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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아옹 Nov 24. 2023

자식은 엄마의 살점을 떼어가는 악마인가 (하)

** 전편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naaaong/20



출산에 있어 망각의 동물이 되어가는 과정은 겪어보니 다음과 같다. 물론 이 경험은 시기와 상황, 아이 발달에 있어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돌 전후로 스스로 걷고 다니며 아기는 적극적으로 세상을 탐색한다. 그 세상에는 엄마도 포함되어 있다. 내가 내 책에도 썼지만 육아에 음침한 정서가 공존하는 이유는 아이와 말이 통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물론 아기 때 옹알이를 하지만 확실히 돌 즈음 몸이 자유로워지면서 아기의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의지는 강해진다. 그 의지가 강렬하다 못해 까딱 눈 잠깐 돌린 사이에 사고를 빵빵 친다.


그런데 그 행동들이 비록 사고뭉치 더라도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아이가 엄마인 나를 바라보는 눈 속의 그 호기심 어린 눈동자를 쳐다보고 있으면 빠져들 수밖에.



그렇게 몸과 육아에 점점 적응되고 마음이 편해진다. 그러다가 그런 생각까지 드는 것이다. 이렇게 이쁜 게 하나 더 있다는 상상의 나래를 현실을 접어두고 마구 펼친다. 시간이 갈수록 내가 얼마나 지독하게 출산을 했는지, 수유를 했는지도 점점 다 까먹게 된다. 이런 것도 조물주의 신비인지. 아무튼 경험해 보니 참으로 괴이한 작용이다.


둘째 제왕절개 수술을 하고 마취가 풀리자마자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설레었다. 첫째 때는 처음인지라 두려움 가득이었지만 둘째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아닌가? 그러다 보아 마치 금단증상을 오래 견디다가 해금이 되는 느낌이었다. 모유수유에 대한 갈증이었다. 어서 젖을 물려보고 싶어서 두근 댈 지경이었다.


그리고 젖을 물리고 만족스럽게 먹는 아기의 표정을 보고 퍽 흐뭇했다. 첫째는 왜 진작에 이렇게 먹일 수 없었을까? 첫째 육아는 처음이라 조바심이 앞선다. 그래서 늘 첫째한테 미안하다. 물론 둘째도 둘째라서 챙겨주지 못한 게 많아 미안하고.



첫째 때의 갖은 고생과는 달리 둘째의 모유수유는 아주 수월했다. 첫째 때는 모유수유에 좋지 않다는 음식을 철저히 가려먹었는데 (아이가 안먹을까봐 매운 음식도 하나도 먹지 않았다) 둘째 때는 그런 스트레스 없이 잘 먹었다. 그래서 체중은 첫째 때만큼 잘 줄어들지 않았지만. 온갖 수를 쓰지 않아도 젖은 잘 돌았고 둘째는 워낙 먹성이 좋은 아이였다. 나는 그렇게 퍽 능숙한 엄마가 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 모유수유는 돌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되었다. 지병이 다시 도져 약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임신부터 2년 가까이 약을 안 먹고 버텼는데 몸이 한계에 다 달랐다. 수유를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끝내야 하는 아쉬움은 과장 안 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둘째는 유난히 엄마 젖에 심하게 집착하는 아이였다. 첫째는 아기 때부터 쿨한 성격이어서 수유를 한 번에 쉽게 끊었지만, 둘째는 못 먹게 하니 몇 날 며칠을 포기하지 않고 서럽게 울었다. 끈질기게 엄마 젖을 찾으며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도 같이 눈물과 콧물을 빼며 훌쩍거렸다.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는 말을 계속 되뇌었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모유수유는 정말로 끝나버렸다. 그리고 앞전에 말한 내 할머니 생각이 났다. 학교까지 가서 책보자기를 매고 오는 막내아들을 보며 딱 오늘까지만 주자고 매일마다 마음먹으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 눈에는 장성한 아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갓난아기도 아닌 그 막내아들의 얼굴을 쳐다보면 서 어찌 모질게 외면할 수 있었을까? 난 할머니도 어쩌면 그 최후의 수유를 하시고 나처럼 눈가가 애써 촉촉해지는걸 감추셨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순수하게 궁금하다. 먼 훗날 내 딸도 엄마가 될까? 딸이 출산을 하고 모유수유를 선택한다면, 내가 경험했던 것과 똑같은 기분을 느낄까? 내 딸에게 꼭 그러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나는 아이들에게 부모로서 결혼생활이 할만하다고 알려줄 수 있고, 또 부모가 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여기게끔 나 스스로가 살아가고 싶지만, 나중에 아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더하도 행복하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래도 혹시나 경험하게 된다면, 너무 아기 때라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어쩌면 무의식 깊숙이 남겨져 있을 서로 간에 애틋하고 뭉클했던 감정들을 꺼내서 기억해 줄까? 과연 할머니 때부터의, 우리 엄마도, 나도 느꼈을 그 감정이 내 딸까지 이어서 전해질까?


혹시나 내 딸이 그걸 감사하게도 기억해 준다면, 내가 엄마로서 너를 사랑했었다는 증거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두 깜찍한 악마의 존재만으로도 엄마와 아빠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그냥 아이들이 그걸 알아주기만 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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