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지기 대학 친구의 결혼식장이었다.
20대에 결혼한 나와는 달리 30대 중반에 결혼한 베스트프렌드.
결혼식장에서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고등학교 동창은 23년 지기 친구와 아는 사이였고
본인 남편의 후배(베스트 프렌드의 남편)로 인해 아는 사이였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는 아들을 아기띠에 메고 있었다.
그때부터 정기적으로 만났던 우리 셋.
각자 타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자주 보진 못했지만 분기별로 시간을 내어
여자들끼리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세 가족이 캠핑을 가기도 했다.
아. 우. 디(=아줌마들의 우정 디질 때까지)를 외치며
사는 얘기
애들 얘기
시댁 얘기
서로의 이야기에 맞장구도 치고 응원도 해주며 지내던 시간들이었다.
OOO님이 채팅방을 나갔습니다.
응? 세 명 있는 단톡방인데 나간다고?
무슨 일이지?
갑자기 말도 없이?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단톡방을 나갔다.
어쩌면 이미 감정의 간격은 확인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줄이야.
진작 챙겼어야 하는 건데.
대학 친구는 많은 민원을 상대해야 하는 대한민국 직장인이다.
임용고시를 몇 년 준비하다 들어간 직장에서 벌써 15년 차다.
사실 이 땅의 모든 직장인들이 나는 위대하게 보인다.
어느 일이든 힘들지 않겠냐만은 K직장인의 삶이란 녹록지 않을 것이다.
일을 시작하면서 많이 까칠해지고 건조해진 친구였지만
나름의 생활 속에서 육아와 일을 다 해내는 성실한 사람이다.
게다가 한 직장에서 15년이라니 충분히 존경받을만하다.
고등학교 동창은 결혼 후 전업 주부로 지내고 있다.
나름의 깨달음 속에 아이에게 욕심내지 않고
양육하려 노력 중이다.
문제는 대학 친구가 첫째 아이인 아들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이다.
받아쓰기 많이 틀리는데 안창 피하냐고 했다.
학교에서 수업들을 때 글씨 몰라서 못쓰면 자존심 안 상하니 했다.
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씻기 전에 공부하던 거 마저 하라 했는데 펼쳐 놓고 딴짓이다.
열받는다. 울화통 터진다.
건들건들 말 안 듣는다.
해야 할 분량은 있는데 세월아 네월아 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호응을 잘해주던 고등학교 동창 친구는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아직 2학년 어린아이인데 마음에 상처 주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했다.
화내고 윽박지르는 엄마가 되어버린 친구.
그리고 역시나 후회하는 친구를 보며 힘이라고 말해주던 자신도
이제는 에너지가 소진되어 버린 느낌이라고 했다.
스위스처럼 중립국 같은 존재인 나는 둘 다 너무나 이해가 되었다.
물론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중에 아이가 힘든 순간에 베이스캠프처럼 찾는 엄마가 되어야 할 텐데
사춘기 올 때 어쩌려고 저렇게 아이와의 관계를 망치나 싶어서
걱정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건 아니라고 표현을 하자니
엄마가 더 아이를 생각할 것일진대
자신의 참견이 혹여 오지랖이 될까 걱정이라고 했다.
무언가 친구에게 본인의 진실을 전하고 싶으면 친구를 잃을 각오를 하고서라도 전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용기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 아직 아이가 어릴 때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더 이상 상처 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특히나 자식 농사 앞에서는 함부로 훈수 둘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옳고 노력하는 엄마고 너는 아니다의 이분법도 아니다.
이제 우리 나이는 행여 나의 가치관이
남에게 강요가 될까 봐 조심하는 나이이기도 하다.
서로 힘든 얘기도 하고 의지도 하자는 대나무방이기에 충분히 서로 공감해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있다.
친해도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
한계 조정은 나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지나친 부정의 에너지를 내뿜는 건 상대방에게나 본인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말의 강력한 힘을 믿는 편이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은 좀체 하지 않는다.
한 번 시작한 불만과 불평의 말들은 너무나 쉽게 전염되어 나의 언어를 잠식해 버린다.
가끔 당신의 이야기도 털어놓아보라며 참지만 말라며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나 굳게 쇄국정책을 펴도 안 되겠지만
최소한의 거리를 지켜주고 싶다.
내 힘듬으로 상대방이 힘들지 않도록.
작은 위로로도 새로운 다짐을 결심할 수 있도록.
하여 다시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도록.
앞으로 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은 몇 년일까?
내 아이를 사랑할 시간은 평생이겠지만
곁에 두고 사랑할 시간은 길지 않을 수 있다.
아직도 두 아이를 키우고 길러내고 있기에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아이와 끝까지 대화할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은 것이다.
물론 이 순간도 학습지를 밀리는 아이를 보며 샤우팅이 장전되지만
화를 내고 아이를 비난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미리 하면 좋겠다 선생님과의 약속이다라고 말하며 아이에게 미리 할 것을 제안해 본다.
누구나 내 아이를 잘 키우고 싶기에 불안하고 걱정하고
애를 쓰고 돈도 번다.
그래도 그 때문에 현재를 놓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에너지를 다 소진해 버린 친구도 어둠의 기운을 쫓아내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아이와의 하루하루에 힘겨워하는 친구도 힘을 내어 아이와의 소중한 시간을 아꼈으면 좋겠다.
누구도 잘못하지 않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들.
슬기롭게 이겨내고 함께할 나의 친구들. 엄마인 우리들.
억지로 힘내려하지 말고
지나치게 미안해하지 말고
지나고 아쉬워하지 말고
긍정의 에너지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다시 함께하기를.
앞으로 내 아이와 함께할 시간은 몇 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