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돌봄 May 29. 2023

소리

feat. 세탁기와 ASMR

N년째 미라클 모닝에 도전 중이다.

사실 5시면 5시, 4시 30분이면 4시 30분. 

이렇게 꾸준히 같은 시각에 일어나는 게 미라클 모닝이라고 생각하지만

내가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하고 

일주일에 하루는 영어 스터디 덕분에 5시에는 일어나니 이것도 미라클 모닝이라 믿고 있다.

점점 나는 미라클 모닝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5시에 일어나는 날이면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창문을 연다.

올리고 내릴 때마다 팔이 아픈 블라인드는 살짝 젖혀놓는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빛은 빨리 모습을 드러내는데 새들이 한참을 지저귄다.

새소리가 저렇게 좋은 거였나.

사실 더 좋은 소리가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세탁기를 돌린다.

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넣고 설정된 버튼을 누른다.

'띠링'하는 소리와 함께 세탁기가 돌아간다.

비로소 마음의 안정이 다가온다.

세탁기가 일정한 속도와 소음으로 돌아가면 뭔가 하루가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책상 앞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세탁이 끝날 때까지 합법적인 유예 기간이 생긴 느낌이 든다. 

식기세척기를 돌릴 때도 마찬가지다.

물이 쏴 나오고 기계가 일정 속도로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

이렇게 세탁기와 식기세척기는 제 할 일을 하는구나.

아싸, 자유시간.

'띠링'하고 끝나는 알림이 울릴 때까지 딴짓(?)을 해도 될 것 같은 허락받은 느낌.


최근 소리에 민감해진 부분이 있다.

일단 남편과 차로 이동 중에 들려오는 노래 소리나 유튜브 소리는 귀를 불편하게 한다. 

내로남불.

남이 하면 로맨스. 내가 하면 불륜이라고.

내가 운전대를 잡으면 듣는 유튜브 교육 관련 방송이나 뮤지컬 음악은 듣기에 좋고

남편의 취향인 요즘 노래나 부모님과 이동할 때 듣는 트로트는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소리 좀 낮춰줘요."


이게 요즘 차를 타면 가장 많이 하는 말.


"요즘 MZ들 노래도 알아야 감을 잃지 않아요." 


라는 남편의 말도 일리가 있지만 고요한 소리에 더 편안해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내가 요즘 가장 심취한 소리가 있다.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
뇌를 자극해 심리적인 안정을 유도하는 영상으로 바람이 부는 소리, 연필로 글씨를 쓰는 소리, 바스락거리는 소리 등을 제공해 준다.
힐링을 얻고자 하는 청취자들이 ASMR의 소리를 들으면 이 소리가 트리거(trigger)로 작용해 팅글(tingle, 기분 좋게 소름 돋는 느낌)을 느끼게 한다. 2010년 무렵 미국, 호주 등지에서 유통되었으며 국내에서도 팟캐스트유튜브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아이들과 굿 나이트 인사를 하고 난 후 침대에 쏙 들어가 좋아하는 ASMR을 듣는다.

화장품 뚜껑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

수분크림을 듬뿍 떠서 얼굴에 촵촵촵 바르는 소리.

사과를 서걱서걱 베어무는 소리.

비행기가 순항하는 소리.


약간의 유머가 더해진 소리 영상이 이상하게 편안함을 준다.

혹자는 ASMR에 너무 의지해서 소리가 없으면 잠을 못 자는 부작용을 줄 수 있다지만 내 경우엔 절대 아니올시다이다.

현생을 마무리하는 시간.

다음날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듣기 전까지 

나만의 힐링타임이 펼쳐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