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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망고젤리 Apr 01. 2024

He was a true original

도쿄일기 - 여행 2일 차, 신주쿠의 선술집에서

일기를 쓴 장소 : ぞんぶん スタンド (존분스탄도, 신주쿠 선술집)

날짜 / 시간 : 3월 19일 저녁 7시

일기를 쓰며 먹은 모둠회와 하이볼

도쿄다!

사실 2일 차다.

어제는 새벽부터 일어나 출국하고 도쿄 지하철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어 2일 차가 돼서야 일기를 쓴다. 


이곳은 생각보다 엄청 춥다.

며칠 전 라이브 영상에서 봤을 땐 다들 얇은 자켓이나 코트를 입길래 따뜻한 봄날씨인 줄 알고 얇은 자켓만 챙겼는데, 도쿄에 도착한 날 이후로 내내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걸었다. 그 라이브에서 일본인들이 단체로 날 속인 건 아닐까.. 내가 라이브 볼 줄 알고 일부러 그때만 잠깐 얇은 옷 입은 거 아니야..?! (배신감)

  

마침 주술회전 팝업스토어가 있다는 긴지초의 르코 백화점에서 아무거나 괜찮은 겉옷 있으면 사야겠다 싶었다. 긴지초가 숙소에서 안 멀어 다행이었다.


숙소 동네는 굉장히 조용하다. 근처 지하철역으로 가네가후치역이 있는 일본 전통 가옥에 2박 동안 머물 것이다.

이 동네는 사람도 없고 가게도 없다. 그저 편의점이 전부다.

처음엔 재미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오늘 도쿄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나니 밤에 머무는 숙소라도 차분해 집에서 쉬는 기분이 들어 좋다.

이 동네 학교에는 야구부가 있나 보다. 볼이 빨간 야구부 애들이 편의점에서 각자 뭐 먹을지 자기들끼리 회의하는 모습이 귀여웠다.


아, 파르코 주술회전 팝업은 대실망이었다.

팝업이라면 응당 전시 같은 것도 있고 규모가 꽤 클 거라 생각했는데 그저 엄청 조그만 가게에서 굿즈만 파는 거였다.

그래도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굿즈들을 몇 개 샀다:) 그래, 이거면 됐다!

그 옆 한국의 아트박스 같은 곳인 LOFT에선 귀여운 스티커를 여러 장 샀다.

굿즈도 사고, 스티커도 샀는데 문제는 마음에 드는 겉옷이 없다는 거였다. 유니클로라면 무난한 게 있겠지 싶어 유니클로가 어딨는지 찾아봤는데 무슨 편의점 마냥 여기저기 많았다.


다행히 유니클로에선 마음에 드는 크림색 경량 패딩을 발견했다.

가격은 6만 원이었다. 아, 혹시 모르니 경랑 패딩 챙기라는 엄마 말을 왜 까먹었을까..!! 옷장에 걸려있는 경량 패딩들이 생각났다. 집에 없는 것도 아니라 이렇게 사는 게 너무 아까웠지만 이대로라면 추워서 맘껏 못 돌아다닐 게 더 아쉬울 테니 바로 샀다.

지나고 보니 이 패딩은 완전 대만족 소비였다! 덕분에 오늘은 따뜻하게 잘 다녔다.


도쿄에 와서는 노래도 별로 안 듣고, 영상은 아예 안 봤다.

어디든 이동할 때 노래를 안 들으면 허전했는데, 여기선 역에서 길을 안 잃으려고 안내방송에 집중하느라 노래는 들을 수도 없고 듣고 싶단 생각이 안 들었다.

영상은 볼 시간이나 정신도 없을뿐더러 이번 여행에서는 디지털 디톡스를 해보려고 일부러 안 보고 있다.

고작 이틀뿐이긴 하지만 미디어의 자극에서 멀어지니 현재와 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는 기분이다.

그리고 문득 thanks for coming의 플레이리스트 제목이 떠올랐다.

https://www.youtube.com/watch?v=cjBnZB_DJ4c&t=758 

"내게 없는 것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플레이리스트에 담긴 노래들도 좋지만, 무엇보다 이 플리의 제목과 주인장이 쓴 글이 지금 내 생각과 참 닮았다.

에어팟을 청소하다가 고장이 나서 속상했지만, 잠시 후에는 그냥 음악 없이 지내는 것도 꽤 괜찮은 결정인 것 같았다. 버스나 전철에서는 좀 지루할 것 같기도 했지만, 의외로 사람들을 관찰하거나 창밖 풍경을 즐기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았다. 그러면서 자주 지나가는 길도 새롭게 느껴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변화가 참 좋은 것 같다. 음악이 내가 행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을 닫고 귀를 열었던 날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귀를 닫고 눈을 열어보려 한다. @thanksforcoming._


여기 스탠딩바에 있는지 1시간 째다.

다리가 아파서 의자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앉으면 분명 졸 것 같다.

맥주도 마시고 싶은데 마시면 분명 취하겠지?

이제 슬슬 숙소로 돌아갈 때가 된 것 같다. 여기서 숙소까지는 1시간 걸린다. 지하철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도 나름 재밌다. 안내방송에서 들리는 일본어를 이해해 보려고 집중해서 들어본다거나, 퇴근하는 직장인들을 구경하다 보면 1시간은 뚝딱이다. 귀를 닫고 눈을 열어봐야지.


여기도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로 꽉 찼다. 오길 잘했다. 조명이 밝으니 이렇게 글 끄적이기도 좋고, 서있으니 덜 졸 수 있고 말이다.


아참! 오늘 갔던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이 참 좋았다. 책 읽기 좋은 카페에 갈 수 있음 참 좋겠다 생각했는데, 거기 1층에 있는 카페가 딱 좋았다. 적당한 백색 소음과 맛있는 커피 :) 어차피 옆에서 일본인들이 수다 떨어도 못 알아들으니 나한텐 백색소음이었다 ㅋㅋ


도서관에서는 하루키 작품의 일러스트를 담당해 온 작가의 전시회도 같이 하고 있어서 구경하고 왔다.

이름은 Mizumaru Anzai

 하루키와 30년을 함께 협업했다고 한다.

그의 간결하고 깔끔한 선이 하루키의 정체성을 적어도 30%는 구성하지 않았을까. 나는 하루키가 직접 그린 건 줄 알았으니 말이다.


Anzai에 대한 하루키의 소개 중에 인상 깊은 문장

About Mizumaru Anzai : Like his deceptively simple illustrations, he was a true original.


True original이라는 표현이 참 맘에 든다. 나도 true original 인 사람일 수 있기를

8시에는 귀가해야지 생각했는데 벌써 7시 55분이다.

슬슬 출발해야겠다.



오늘 핸드폰에 중간중간 쓴 메모 :

먹고 싶은 걸 더 더 맛있게 먹기 위해서 배가 고파도 중간에 군것질을 하지 않았다.
그러길 잘했다.
방금 소바를 먹고 나왔는데, 너무 기분 좋게 배부르고 푸근하다.


첫 2박 에어비앤비 숙소 KISOBA
도쿄 타워가 보이는 동네 길목



무라카미 하루키 도서관


하루키 도서관의 Mizumaru Anzai 작품 전시회
와세다대학의 교내 게시판, 규칙적으로 빼곡히 붙은 포스터 위 과감하게 쓰인 FREE PALESTINE


오타니와 세븐일레븐
긴지초 파르코에서 귀여운 스티커와 주술회전 팝업스토어
저녁으로 먹은 청어 온소바
오늘의 일기를 쓴 ぞんぶん スタン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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