어찌 들으면 섬찟한 그 문장에 격하게 공감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애증의 모유수유는 언제부터였는지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아기가 가장 사랑스러운 순간은 젖을 배부르게 먹고 잠들 때라는 걸 아기를 아기를 키워봤다면 매우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몸은 비록 힘들지만 매일마다 그 작은 아기의 모습을 보며, 그 작은 행복에 중독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상하게도 첫째 돌잔치를 하고 복직 준비를 하며 모유수유를 끝내기로 마음먹기가 쉽지 않았다. 이 아이가 이렇게 좋아하는 걸 못주게 되는 아쉬움 때문에, 수유를 끝낸 기념으로 약 2년 만에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맥주를 마시면서도 나는 그만 눈물을 쏟았다.

그때는 정말로 그게 내 인생의 마지막 수유일 줄 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이는 정말로 딱 하나만 낳아서 잘 키울 계획이었으니. 모체를 뜯어먹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악마는 나에게 하나면 족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나는 3년 뒤에 둘째를 낳았다. 그래서 친정 엄마는 내가 둘째를 가졌다고 했을 때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셨다. 아무튼 육아가 거기서 거기일 것 같았는데, 두 번째 모유수유는 첫째와 아주 다른 경험이었다. 이래서 육아는 오묘하다. 역시 말이 길어져 다음 연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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