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소리 내어 언제부터 읽을 줄 알았는지 모른다.
글씨도 언제부터 썼는지도 모른다.
어릴 때 기억이란 하도 울어대서 얼굴과 눈이 빨간 사진 속의 내 모습이다.
오죽하면 울 때 입 모양이 드라마 <토지>에 나오는 임이네를 닯았다고 하기까지 했다.
그런 나에게 책을 읽어주었더니 5살부터인가 혼자 글을 읽더라는 엄마의 말만 들었을 뿐이다.
일기 쓰기를 시작으로 공책이든 스케치북이든 이것저것 써 내렸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가지고 있는 초등학교 일기장 더미는 소중한 추억인데 가끔 읽다 보면 귀엽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글씨는 명조체로 썼다는 것도 좀 놀랍다.
사춘기 여자 아이가 되어 가면서 예쁜 다이어리를 사고 스티커를 사 모으는 재미에 빠졌다.
일정을 기록하고 스티커로 꾸미고 친구들과 문구점에 들르면서 소소한 기쁨이 있었다.
각종 펜들은 어찌나 종류도 다양한지 색깔별로 사기도 했다.
어찌 보면 지금의 나보다 그때의 내가 훨씬 더 계획적으로 살았는지도 모르겠다.
친구에게 쓰는 쪽찌, 편지, 우정 일기를 썼다.
수업 시간에 주고받는 쪽지의 스릴은 퍽퍽한 찹쌀 속의 팥만큼의 달콤함이 있었다.
우정 일기를 노트 한가득 써가며 우리의 친함을 과시하기도 했다.
우정 일기까지는 아니어도 한 친구와 편지를 나누기도 했는데, 우리 반에서 꽤 공부를 잘하는 하얀 얼굴의 친구였다.
서로 고전 영화를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던지라 주로 편지지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가 편지지에 있거나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드리 헵번'이 있는 편지지였다. 지금은 그런 편지지는 많이 보이지 않아서 아쉽지만 당시엔 편지를 많이 쓰던 세대였으니 다양한 편지지가 가능했겠지. 그 아이와의 편지 내용은 지금 생각해 봐도 꽤 의미 있는 내용들이었다.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에서 남자란 존재에 대한 통찰이라든가
미래 진로에 대한 생각이라던가, 내가 참 배울게 많은 친구였다.
그때에도 난 여전히 이상주의자였고 몽상가였기에 이성적이고 생각이 깊은 그녀의 편지에 감탄을 하는 쪽이었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만난 그녀는 약대생이 되어 있었다. 이과생과 문과생 친구는 그렇게 서로의 간극을 메워주었다.
한 친구와도 오로지 영화라는 공통점으로 똘똘 뭉쳐 다녔다.
고등학생이었지만 개봉하는 영화는 다 보았고, 당시엔 비디오가 있는 세대이니 비디오로 각자의 집으로 가서 영화를 보곤 했다. 하다못해 아이돌 그룹의 영화까지 다 봤으니 영화의 끝에서 끝을 달렸다고나 할까.
영화 잡지를 보면서 필통을 꾸미고, 좋아하는 취향이 생기고, 영화학과를 가서 시나리오 작가가 되겠다는 목표도 잠시 가져봤지만 3년 내내 지켜보시던 담임 선생님의 권고로 그 꿈은 가볍게 휘발되었다.
그때를 돌아보니 꽤나 책 읽는 걸 좋아했던 아이인 것 같다. 책사랑이 글쓰기로 더 많이 이어졌으면 좋았겠지만 간간히 생각나는 건 입시 공부를 하던 와중에도 읽었던 여러 책들이다. 현각 스님의 책을 읽으면서 나도 하버드에 갈 수 있다는 망상을 했었다. 삶이란 무엇이고 죽음이란 무엇인가 많은 고민을 했던 나에게 같은 고민을 안고 불가에 귀의한 하버드 대학생 출신의 현각 스님의 책은 '젠' 사상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해외 대학에 합격한 사람들의 책도 유행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서진명 박사의 책이나 해외 대학 입성기 책들이 자기 계발서가 아니었나 싶다.
대학생이 된 후 친한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너 죽음의 끝은 무엇인지, 우리가 나중에 죽어서 어디로 갈지? 궁금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을 때, 친구는 단 한 번도 그런 궁금증은 가져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 다를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깨달은 날이었다.
사실 오늘 노트북을 펼치고 하얀 화면을 보았을 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지난 추억 여행을 하려던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글을 쓰기 힘들 때, 주변에 있는 아무 책이나 펼쳐서 어느 한 구절을 찾아 떠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적어보라는 작가의 말에 그렇게 했는데 아무 구절도 들어오지 않았다.
머릿속이 텅 빈 것 같았다.
이렇게 시작한 아무말 대잔치가 오늘의 글이 되었다.
작가의 말이 맞았다.
한 시간을 아니 오전 오후 내내 끙끙대니 어떤 글이 나왔다.
매일 무엇이라도 쓰니 이렇게 글이 된다.
글자 색깔만큼이나 담백하지만 오늘도 몇 자 썼으니 그걸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