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번째 공백
아무도 나에게 내가 쥔 걸 포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 아득바득 남들과 똑같이 살으라는데, 하려면 할 수는 있었다. 단지, 그러려면 나는 뭉개진 내 슬픔과 아빠가 보고 싶어서 죽고 싶을 만큼 서러운 그리움을 매일같이 어딘가에는 토해내야만 했다. (그로 인한 감정적 결함도 어떻게든 메꿔야만 했다.) 그러나 그것을 나서서 들어주려는 이는 없었다. 어쩌면 마지못해 내어 지는 진심들이 고맙고 비참했다. 정말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어린애 같고 고집스러운 마음이 아직도 종종 들곤 한다. 보고 싶어서, 진짜 많이 보고 싶어서. 왜 내 옆에는 당신이 없냐고, 나는 왜 아빠 없이 벌써 1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버렸냐고, 너무 근본적인 답답함과 서러움이 잔잔한 호수같이 일렁이다가 일순 거꾸로 쏟아진다. 파도가 덮치 듯 마구 퍼부어온다. 자꾸 생각하면 나만 슬픈 일인 것도 알지만 되려 생각하지 말라는 말에 더 크게 상처를 받는다. 추하고, 유치하고 비겁하다. 내 모든 애도와 자기 연민은 모든 형태에 대해 그러지 말라는 말들만 너무 오래 들어와서, 남들 앞에서는 빨리 괜찮은 척 지내야겠다는 습관만 남은 것 같다.
나아진 게 없는데도 나아진 척,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 힘들지 않았던 척, 잠깐 기분이 좀 그랬던 것뿐인 척. 별일 아닌데 내 성격이 예민해서 그런 것뿐이라고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혹여나 그들이 나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 불안해서 괜히 걱정하지 말라며 얼른 웃어넘기려 했다. 그들 앞에 나를 우선하는 말을 꺼낼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나 걱정해 달라고, 힘들다고, 정말 많이 힘들어서 지금 당장 혼자 있고 싶지 않다고, 제발 위태로운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떼를 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그들이 알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접함으로 인해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마주할 용기가 필요했고,
나의 말들이 그들에게 크고 작은 부담과 낯선 책임감, 떨쳐내기 어려운 죄책감 따위를 지어주게 될 수 있음을, 그것을 외면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비굴한 나 자신을 남들 앞에서도 진짜 내 모습으로 인정할 수 있는 용기였다.
나는 몇 번이고 시도해보고자 했지만 결국 또 비겁하게 착하고 이타적인 사람인 척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속였다.
나는 그저 용기가 없고,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