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가야할 길
2009년 5월은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고, 첫 아이가 태어난 해이다.
사실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나 대통령의 죽음으로 시작하면서 뭔가 무거운 느낌이 든다.
지금에서야 과거를 돌아볼 때 보이는 것들이 있으니 어쩌면 이제야 시야에 들어오는 진실, 나이가 주는 약간의 지혜 뭐 그런 것이 아닐까.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뒤늦게 깨닫게 되는 뭐 그런 마음.
오늘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니 잠시 그분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려고 한다.
이 나이에 보니 정말 어렸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당시엔 곧 서른을 목전에 둔 예비 엄마였던 나는 나름의 태교로 재미있는 임신 시기와 감히 깊이를 모를 육아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아이가 태어나면 시간 맞춰 보던 드라마도 물 건너갈 거라 생각했던 터였다. 지금이야 OTT가 많으니 언제든지 육퇴만 하면 즐길 수 있는 시대이나 당시엔 그렇지 않았다. 과학의 기술 발전과 세월의 크기의 비례는 감히 짐작할 수가 없다.
당시 <결혼 못하는 남자>라는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두 사람은 막 40에 접어든 사람들이다.
건축 디자이너, 내과 전문의 등 전문직 직업을 가졌지만 그들의 직업적 소회를 다룬다기보다는 사랑과 연애, 인간과 결혼에 대한 뭐 그런 드라마였다. 지금의 나보다 더 어린 나이였던 지진희, 엄정화 배우는 갓 마흔이 되었고 드라마 설정에도 딱 맞았다. 남자는 혼자서 식사를 해도 한우 최고 등급을 먹을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여자는 저렴한 옷 몇 벌보다 자신에게 딱 맞는 질 좋은 흰 셔츠, 하나를 입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마흔의 옷이란 음식이란 그런 것이다.
엄청난 몸관리를 하지 않은 이상, 설사한다손 치더라도 내면과 외면의 소화력이 달라지는 나이다.
지금의 나는 나에게 어울리는 옷 한 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소화가 잘 되고 건강에 좋은 음식이 꼭 필요한 나이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다.
커피를 연거푸 마시면 속이 느끼해짐을 느끼고, 순간의 선택으로 아무 빵이나 먹었을 때 더부룩함을 느낀다.
자칭 타칭 빵순이였던 시간은 이미 흘러버려 어떤 종류이든 그 어떤 베이커리 샵이든 상관없었던 위장은 더 이상 받아들임을 거부하고 있다. 소금빵 하나를 먹어도 정말 맛있는 걸로, 커피 한 잔을 마셔도 진짜 로스팅이 잘된 커피로 마셔야 하는 바디를 갖게 된 것이다. 베이킹을 할 줄도 모르면서, 커피에 대한 이렇다 할 지식도 없으며 내 혀는, 위장은 기가 막히게 그 맛을 알아내고, 대장은 자기만의 신호로 연락을 취한다.
에스프레소의 맛을 알게 되면서 달라짐을 느꼈는데, 오늘 아침 아메리카노와 라테를 섞어마시면서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음을 느낀다. 깔끔한 맛을 선호하게 되고 자꾸 커피로 가는 손을 저어하게 된다. 양보다 질을 추구해야 하는 게 좋은 일이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식욕이 있다는 것은 열정적인 것이다. 열정이 있다는 것은 즐겁다는 것이다. 즐거우면 삶이 재밌으니까.
현재는 지금의 나대로 재미난 인생을 만들어야겠지.
정말 '맛있는' 커피.
진짜 '맛있는' 빵.
맛있다는 건 소화가 잘된다는 다른 이름의 치환이다.
아직 먹고 싶은 걸 보면 열정이 있는 건가.
커피 한 잔 찐하게 마셔야 할 것 같은 그 기분은 누구나 알 것이다.
어느 순간 라면 끊듯이 커피를 끊어야지 생각하다가 아직 그 온기를 잊지 못해 매일 커피를 마신다.
이러다 커피 만드는 법과 베이킹을 배우러 나갈지도 모르겠다.
훗날 좀 더 기운이 생기면.
지금은 연을 끊지 못하겠으므로 입에 맞는 곳을 찾아다녀야겠다.
나름 결심을 했건만, 벌써 떠나보내지는 못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