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감을 고르는 방법은 크게 2가지로 나눌 수 있을 거다. 아빠를 닮은 사람을 남편으로 고르거나 아빠와 정반대의 사람을 남편으로 고르거나. 내 경우는 후자다.
내가 남편에게 마음을 빼앗긴 지점은 그의 지적인 매력 때문이다. 오래도록 궁금했지만 잘 풀리지 않는 질문에 누구 하나 명쾌한 답을 알려주지 않아 답답해하고 있을 때, 그의 말은 귀에 쏙쏙 박혔고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종각 영풍문고에서 3시간의 대화를 나눈 바로 그날 나는 남편에게 반해버렸다.
남편은 자기애가 넘쳐나는 스타일이다.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한다. 사실 첫인상은 내게 좋은 점수를 얻지 못했다. 재수 없는 스타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영풍문고에서의 대화) 이후 함께 시간을 보낼수록 자신감 있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눈이 삐었던 게 틀림없다.
경제관념이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에서 학과 공부 열심히 해서 학점 관리하고 장학금을 받고, 모자란 학비와 생활비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충당한다는 사실로 그렇게 단정 지었다. 경제관념이 제대로 박혀 있으니 돈을 허투루 쓸 것 같지 않았다. 이것은 내 착각이긴 했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나 할까. 장학금을 받고 과외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것을 경제관념이 있다는 것으로 생각한 그 시절의 나는 그냥 남편의 모든 면을 좋게 보고 싶을 만큼 사랑에 빠졌는지도 모르겠다.
장남으로 부모님의 기대와 지지를 받고 자람이 분명했다. 대가족 속에서 기도와 사랑을 충만하게 받고 자란 장남, 장손이라는 자리의 십자가를 그 당시엔 전혀 알지 못했다. 쌓인 기도로 큰 복을 받을 거라 생각했고 내가 갖지 못한 그의 배경이 부러웠다.
어쨌든 이 모든 점이 아빠와 닮지 않았다. 완벽하게 아빠와 다른 사람이라 판단했으므로 내가 선택한 남편의 기준에 부합했다.
문제는 자꾸 남편에게서 아빠의 모습을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어릴 적 자고 있는 나와 내 동생을 번쩍 들어 옮겨 차 뒷좌석에 눕히고는 어디론가 떠났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출장이 잦았던 아빠는 틈만 나면 우리를 데리고 떠났다. 아빠와 함께한 소소한 일상의 기억은 없는데, '여행'이란 단어에 바로 아빠가 떠오른다. 경주, 순천, 동해, 지리산 등 전국 곳곳으로 다닌 여행이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 나도 내 아이에게 그런 여행을 자주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로망이 있었다. 반면에 남편은 가족 여행의 경험이 거의 없다고 했다. 대학 때 동아리 활동을 하며 다닌 여행과 배낭매고 떠난 한 번의 유럽여행이 여행의 전부라고 말이다. 어릴 적엔 방학에 외할머니댁에 가는 것이 유일한 여행이었다고 한다. 그런 남편에게 일사불란하고 용의주도한 여행을 기대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남편이 여행 경험이 없으니 내가 주도하여 여행하면 된다. 그래서 여러 번 시도해 봤다. 하지만 여행의 'ㅇ'도 모르는 사람이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지도 않는다. 매번 나와는 다른 의견이 있다. 숙소가 어쩌고, 동선이 어쩌고. 그렇게 투닥거리다 결국 나는 내 입맛에 맞는 여행을 포기했다.
아빠는 시간이 날 때는 조금도 마다하지 않고 내 발이 되어주었다. 친구들과 여행을 갈 때도 아빠가 동행해 주어 여행지까지 운전을 해주곤 했다. 대학 시절, 아빠는 아침 일찍 수업이 있던 나를 위해 일부러 일찍 나서서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하셨다. 나중에 직장을 다니게 되어 거의 버스의 차고지에서 종점을 가는 정도의 먼 거리로 출근할 때에도 아빠는 나를 회사에 데려다주고 온 길을 다시 되돌아 일터로 가셨다. 새벽 출근길에 운전하는 아빠 옆에서 나는 화장을 마치고 모자란 잠을 잤다.
남편과 연애할 때의 일이다. 부모님의 오래된 차를 내가 운전할 수 있게 빌려주셨는데, 그 차로 나는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의 발이 되어주었다. 데이트를 하고 자취방에 내려주고는 홀로 집으로 운전해서 돌아왔다. 아빠는 나를 위해 운전해 주고, 나는 남자친구를 위해 운전해 주고. 지금 생각해 보니 이런 불효녀가 따로 없다. 아빠가 안다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까. 지금도 그렇다. 나는 지금 남편이 출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단기주차장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짧은 출장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까 봐 데리러 오는 것을 자청했다.
교회 청년부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나는 '배우자 기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 언니들은 열 가지가 넘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새벽에 기도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기도제목은 구체적일수록 좋다고 알려주었다. 구체적인 기도라 함은 성경적인 가정을 이루는 데에 목적을 둔 내용이어야겠지만, 기도가 변질되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주님, 기독교 명문가정에서 자란 배우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물질의 축복을 받은 배우자를 원합니다. 전문직이거나 대기업에 다니면 좋겠어요. 시부모님은 해외에 계셔서 자주 안 만나면 더 좋고요.'
단순히 '아빠와 같지 않은 사람, 그리고 기독교가정에서 자란 남자'라는 디테일하지 않은 두리뭉실한 기도제목으로 기도했던 것이 패착이었을까. 나름대로 아빠의 단점을 피하면 만족할 거라며 정반대의 남편을 선택했건만, 남편의 장점이라 생각했던 부분도 내 오해이거나 착각이었다.
남편을 선택한 건 나다. 아무도 등 떠밀지 않았다. 모든 조건을 취하고자 하는 것은 내 욕심이라는 것을 안다. 나 또한 그에게 완벽한 아내는 아닐 테니. 그럼에도 한 번씩 남편에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에게 주는 사랑은 차치하고서 말이다.
남편에게 아쉬운 점들이 아빠에게서 받은 만족할만한 사랑이었다고 생각되는 것이, 한 편으로 위로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