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늑한 분위기에 대한 감성은 소녀 시절 가장 정점에 이르렀다.
그때 유행했던 나무 책상과 원목 옷장 세트를 엄마는 과감하게 사주셨다.
그러고 보면 통 크게 쓰는데 인색하지 않은 엄마였다.
300만 원 하던 출판사 전집을 사주셨고, 그때 열심히 세계문학을 읽었다.
과학 전집 세트는 먼지만 풀풀 쌓여갔지만.
다시 분위기로 돌아와 보면, 나무 책상 위에 두었던 전등 혹은 램프가 생각이 난다.
숙제를 하거나 일기를 쓸 때, 공부 비슷한 걸 할 때 조명을 은은하게 켜두면
마치 영화의 주인공인 된 듯 꼼지락꼼지락 무언가를 써 내려갔다.
95년작 <작은 아씨들>을 보면 조(위노나 라이더)가 촛불을 켜고 이층 방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곤 했는데
그 모습이 각인되어 작가라면 응당 어두운 불빛 아래 쿠키랑 tea를 놓고 잉크를 묻혀 가며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작품은 아닐지라도 어설프게 흉내라도 내던 그때, 전등 혹은 램프 사실 스탠드라 불리던 불을 켜놓고 오롯이 집중된 그 불빛 속에서 사부작사부작 뭔가를 써 내려갔다.
지금에서야 예전 일기를 읽으니 자아와 진로 사이에서, 인간관계와 꿈에 관해서 지독히도 생각하고 사무치게 부정적이기도 했던 모습이 엿보인다.
문득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편지지로 편지를 주고받던 같은 반 친구도 떠올랐다.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편지지들, 특히 고전 영화 사진으로 프린트된 편지지가 있었다.
클래식 무비를 좋아한 우리 둘은 영화 편지지를 골라 편지를 쓰곤 했다.
꼭 고전 영화가 아니더래도 당시엔 영화 배경의 편지지가 많았다.
깃털펜이나 만년필은 아니더래도 책상 위 램프 하나면 분위기를 내는데 그만이었다.
공부를 한다고 앉아서 전등 하나만 켜놓고 집중된 분위기는 밤 시간을 꽤나 낭만적으로 만들어주었다.
전등갓이 있는 램프는 지금의 LED램프의 일정한 빛의 양과는 달리 갓의 방향에 따라 조도가 다양한데 빛은 직진한다 라는 과학적 원리가 사실임을 드려내는 데도 한몫한다.
너무 이른 저녁보다는 밤 11시 정도가 적당하다.
잠을 자도 되는 시간이지만 밤 시간을 즐기기에도 좋은 시간이다.
혼자만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
전등 불빛 하나면 그저 족하다.
최근에 라탄 공예 수업을 들으면서 전등을 만들었다.
전구 위에 한지로 만든 갓을 씌우니 그 옛날 분위기가 더욱 생각났다.
라탄으로 몸통을 만드는 건 결국 선생님이 완성하셨지만 전등 하나만은 오롯이 내 것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아이들 책상은 이미 여러 형태의 빛이 탑재되어 있다.
공부할 때, 그림 그리기 등 창의적인 활동을 할 때, 책을 읽을 때.
용도에 따라 빛도 달리 설정할 수 있다.
아무리 최첨단으로 갈지라도 여전히 나에겐 전등갓을 씌운 그 램프가 가장 멋지다.
따뜻한 차 한잔, 약간의 쿠키가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장소가 된다.
전등갓의 기울기에 따라 달라지는 빛의 양도 기분을 전환시킨다.
주광색 불빛 하나로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건 꽤 괜찮은 기분이다.
가성비, 가심비 다 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