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엔 없는.
영화 <동감>에서 두 주인공은 20년의 세월이 연결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무전기를 통해서.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같은 시간에 살고 있다고 여겼지만 스무 해의 시간이 그들 사이에 있었고, 그들의 '동감'은 오로지 무전기를 통해서였다.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해리, 론, 헤르미온느'가 마법부에 들어갈 때 그들의 빨간 공중전화박스를 통해 들어갈 수 있었다. 오랫동안 통신 수단은 영화에서 문학에서 차용되어 왔고, 지금은 사라져 버린 공중전화가 주는 아련함은 이제 옛 영상에선 찾을 수 있다. 오로지 상대방의 목소리로만 판단할 수 있는 감정선, 숨소리까지 듣게 되는 가까움은 마음까지 연결되게 만든다. 청각에만 의존한 만남은 그래서 더욱 마음을 울리는지도 모르겠다.
심리부검센터 소장인 지안은 필연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엄마가 떠나버린 후, 퇴근하는 아빠를 기다리던 공중전화, 새로 이사 간 동네는 골목길 가득한 달동네. 매일 저녁 기다리던 아빠와 함께 집으로 갔던 지안은 저녁에 나오지 말라는 아빠의 말에도 늘 아빠를 기다린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그 모습을 보기 위해서. 아빠가 사망한 시간, 지안은 돌아오지 않는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 아빠의 마지막 말을 듣게 된다. 그 순간 아빠가 죽은 줄도 모르고. 이후 지안은 심리부검센터를 운영하며 고인의 마지막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자살자 유가족의 심리 부검이다.
직장 내 괴롭힘으로 자살한 남편의 마음을 알고 싶은 아내, 남자친구가 자신 때문에 자살했다고 생각했지만 데이트 폭력이었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나은, 첫째 딸의 자살에 둘째까지 잘못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엄마,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힘들어하는 남진, 그리고 상우까지. 실제 자살 시도 경험이 있고, 현재 작가로서 자살 예방 강연자로도 활동하는 작가의 글이라 경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진실함이 느껴졌다. 인물들은 모두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가족을 두고 그렇게 떠날 수 있었는지 궁금하고 답답하고, 도와주지 못해 죄책감이 든다는 감정을 갖고 있었고, 모든 게 자신의 탓이라는 부채감까지 안고 있었다. 화남과 부정을 거쳐 인정과 수용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결국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서 슬프다는 것. 자살을 왜 했어라는 질문은 옳지 않다는 것. 가족이 죽어서 사람이 갑작스레 떠나서 슬프고 아프다는 것이다.
죽음의 여러 모습에 독자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죽음은 타인에게 협박을 하는 수단이 되어서도 안되고, 자살이라는 죽음의 모습이 비난받거나 오해받아서도 안된다. 추운 겨울 유달리 부고 소식이 많다. 돌잔치나 친구나 동료의 결혼식을 많이 가던 시기가 지나 장례식장과 후배들의 결혼식장을 많이 가는 시기가 되었다. 이제 곧 더 많은 장례식장과 어쩌면 친구 자녀들의 결혼식장을 가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인생의 시간표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중 슬픈 건 죽음이다. 검은 상복을 입고 인사하는 사람들. 차례차례 정해져 있는 장례식장 육개장과 머리 고기와 홍어, 국물을 넘기면서 슬픔을 넘기는 사람도 있고, 상에 놓인 견과류를 오독오독 씹으며 죽음에 대해 곱씹어 보기도 한다. 책 속에 나온 여러 죽음 중 어머니의 죽음이 너무나 있을 법해서 많은 생각이 든다. 평범한 가정, 큰 문제없이 잘 살아온 남편과 아내, 그리고 예쁜 아들 부부와 곧 태어날 손주. 갑작스러운 암이란 진단, 병원비, 치료비. 그 문제로 항암을 거부하고 죽음을 택한 어머니와 그녀의 자살을 돕는 남편. 함께 살아온 시간들을 뒤로한 채 경제적 문제로 떠나기로 했던 어머니의 결정이 현실에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남은 유가족들의 마음, 자살자의 마음이 모두 다 아프게 다가온다. 현재도 수많은 죽음과 탄생이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다. 목하 일주일 전 어린 배우가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죽음은 주변인이든 유명인이든 괴롭다. 나이 들어서 별 질병 없이 죽으면 호상이라고 하지만 같은 공기를 공유했던 사람들의 죽음은 쉬이 마음에서 걷히질 않는다.
삶은 준비 없이 받아들인 탓에 인생을 살아가면서 부딪히며 만들어가야 한다. 죽음은 어떨까. 갑작스러운 죽음도 있겠지만 우리에겐 평균적으로 시간이 있다. 아직은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나름의 청사진을 그려봐야겠다. 나에겐 이 젊음이 영원할 거라 착각하지 말고. 가벼운 힐링 소설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지만 첫 장을 넘기는 순간 알았다. 절대 쉽게 읽어서는 안 될 거라는 걸. 작가는 이 책을 읽어도 혹은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한다. 읽기를 잘했다. 책에 나온 상우나 지안처럼, 도움이 필요하면 도와주라고 말하고 싶고, 도움이 필요해 보이면 도와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 정도는 되고 싶다. 죽음을 마냥 두려워하던 시간도 있었는데 지금은 잘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막연한 두려움의 단계는 넘어선 듯싶다. 진짜 떨리는 작업만이 남아있다. 현실적인 부분을 준비하면서 준비해야 하는 인생의 당연한 단계. 요양 병원도, 간병도, 호스피스 병동도 다음에. 오늘은 여기까지만.
과연 마음을 들을 수 있는 공중 전화가 있다면 전화를 걸 수 있을까. 전화를 해보고 싶을까. 아주 오래전 본 드라마에서 죽은 아들의 삐삐 번호를 없애지 못하고 삐삐를 쳐서 늘 아들의 생전 목소리를 듣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도 영원히 없애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공중 전화로 가서 마지막 말을 듣고 싶을 것 같다. 이 공중전화로는 단 한번, 사망한 시간 밖엔 목소리를 듣지 못하니 더더욱 전화를 걸어서 들어볼 것이다. 설사 슬퍼서 눈물이 흐를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