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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냐 May 02. 2021

내가 아닌 네가 좋아하는 것

우리는 '나'가 아니니까


 교보문고 핫트랙스에 음반을 사러 가다가 뜬금없이 아동도 쓸 수 있다는 매니큐어가 눈에 들어왔다. 안 그래도 뚜껑에 붙어있는 오밀조밀한 장식들이 눈길을 끌었는데 할인 중이라는 판매원의 목소리에 신들린 듯 매대에 섰다. 원래는 개당 만 얼마인데 지금 행사해서 네 개에 만 원이라고. 사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조카가 그렇게 갖고 싶다던 매니큐어. 꼭 사주기로 손가락까지 걸고 약속했던 매니큐어. 좀처럼 파는 곳을 찾을 수가 없다는 핑계로 미루고 미뤄왔던 아동용 코스메틱 제품이 거기에 있었다.




 나는 온갖 '여성스러운' 것과는 거리가 있는 집안에서 컸다. 엄마는 치장에 관심이 없는 분이셨다. 다섯 살 무렵 내가 시장 바닥에서 갖고 싶다고 난리를 치며 데굴데굴 굴렀던, 가짜 진주가 달린 빨간색 에나멜 구두를 내게 사준 게 엄마의 최선이었다. 엄마는 어쩐지 '공주님'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커서 왜였냐고 물으니 그냥 싫으셨단다.) 디즈니 동화책은 동물이 등장하는 '아리스토캣'이나 '예쁜이와 멋쟁이', 애니메이션은 '라이언 킹'이나 '다이노소어', '앤트', '토이스토리' 같은 것들을 주로 보았다. '리틀 네모'나 '욤욤 공주와 도둑'처럼 흔하지 않은 작품은 카피본을 구해서라도 보여주셨으면서 그 흔한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같은 동화에는 되도록 접근을 금지시켰다. 엄마는 주체적이지 못한 여성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정식으로 이들 책을 읽어 본 적이 없다. 유명한 얘기들이니 줄거리는 알지만. (잠자는 숲 속의 공주보다 말레피센트를 더 먼저 보고 이야기를 역추적했다.) 그러니 어린 시절 내가 제일 좋아했던 동화는 안데르센의 '눈의 여왕'이었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도비마루 용의 안내인'이었다.


 자연스레 크면서 외모나 옷 치장에 관심이 없었다. 중학교 땐 워낙 교칙이 사나웠고 고등학교 땐 편히 입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을 안 썼으니까. 고등학교 3학년이 다 되도록 드라이는 '머리에서 물기를 제거한다'는 개념인 줄로만 알아서 '머리가 뻗쳤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몰랐다. 화장을 대학 가면서 처음으로 해봤다.  난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입학하고 2학년이 되어서 처음으로 친구 따라 페미니즘 교양 수업을 들었다. 사실은 그다지 내키지 않았다. 뭔가 페미니즘 수업은 계몽이 덜 된 애들이나 듣는 거 아니냐는 교만이 부끄럽게도 내 안에 있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개념녀'였던 것이다. 천만 다행히 첫 시간 과제를 제출한 이후로 교수님께 탈탈 털리고 깨진 뒤 정신을 차렸다. (빨리 정신 차려서 다행이라고 지금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내 에세이 일부를 낭독하시며 교수님은 다른 여성 이야기가 아니라 나 자신, 여성으로서의 내 얘기를 써 보라고 했다. 알듯 말 듯 했지만 교수님의 조언을 따랐다. 글을 쓰면서, 한 주 한 주가 지나면서 무언가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건 내 안의 소수자성을 새로이 발견하는 경험이었다. 그 수업의 글쓰기는 공감에 기반해 타인과의 연대로 가는 교량이었다.




 그 수업에서 그 유명한 우에노 치즈코의 '여성혐오를 혐오한다'를 읽었다. 여성의 여성혐오 파트를 읽으면서 그제야 알게 됐다. 나의 교만-흑역사는 사실 여성인 나 자신을 향한 사회의 혐오에 기반하고 있었음을. 그러니까 공주님들을 미워할 게 아니었다. 왜 공주님 이야기를 여자아이들만 좋아하게 만드는 사회가 당연시되는지로 질문 자체를 바꿔야 했다. 남자아이도 분홍색을, 무지개색을, 반짝이는 드레스를 좋아할 수 있다. 여자아이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아이들은 그냥 화려한 것에 이끌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회학적, 인류학적 해석은 직관으로 하는 게 아니다. 젠더에 대한 고찰이 좀 더 필요했다. (게으름 부리며 관련 공부를 놓고 있었음을 반성한다. 진작 했으면 육아할 때 도움이 되는 건데.)



 

 그 뒤로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로 했다. 아이에게서 '여성스러운' 물건을 빼앗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을 가지고 어떻게 놀 것인지에 좀 더 집중해 보기로 한 것이다. 처음엔 그러고도 욕심을 못 버려서 반짝이 구두와 까만색 스니커즈를 함께 사주었다. 당연히 반짝이 구두의 완승이었다. 스니커즈는 몇 번 신지도 못하고 작아졌다. 나는 결국 좀 더 나를 내려놓고 조카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했다. 또래 친구들이 다 갖고 노는 장난감, 알고 있는 콘텐츠로부터, 그것도 타의에 의해 빗껴나기란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기대 반 우려 반으로 100피스짜리 디즈니 공주 퍼즐을 사줘 봤다. 흥미롭게도 조카는 공주님들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퍼즐 맞추는 걸 즐거워했다. 공주님들 이름을 내게 말해주긴 했지만 퍼즐 위치와 색을 좀 더 쉽게 맞추기 위해서라고 보는 게 더 옳았다.


 조카와 '캐치, 티니핑'을 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마법 부리기 전 준비 자세로 허리를 뒤로 꺾는 로미가 기괴해 보였는데(미안하다 로미야) 보다 보니 조카도 나도 로미공주 말고 티니핑 이름하고 주제가를 외우는 데 정신이 없었다. 티니핑을 캐치해야(!) 하니까. 그리고 티니핑 캐릭터 디자인도 재밌었다. 특히 바로핑이...


 그렇게 해서 숙려 끝에 내게는 끝판왕인 아동용 코스메틱 '매니큐어'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그나마 내가 이 제품을 냉큼 구입하게 된 데에는 이게 아동용 매니큐어라 칠한 다음 쉽게 벗겨낼 수 있다는 것 외에도, 성인들이 휴대폰 케이스로 데코덴 하듯 풀 바르고 그 위에 조그만 피규어들을 붙일 수 있다는 점이 크게 한몫했다. 화장품이라고 하면 화장품이겠지만 반제품 공작놀이 같은 느낌이 강하지 않은가.


 매니큐어를 사오자마자 예상대로 조카는 신나게 본드를 짜고 빼곡하게 피규어를 붙여 나갔다. 어른 눈에는 좀 못나게 완성되긴 했어도 제법 맘에 들어하는 걸 보니 나도 괜히 기분이 좋았다. 매니큐어 칠하는 건 그다음이었다. 이때 조카가 매니큐어를 바르는 모습에서 어렸을 때 나도 한 번씩 하던 손톱에 사인펜 칠하기를 봤다면, 그게 '예뻐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장난감 다 갖고 놀았는데 더 놀고는 싶고 심심하니 색칠이나 하자는 거였다면, 조카와는 그저 세대와 도구가 바뀐 것뿐이라면. 이것도 내가 너무 나이브한 걸까.


 '여성스러운' 물건을 갖고 놀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 물건이 가진 의미를 바꾸어 나가는 건 어떠냐고 한다면. 뭇매를 맞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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