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했다. 어쩌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저녁 메뉴에 대한 대략적인 계획을 가지고 있는 편인데, 어떤 날은 아무 생각도 안 떠오른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뭐 먹나.
하지만 인간에겐 늘 구원자가 있기 마련.
남편이 잠깐 나갔다 온다더니 두툼한 살치살을 가지고 왔다.
으하하하.
이걸로 메뉴는 해결이다.
국이나 찌개만 제대로 완비되면 있는 반찬과 어찌어찌 먹는데, 머릿속이 텅 비는 날이 있다.
너무 피곤한 저녁이면 남편에게 메뉴를 일임한다.
오늘의 요리는 짠짜라짜 짠, 살치살 라면이란다.
소고기를 라면에 넣는다는 말에 물음표를 띄웠더니 자기만 믿어보랜다.
국물이 깊어진다나.
라면도 고기 베이스가 있는 삼양라면이다.
이 남자 라면 좀 볼 줄 아네.
큰 아이가 학원에서 오기만을 기다렸다.
미리 만들어놓은 계란말이에 레몬주로 목을 적셔본다.
대파 송송 썰어놓고 기다리길 30분 정도, 큰 애가 도착하자마자 아빠표 살치살 라면이 뚝딱 완성된다.
구울 고기도 있겠지.
당연히 구워 먹을 양은 남겨두었다.
뜨끈한 라면 국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속이 든든해진다.
레몬주가 알싸하니 맛있다.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육즙을 느낀다.
역시 고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저녁 한 끼를 식구들과 야무지게 먹었다.
식구,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
함께 끼니를 먹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
정리하고 자리에 누우니 또 다른 고민이 생긴다.
내일 아침은 뭐 먹지.
앞서 말했지만 역시나 인간은, 인생의 구원자가 있다.
비엔나소시지가 냉장고 한편에 고이고이 나빌레라 누워있구나.
어제의 나, 칭찬해.
내일 아침은 소시지 채소볶음이다.
야호, 편안함 밤.
두툼한 살치살 같은 잠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