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싫다.
힘든, 삶에 말 그대로 찌든 어른이 된 순간이었을까.
돌고 도는 생활 속에서 지쳐버렸던 날이었을까.
한없이 위트와 유머를 장전하다 저 땅끝으로 꺼져버린 날이었을까.
아이들이 품 안에서 벗어난 것 같은 느낌 때문이었을까.
입춘이다.
항상 입춘이 무색하게 여봐란듯이 흰 눈이 내린다.
썰매를 끌던 시간이 지나고 다시 기억을 반추해 보니 나에게 눈이란 눈부신 그 무엇이다.
시내 번화가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겨울밤, 수많은 사람들이 발을 동동거리며 서있던 그 정류장은
딱히 눈이 와서 싫었다기보다는 온 세상을 뒤덮은 눈이 주는 신비감에 휩싸여 있었다.
버스는 막차라도 꼭 올 거라는 믿음, 그와는 아랑곳없이 집까지 걸어가던 사람들.
너무나 하얘서 지금은 눈이 시리지만 그땐 그마저도 반짝였던 겨울밤.
롱부추에 몸을 맡긴 나는 뽀드득거리는 거리에 발을 서성이며 서있었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엠피쓰리 속 노래에 몸을 맡겼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던 길, 전봇대 불빛은 마냥 밝기만 했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내딛던 발걸음은 혼자여도 좋았는데 연인과 함께했던 겨울밤은 여간해선 생각나지 않는다. 그저 혼자여도 좋았던 눈 덮인 길, 끝도 없이 들어갈 것 같은 그 눈길, 그 밤.
내가 그리운 건 그때 내리던 흰 눈의 밤일까, 눈을 싫어하지 않았던 나였을까.
6개월에 한 번씩 식기세척기를 점검해 주는 분이 집에 오는 날 아침, 눈은 어김없이 내리기 시작했고 비슷한 또래인 우리는 눈이 내리니 싫네요, 차라리 비가 내리면 좋겠다며 운을 떼었다. 마침 집에 있는 홍삼음료를 데워주며 보내는 이 아침,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그분에겐 오늘의 흰 눈이 불편하지 않기를 바랐다. 어쩌면 아무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 내리는 날이라는 무게감만 있을 뿐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는 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수고에 의해 깨끗이 정리되어 있다. 그저 열심히 달리면 될 뿐이라는 듯이.
뽀드득뽀드득 조심스레 걷는 발끝에 이제 눈이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 수십 년 내리던 그 보습을 알고 있기에 어색하지 않으므로. 전봇대 불빛에 비추던 눈 내리는 모습. 찹쌀떡 사세요 시대는 아니지만 흰 눈의 추억은 늘 전봇대와 함께 한다.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기다란 실루엣이지만 길거리 공중전화만큼이나 추억의 한자리를 차지한다.
지금은 눈을 귀찮아하는 나에게 크리스마스 즈음이나 눈 내리는 날이면 늘 듣는 노래가 있다.
https://youtu.be/E8 gmARGvPlI? si=sPONvFcCMPhS09 Ze
영상 속 눈이 내리는 장소에 가고 싶진 않지만 너무나 잘 어울리는 노래다. 즉, 나에게 눈이란 직접 만난 다기보다는 그저 추억의 한편에 있을 뿐이다. 작년처럼 똑같이 내리는 눈이어도 매년 다르다. 해마다 '너와 나'의 자리가 변화하는 것처럼. 최근 소설을 읽으면 시리도록 추운 눈을 담뿍 느꼈는데, 바로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이다. 그 소설처럼 눈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은 없을 것이다.
이번 겨울(올해 겨울이 아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한 해이므로)의 마지막 눈이 될지도 모르는 입춘의 흰 눈. 오늘 다시 오지 않을 버스에서 내려 한없이 걸어가던 눈길, 뿌옇고 하얀 그 길을 걸어야 했던 주인공처럼 나도 우리도 계속 걸어야 함을 느낀다. 제때에 눈 내리는 겨울일지라도, 봄에 만나는 눈일지라도, 흰 눈은 눈이기에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누군가에겐 설렘을, 누군가에겐 추억을, 누구가에겐 귀찮음을 주기도 하는 눈. 이 자체만으로도 어찌나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그저 하던 대로 혹은 하고 싶은 대로 쭉 갈 수밖에 없는 길이 나의 인생임을 오늘 또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